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친화 법원을 향해②] 장애인에게 높은 문턱…외국인 통역도 부실
입력: 2020.03.23 05:00 / 수정: 2020.03.23 05:00

장애인 재판은 소송 당사자 의견이 어느 곳보다도 정확히 전달돼야 하지만 법정 수어 통역인 제도가 아직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일러스트=정용무
장애인 재판은 소송 당사자 의견이 어느 곳보다도 정확히 전달돼야 하지만 법정 수어 통역인 제도가 아직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일러스트=정용무

법원은 인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사회적 약자의 안식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법원의 인권 감수성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했다. 검찰개혁이 화두가 되면서 수사 단계에서 인권 문제는 사회적 논의의 폭이 넓어지고 실제 가시적 성과도 나타난다. 이 시점에서 법원은 과연 어떤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더팩트>는 그 첫 시도로 기획기사 '인권친화 법원을 향해'를 2회에 걸쳐 마련했다. 2회에서는 법원이 재판에 참여하는 장애인과 외국인의 권리를 얼마나 보장하고 있는지 점검해본다.<편집자주>

'항소'를 '황소'로 통역하기도…대법 "수어 통역인 인증평가 도입 추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이 한창일 지난 11일, 휠체어없이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 A씨는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 소재 법원을 방문했다. 코로나19로 대부분 출구가 폐쇄되면서 A씨는 휠체어가 들어가기엔 좁은 회전문을 거쳐야 했다. 회전문을 통과하면 대기줄로 더 진입이 어려워진 검역 탐지대가 기다렸다. 함께 간 일행이 경위에게 편의를 요구하자, 경위는 장애인의 출입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사례는 비단 A씨만의 일도, 코로나19 확산이라는 특수한 시기의 일만도 아니다. 장애인에게 법원은 법정에 들어서는 과정부터 순탄치 않다. 지난해 8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시설관리권이 있는 서울고등법원과 서울서부지방법원, 서울남부지방법원에 각각 제출한 의견서에 따르면 이 법원들의 일부 형사법정은 피고인석과 변호인석 공간이 좁아 휠체어 이용자가 방향을 틀기 힘들었고, 피고인석까지 통로가 확보돼 있지 않은 경우도 빈번했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변호사의 헌법소원도 청구된 상태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해 8월 서울 소재 법원을 방문해 직접 체험한 결과 일부 법원은 피고인석 책상과 교도관 등이 대기하는 의자 사이 폭이 약 58cm에 불과해 휠체어가 통과하지 못하므로, 피고인석 및 변호인석 착석이 불가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제공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해 8월 서울 소재 법원을 방문해 직접 체험한 결과 "일부 법원은 피고인석 책상과 교도관 등이 대기하는 의자 사이 폭이 약 58cm에 불과해 휠체어가 통과하지 못하므로, 피고인석 및 변호인석 착석이 불가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제공

재판 역시 불친절하긴 마찬가지다. 청각장애인이 소송 당사자일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벽은 통역이다. 재판부는 소송 당사자의 요청이 있을 때 해당 재판의 참여사무관이 법원 명단에 등록된 소위 '통역인 풀'에서 사건에 맞는 통역인을 재판부에 보고하고, 재판부가 최종결정을 내리는 구조다. 소송 당사자 의견이 어느 곳보다도 정확히 전달돼야 하는 필요성에 비해 법정 수어 통역인 제도는 여전히 허술하다.

'항소'를 '황소'로 통역한 사례는 재판을 앞둔 청각장애인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사례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법정 수어 통역은 공정하고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해야 하는데 어려운 법률 용어가 나오면 뛰어 넘거나, 변론이 길어지면 일부 내용을 빼먹고 통역을 하는 사례도 잦다. 장애는 물론 재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하는데 법정 수어 통역인을 교육하거나 검증할 제도가 미비하다."

