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증인으로 불러주십시오" 법정에 선 사법연수원장
입력: 2020.03.14 05:00 / 수정: 2020.03.14 05:00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 고영한 전 대법관의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 56회 공판에는 현직 사법연수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사진은 2017년 9월22일 대법원장 퇴임식에 참석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뉴시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 고영한 전 대법관의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 56회 공판에는 현직 사법연수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사진은 2017년 9월22일 대법원장 퇴임식에 참석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뉴시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 56회 공판…통진당 소송 각하 판결 도마에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장우성 기자] "판사님, 몇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젊은 배석판사가 조심스럽게 신문에 나서자 머리가 희끗한 선배 판사가 멋쩍게 답했다.

"판사님, 증인이라고 불러주십시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 고영한 전 대법관의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 56회 공판에는 현직 사법연수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문석 사법연수원장은 김명수 대법원장과 동갑(1959년생)에 사법연수원은 2기 선배(13기)다.

김문석 원장이 2015년 서울행정법원장을 지낼 때 벌어진 일이다. 같은해 11월 1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반정우 부장판사)는 이석기 전 의원 등 통합진보당 의원 5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국회의원 지위 확인소송을 각하했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정당해산과 의원직 박탈 권한은 헌법재판소에 있어 법원이 판단할 수 없다고 각하 사유를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통진당 위헌정당해산 결정을 하면서 소속 국회의원들의 지위를 박탈한 바 있다.

행정법원의 소 각하 판결은 대법원 입장에서는 낭패였다. 당시 대법원은 "각하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기각이든 인용이든 의원직 생사여탈권은 법원에 있다는 점을 못박아야 한다고 여겼다. 헌재와 최고 사법기관 지위를 놓고 다퉈온 사법부의 자존심 문제였다. 특히 법률의 최종 해석권이 법원과 헌재 중 어디에 있는지를 두고 해묵은 논쟁도 이어지던 상황이었다.

이보다 앞선 2015년 5월 이규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연수원 동기인 조한창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에게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검토보고' 문건을 전달하기도 했다. 소송의 처리 방향을 담은 이 문건을 재판부에 전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문건은 재판부에 손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조한창 수석부장이 "각하 등은 법리적 문제가 있다"고 에둘러 언질은 줬지만 판결은 각하로 나왔다.

각하 판결을 내린 재판부 판사 3명은 모두 그해 근무평정에서 '우수' 밑 등급인 '보통'을 받았다. 최종 평가자는 김문석 당시 서울행정법원장이었다. 평가서에 적힌 사유는 이랬다.

'일부 사건에 객관적 검토가 부족하고 주관이 강하게 반영되었다.'

'일부 사건 이유 설시가 논리적이지 않았다.'

이 '일부 사건'이란 뭘까. 검찰은 행정13부가 각하 결정을 내린 통진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이라고 의심한다. 대법원이 재판 개입을 시도하다 뜻밖의 판결이 나오자 부당하게 판사들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것이다. 이 평정표는 법원장이 직접 대법원장에게 제출한다.

김문석 원장은 당시 인사평정을 자신이 최종 작성했지만 통진당 사건 때문은 아니었다고 잘라말했다. 대법원이 판사 평정에 반영하라고 요구한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통진당 소송) 판결 결과를 평가한 것이 아닙니다. 설시가 논리적 모순은 없는지, 설득력이 있는지를 평가한 겁니다. 당시 통진당 소 각하 판결이 헌재의 결정에 법원이 귀속되는 독일 헌법에 경도됐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밖에 판사들의 판결문을 읽어보고 여러 논거를 갖고 평가하지 특정사건만 놓고 하는 건 아닙니다. 상급심 재판부의 의견을 듣기도 합니다."

김문석 사법연수원장은 김명수 대법원장과 동갑(1959년생)에 사법연수원은 2기 선배(13기)다. 사진 왼쪽부터 김문석 사법연수원장, 김명수 대법원장./뉴시스
김문석 사법연수원장은 김명수 대법원장과 동갑(1959년생)에 사법연수원은 2기 선배(13기)다. 사진 왼쪽부터 김문석 사법연수원장, 김명수 대법원장./뉴시스

하지만 김문석 원장도 대법원이 통진당 사건에 관심이 많다는 건 미리 알았다. 2015년 3월 5일 여수에서 열린 전국 법원장 간담회에서 만난 강형주 법원행정처 차장 때문이다.

"법원장 간담회에서 저녁을 먹으러 버스로 이동할 때 강형주 차장이 (통진당 사건을 놓고) '거꾸로 됐다'고 하더군요. 그전에는 헌재가 법원 판결을 심리했는데 통진당 사건은 헌재 결정을 법원이 심리하는 형국이라는 취지였죠. 전 미처 그렇게 생각 못 했기 때문에 그 말을 뚜렷하게 기억합니다. 대법원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구나 느꼈죠."

그뒤 조한창 수석부장판사가 법원행정처 사람(이규진 양형위원)을 만나러 간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후 "자료를 줘서 가져왔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다고 했다. 통진당 소송의 결론은 둘째치고, 각하 하지말고 본안 판결을 했으면 좋겠다는 게 행정처 입장이라는 설명이었다. 실제 당시 조한창 수석부장은 이규진 위원에게 재판부에 문건을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김동석 원장은 자신은 통진당 판결이 언제 나왔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챙기지 않았고, 판사들에게 내린 '보통' 평가는 불이익 수준은 아니었다고 했다. 특히 반정우 부장판사는 자신이 행정법원장 재직 시절 좋은 사이였고 기억에 남는 판사 중 한 명이라고 애정을 보였다.

다만 검찰은 이날 법정에서 김 원장이 2015년 2월 27일 법원 전산망에서 통진당 사건을 검색한 기록도 제시했다. 김 원장이 법원장 간담회에서 강형주 차장에게 "거꾸로 됐다"는 말을 듣기 한달 전이다. 김 원장은 다소 당황하며 "왜 (검색)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2015년 12월 회식 자리에서 당시 재판부 중 한 명인 서모 판사에게 "왜 그렇게 판결했느냐"고 질책성 발언을 했다는 주장도 도마에 올랐다. 서 판사가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김 원장은 "질책한 적은 없다. 이미 선고된 걸 놓고 그럴 이유가 있겠느냐"며 "서 판사가 법원장 이야기니까 그렇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다음 56회 공판은 18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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