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독서실 휴대폰 충전기 썼다가 졸지에 절도범
입력: 2020.03.15 09:00 / 수정: 2020.03.15 09:00
헌법재판소는 국방부 군검찰이 다른 사람의 휴대폰 충전기를 잠시 사용한 A씨에게 절도 혐의를 적용해 기소유예처분한 사건을 취소하라고 선고했다. /더팩트 DB.
헌법재판소는 국방부 군검찰이 다른 사람의 휴대폰 충전기를 잠시 사용한 A씨에게 절도 혐의를 적용해 기소유예처분한 사건을 취소하라고 선고했다. /더팩트 DB.

헌재, 기소유예 처분 취소…"평등권· 행복추구권 침해"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사람은 비교적 가벼운 범법 행위로 재판이나 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범죄 사실은 인정된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검찰의 부주의로 누명을 썼던 시민들에게 잇달아 기소유예 처분 취소 결정을 내려 주목된다.

2018년 2월 9일. A씨가 서울 용산구의 한 공용독서실을 이용한 지 이틀째였다. 자유석에서 공부하다가 휴대전화 배터리 양이 아슬아슬하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충전기가 없었던 A씨는 다른 책상에 놓여있는 충전기를 발견했다. 공용 충전기일 거라는 생각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꽂았다. 얼마 뒤 어머니가 인근 기차역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서둘러 마중을 나가던 A씨는 충전기를 자기 책상 서랍 안에 무심코 넣어뒀다.

다음날 B씨는 독서실 자기 고정좌석에서 충전기가 사라졌다는 걸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독서실 CCTV 영상을 확인해 A씨를 파출소로 불렀다. A씨는 기억을 더듬다 하루 뒤 독서실 서랍에 있던 충전기를 꺼내 독서실 총무에게 전해줬다.

이 사건을 넘겨받은 국방부 보통검찰부는 같은해 6월 26일 A씨를 절도 혐의로 기소유예처분했다. 군 검찰은 "충전기는 시가 만 5000원 상당으로 사안이 그다지 중하지 않고 A씨도 범행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면서도 피의사실은 인정했다. 이에 A씨는 "기소유예 처분이 자신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석달 뒤 처분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헌재에 청구했다.

헌재는 A씨 손을 들어줬다. 헌재는 "검찰이 A씨에게 절도의 고의 내지 불법영득의사(불법적으로 다른 사람의 재물을 자기 소유물처럼 이용하거나 처분하려는 의사)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한데도 절도 혐의를 인정해 기소유예처분한 것은 자의적 검찰권의 행사"라며 A씨의 심판청구를 인용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관 전원 일치된 의견이다.

헌재는 독서실을 이용한 지 2일밖에 안 된 A씨가 휴대폰 충전기가 꽂힌 책상이 지정좌석이 아닌 자유좌석으로 착각했을 수 있다고 봤다. 독서실 관리자와 피해자조차 같은 취지로 진술한 점도 감안했다. A씨가 충전기를 서랍에 두고 나간 다음날 다른 좌석에 앉아 공부를 했던 점도 훔칠 뜻이 없었다는 정황이었다.

◆안과 치료 받고 보험사기범 몰려헌재 판단은

C씨 등은 2016년 1월부터 2017년 2월까지 부산의 한 안과 병원에서 초음파검사 등을 통원치료로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이들이 입원치료 중 검사를 받은 것처럼 허위로 기재한 자료를 보험사에 제출해 1600만원 상당의 보험금을 받았다며 사기 혐의로 기소유예처분 했다. 계약상 입원의료비는 보험사의 보상한도가 커 C씨 등에게 더 유리했다.

이들은 헌재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진료기록 기재에 관여하지 않았고 더 많은 보험금을 받아내려는 의사도 없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헌재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고 15일 밝혔다. C씨 등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기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안과 소속 의사 모두 "진료기록 기재가 청구인들이 더 많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던 것은 아니다"라고 진술한 점도 근거로 들었다.

헌재는 "의사가 아닌 C씨 등은 진료기록 기재가 허위로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보험금을 청구한 날을 기준으로 최소 3년 전부터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보험료를 납부해 왔으며, 부정한 수단으로 보험금을 받아내려 했던 정황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문제가 된 병원 의사 D씨는 통원치료 때 CT촬영 등 검사를 했지만 실질적 진단행위가 이뤄진 입원치료 때를 기준으로 기재했으니 진료기록이 허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D씨는 검찰이 의료법위반, 보험금 편취 사기방조죄로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하자 정식 재판을 요구해 사기방조죄는 무죄, 의료법 위반은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했으나 부산지방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됐다. 헌재는 법원이 판단한대로 진료기록이 허위더라도 C씨 등이 관여한 바가 없다고 본 것이다.

기소유예 처분에 관한 법률적 불복방법은 없지만, 기소유예자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재에서 헌법소원 형태로 심사하고 있다. 헌법소원이 인용되면 기소유예처분은 취소된다.

happ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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