오역에 앞서 통역인 지원 절차상 인권침해 여지도 있다. 청각장애 2급을 가진 소송 당사자가 2017년 11월30일, 2018년 1월22일, 2018년 6월14일 세 차례에 걸쳐 법원에 수어통역 지원을 요청했으나 "가사소송이고 변호사를 선임한 상태인데다 장애인 연금을 받지 않고 있으니 비용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답만 돌아왔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하는 정당한 편의는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하도록 시설, 설비, 도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법이 보장한 '정당한 편의'를 법원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서비스'로 오인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018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비장애인에게는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을 장애인에게 부담하게 하는 건 차별"이라는 권고를 내렸으나, "민사 소송 비용은 개인 부담"이라는 법원과의 의견차는 크다.

이같은 잡음 해소를 위해서는 법원이 장애인에 대한 법률지원체계에 익숙해져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직접 소송 당사자를 마주하고 통역인을 지정해야하는 등 재판부 업무과중 문제와 함께 개선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소장(변호사)은 "장애인 사법지원 가이드라인도 최근 개정되는 등 제도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걸 얼마나 잘 적용하냐는 것"이라며 "누구보다 소송 당사자를 깊이 이해해야할 재판부 역시 4시간에 60여건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소송 당사자가 정신·신체적으로 어떤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할 여건조차 안되는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문제점은 외국인이나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주민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통계에 따르면 외국인이 형사재판에 넘겨지는 수는 매년 상승 추세다. 난민 재판 역시 서울행정법원 전문 재판부(한 분야에 특화된 재판부)가 맡는 사건 중 절반 비중을 차지한다. 통역에 문제가 있을 시 '절차상 하자'로 진행 중이던 재판이 무효가 될 수도 있다. 소송 당사자의 권리행사는 물론 소송경제적 측면에서도 중요성이 크다.

하지만 외국인 사건을 수임해본 법률가들은 통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평가할 지표도 마땅치 않다고 토로한다. 공익법재단 화우에서 난민·이주민을 지원하는 이현서 변호사의 설명이다.

"중요한 단어를 빼놓고 통역하거나, 당사자는 길게 말했는데 통역인이 임의로 요약해 전달하는 경우도 잦다. 재판에서는 지역명이나 사람 이름 하나하나가 대단히 중요한데, 고유명사라는 이유로 통역을 뛰어넘는 문제점도 자주 보인다. 재판부로서는 통역인의 말만 듣고 심증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는 걸 감안하면, 엄격한 인증 평가를 기준으로 불합격한 사람은 통역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사단법인 두루에서 난민을 지원하는 최초록 변호사는 "소송 당사자가 영어권 출신이라면 변호사들도 어느 정도 알아 듣고 (오역이 있을 때) 이의를 제기할텐데, 소수 언어면 의뢰인의 말이 눈앞에서 왜곡돼도 할 수 있는게 없다"며 "난민사건은 비영어권 출신이 많은 만큼 아랍어나 불어 등 비주류 언어 통역인에 대한 인증도 꼼꼼히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난민 소송의 경우 항소나 상고에서 필수적인 판결문을 포함해 소송비 대납 등 기본적 공지사항을 접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김연주 변호사(난민인권네트워크)는 "외국인 소송당사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통지다. 소송비 대납 등 재판 관련 서류가 한국어로만 우편 통지돼 말을 몰라서 기한을 놓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며 "결국 자력으로는 사법접근권이 사실상 없어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데, 난민은 유달리 소송구조 심사가 까다로워 변호사 선임도 어렵다. 그야말로 이중고"라고 말했다.

법원 역시 이같은 현실에 문제점을 통감하고 해결책을 찾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2018년 수원지법에서 첫 실시를 시작으로 지난해부터는 외국인 법정 통역인 인증 평가를 시행 중이다. 불합격했다고 명단에서 제외되는 건 아니지만, 재판부가 통역인을 선정할 때 적극 참고하도록 할 것"이라며 "수어 통역인 인증 평가 역시 내부에 정책안이 올라와 있는 상태로, 반드시 추진해야한다 생각하고 계획 중"이라고 전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의견서를 접수한 서울고등법원 관계자는 "의견서에 요구된 사항은 대부분 공사를 완료했고, 추가 개선을 위해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예산을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서울행정법원 관계자 역시 "외국어 문자 서비스는 아직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면서도 "민원실에 외국어가 가능한 직원이 상근하며 외국인 소송 당사자들이 언제든지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안내를 받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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