[TF현장] 이탄희는 임종헌에게 '일석이조'였다
입력: 2020.04.15 00:00 / 수정: 2020.04.17 11:36
서울중앙지법 제36형사부(윤종섭 부장판사)는 14일 오전 10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61·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34차 공판을 열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10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임 전 차장. /더팩트DB
서울중앙지법 제36형사부(윤종섭 부장판사)는 14일 오전 10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61·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34차 공판을 열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10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임 전 차장. /더팩트DB

'인사모 와해' 증거조사 진행…'위수증' 주장도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주원 기자] 양승태 대법원 당시 이탄희(42·사법연수원 34기) 변호사를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탁한 큰 이유는 그가 기획팀장으로 활동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통제하기 위해서라는 정황 증거가 법정에서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제36형사부(윤종섭 부장판사)는 14일 오전 10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61·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34차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임 전 차장이 양승태 사법부에 비판적이었던 판사들의 연구모임을 와해한 혐의를 놓고 검찰의 서증조사가 진행됐다. 임 전 차장은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를 해체하기 위해 중복가입 해소와 가입한 판사들에 인사불이익을 도모하고, 일부는 실행에 옮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대응 방안을 모색해 보고서로 작성하라는 등 부당한 지시를 한 혐의도 받는다.

중복가입 해소란 법관이 복수의 연구회를 가입했다면 가장 최근에 가입한 연구회를 탈퇴하도록 한 조치다. 심의관들이 작성한 '전문분야 연구회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중복가입 인원이 가장 많은 모임이었다. 중복가입은 편법적 혜택으로 이어지고,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이를 가장 크게 누리고 있다며 "개선해야 한다"고 쓰였다.

실제로 탈퇴한 판사의 진술 조서도 제시됐다. '연구회 활동을 열심히 하지는 않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한 판사는 "중복가입 해소 조치가 아니었다면 탈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조치가 시행된 2017년 2월13~20일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탈퇴한 판사는 28명에 이른다.

이같은 조치가 '압박'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실행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나왔다. 같은 문건에는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해체하기 위한 방안으로 중복가입 해소를 우선한 이유로 "법관들 사이에 충분한 명분을 내세울 수 있음", "정무적 의도나 압박 수단이 포함돼 있다고 받아들여질 가능성 낮음" 등이라고 기재됐다.

국제인권법연구회 폐지가 필요한 이유도 담겼다. 문건에는 "무엇보다 인사모 해소 방안을 위해 필요한 카드"라는 내용이 나온다. 법원행정처가 인사모 해소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당시 대법원 수장이었던 양승태(72·2기)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도입과 맞닿아 있다. 양 전 원장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에 협력할 방안을 한창 모색 중이었다. 이 시기 인사모는 2015년 8월 '상고법원 끝장 토론회'를 주최해 양 전 원장의 숙원사업을 공개 비판한 전력이 있었다. 이듬해에는 사법행정위원회를 놓고도 대법원과 대치되는 의견을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올리기도 했다.

와해 방안 중 하나는 연구회에 가입한 판사들, 즉 '내부자들'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2017년 1월 '인사모 관련 검토'라는 이름의 문건에는 "주류 중의 주류 법관들을 대거 탈퇴하도록 해 '뭔가 문제있고 논란있는 연구회'라는 인식을 줘야 한다"고 쓰였다.

같은 해 2월 이탄희 변호사는 대법원 법원행정처 제2기획심의관으로 부임했다. 이 변호사는 국제인권법연구회 기획팀장을 지낸 인물이었다. '내부자' 이 변호사를 가까이 둬 연구회를 더 효과적으로 통제하려 했지만 이를 알게 된 이 변호사는 사직서를 썼다. 법원행정처의 사직서 반려로 이 변호사는 원래 근무하던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으로 돌아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법관직을 내려놓았다. 이 변호사의 행보는 같은 해 3월 언론보도로 이어지고 '사법농단' 사태는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변호사의 첫 사직서 제출 직후 임 전 차장은 이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좀 조용하게 가면 좋잖아"라고 말했다. 검찰이 제시한 두 사람의 통화 내용에 따르면 이 변호사가 "저를 데려올 때부터 연구회 관련 부수적 목적이 있었던 것 아닙니까? 일석이조 아닙니까?"라고 묻자 임 전 차장은 "그래"라고 시인했다.

당시 이 변호사와 함께 일했던 임효량(42·34기) 전 법원행정처 제1기획심의관은 대법원장이 바뀐 뒤 작성한 '법원행정처 문제점 및 개선방안'에 임 전 차장을 고등학교 3학년, 기획조정실과 사법지원실 등의 국장들을 고1·2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사법농단 사태의 원인으로 법원행정처의 고질적 구조를 들었다. 보고서에는 "임 전 차장은 양 전 원장에게 충성할 객관적·주관적 이유가 있었다. 국장들은 성과를 내야 했고 대법관행을 방해한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방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양승태 대법원 당시 이탄희(42·사법연수원 34기) 변호사를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탁한 큰 이유는 그가 기획팀장으로 활동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통제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법정에서 나왔다. 사진은 지난해 5월 서울 중구 서울시 NPO 지원센터에서 사법농단은 왜 우리를 화나게 하는가를 주제로 강연하는 이 변호사. /뉴시스
양승태 대법원 당시 이탄희(42·사법연수원 34기) 변호사를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탁한 큰 이유는 그가 기획팀장으로 활동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통제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법정에서 나왔다. 사진은 지난해 5월 서울 중구 서울시 NPO 지원센터에서 '사법농단은 왜 우리를 화나게 하는가'를 주제로 강연하는 이 변호사. /뉴시스

한편 임 전 차장 측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의혹과 관련한 임 전 차장의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 채택을 물러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당시 검찰 조사에서 임 전 차장이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는데도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는 위법하다는 이유다.

검찰은 "변호인 주장은 형사소송법에 정면으로 대치된다. 검사는 조사 실효성이 없어 보여도 피의자가 적극 진술할 경우를 대비해 신문을 진행한 것이고, 실제로 일부 질문은 (임 전 차장이) 상세히 답했다"며 "조사가 이뤄진 이상 그 과정을 조서로 남기는 건 오히려 수사 절차 투명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반박했다. 검찰이 근거로 삼는 건 형사소송법 제244조 1항 "피의자의 진술은 조서에 기재해야 한다"와 2항 중 "피의자가 증감 또는 변경의 청구 등 이의를 제기하거나 의견을 진술한 때 이를 조서에 추가로 기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일단 피의자가 검찰 조사에 응한 이상, 진술거부권을 행사해도 조사실 내에서 나오는 모든 내용은 조서에 기재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윤종섭 부장판사는 피고인 측 부동의로 일단 해당 조서의 증거 채택 결정을 취소했다. 하지만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한 적법성 공방은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를 잡은 배석 판사는 "진술거부권 행사는 신체 자유 관점에서도 봐야 한다"며 "수사기관은 조사를 받고 싶지 않다는 피의자를 돌려보낼 권리와 의무가 있는 건 아닌지, 진술을 거부하는데도 조사실에 머물게 하는 건 진술거부권 침해 여지가 있는 건 아닌지 검찰과 변호인단에 석명을 구한다"고 말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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