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헤드셋 쓴 변호사들…코로나가 앞당긴 '스마트법원'
입력: 2020.03.11 05:00 / 수정: 2020.03.11 05:00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일 민사재판 중 변론준비절차를 밟고 있는 사건에 한해 원격영상재판 활용을 권고했다. 대법원은 2024년 9월 전자시스템을 통한 재판 진행 등을 개시하는 걸 목표로 스마트법원 4.0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남용희 기자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일 민사재판 중 변론준비절차를 밟고 있는 사건에 한해 원격영상재판 활용을 권고했다. 대법원은 2024년 9월 전자시스템을 통한 재판 진행 등을 개시하는 걸 목표로 '스마트법원 4.0'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남용희 기자

원격 화상재판 활성화…'공개재판주의' 후퇴 우려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일부 재판 진행이 차질을 빚기도 하지만 '스마트법원'의 시계는 더 빨리 돌아가고 있다.

지난달 24일 대법원 법원행정처 권고로 각급 법원이 사실상 휴정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피고인 구속 사건이나 회생 절차 등 긴급을 요하는 재판은 코로나19 여파에도 대부분 예정대로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일부 재판부는 몇 차례 시범 실시에 그쳤던 원격영상재판(화상재판)을 활용해 재판을 진행했다. 지난 2일 재난안전대책본부가 설치된 서울고등법원이 2일 변론준비절차를 밟고 있는 민사재판부에 한해 원격영상재판 활용을 권고한데 따른 것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4일 서울고법 민사5부(김형두 부장판사)는 한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최대주주를 상대로 제기한 담보금 반환 소송 항소심 변론준비기일을 원격영상재판으로 진행했다.

변론준비기일은 본격적인 재판 절차 돌입에 앞서 소송 당사자 주장과 증거를 정리하고 향후 기일 계획을 수립하는 절차다. 정식 재판은 아니지만 소송 당사자의 입장을 재판부에 처음 전달하는 기일인 만큼 법률 대리를 맡은 변호사들은 반드시 법정에 나와야 한다.

하지만 원격영상재판이 열린 4일 민사 법정에서는 배석 판사도 없이 김형두 부장판사만 마스크를 끼고 법정에 입정했다. 김 부장판사가 3개로 나눠진 화면을 향해 "양측 변호사님들 출석하셨습니까"라고 묻자 화면 속 변호인들은 "네"라고 대답했다. 이후 재판부는 양측이 제출한 서면자료를 화면에 띄워 내보이고, 변호인들은 헤드셋을 쓴 채 의견을 말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증인신문 계획 등 향후 재판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서울고법에 따르면 이같은 원격영상재판은 권고가 내려진 첫 주에만 4건이 진행됐고, 10일 기준 6건의 민사사건 변론준비기일이 화상재판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전국 법원들이 휴정기에 들어간 가운데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코로나19 대응 방안으로 원격영상재판이 시행되고 있다. /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전국 법원들이 휴정기에 들어간 가운데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코로나19 대응 방안으로 원격영상재판이 시행되고 있다. /뉴시스

생소한 광경이지만 사법당국의 '스마트법원'을 향한 움직임은 꾸준했다. 영상재판의 역사는 1995년 12월 '원격영상재판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민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증인이 멀리 떨어진 곳 또는 교통이 불편한 곳에 거주할 경우 △증인의 나이와 심신 상태를 고려했을 때 법정 출석이 부담스러운 경우 △증인신문내용과 소송 당사자와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대면 신문이 어려운 경우 등에 한해 비디오 등 중계장치를 이용한 증인신문이 진행되도록 규정했다.

근무하는 법원까지 출근하지 않아도 소송기록 검토와 판결문 작성 등 재판 관련 사무를 볼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돼 있다. 근무지와 자택 거리가 먼 법관들의 통근 시간·비용을 줄이고, 일과 가정의 양립을 돕겠다는 취지다. 지난 2010년 11월 대법원이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에 '스마트워크센터'를 열고 대전 소재 특허법원 판사들을 대상으로 시범운영한 것이 시초였다. 이후 서울고법과 서울북부지법, 서울동부지법, 부산고법 등에 설치돼 운영 중이다.

이에 더해 대법원은 2024년 9월 개시를 목표로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스마트법원 4.0'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인공지능이 24시간 소송절차와 소장 작성, 소송서류 작성을 지원하고,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온라인 법정에 접속해 집에서도 소송과 재판이 이뤄지도록 돕는다. 기존에는 인터넷 발급을 받고도 이를 스캔해 제출하거나, 아예 기관을 직접 방문해서 내는 각종 신청·제출 서비스도 전자시스템으로 간소화할 전망이다.

시대 변화에 발맞춰 재판 효율성을 증진한다는데 의의가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수천억대 예산이 들어가지만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어서다. '대법원 2020년도 예산요구서'를 보면 대법원은 해당 사업을 위해 2752억원 상당의 예산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반해 화상재판은 시범 실시를 제외하면 1995년 특례법이 지정됐음에도 2020년에 들어서야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민사재판 변론준비기일에 한해 본격화된 실정이다.

또 가사소송의 경우 소송 당사자들의 사생활이 주 내용인 만큼 영상 유출과 해킹 등 사이버 범죄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공판중심주의를 고수하는 형사재판은 재판장부터 피고인까지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재판에 임하는 이례적 풍경을 감수하고도 평소와 다름없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재판의 공정한 운영을 위한 공개재판주의와 스마트법원은 대척점에 서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부 민사재판에서는 시간 절약과 편리함을 위해 스마트법원 프로젝트를 적극 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국민참여재판 활성화 등 공개재판을 위한 과제가 많은 형사재판에 적용하는 건 아직 시기상조다. 민사사건 중에서도 이혼소송 등 가사 분쟁은 소송 당사자들의 내밀한 사정이 다뤄지는 만큼 보안시스템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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