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 -여성법조인 30%시대①] 숫자 늘었지만 '유리천장' 여전하다
입력: 2020.03.07 00:00 / 수정: 2020.03.09 11:47
한국 여성 법조인의 수는 급증했지만 아직 유리천장은 여전하다. 사진은 지난달 3일 오후 경기 과천시 법무부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신임 여성 검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뉴시스
한국 여성 법조인의 수는 급증했지만 아직 '유리천장'은 여전하다. 사진은 지난달 3일 오후 경기 과천시 법무부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신임 여성 검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뉴시스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은 20세기 초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 여성노동자들이 궐기한 기념일이다. 세월이 흘러 국내에서도 남성 전유물로만 여겼던 군을 비롯해 경찰, 법원, 검찰 등의 조직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2001년 첫 여성 장군이 탄생했고, 여성 법조인 증가 추세도 상당하다. 현재 활동중인 법조인 2만 8000여명 중 여성은 9500여명(33%)를 차지하며 10년 전(2010년) 2192명(15%)에 비해 23배 늘었다. 상전벽해 수준이다. 이처럼 조직에서의 성비와 관련해선 성과를 거뒀지만 고용불안 해소 등 해결해 나가야할 문제들도 여전히 많다. 이에 <더팩트>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법조인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여성 법조인의 권익 증진에 필요한 제도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본다. '세계여성의 날' 기념 기획 <여성 법조인 30% 시대> 1편에서는 여성 법조인의 역사와 현황, 한계 등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고용불안·성희롱 등 노출…출산·육아 대책 마련도 시급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2012년 1560여명에 불과하던 여성 변호사수는 2020년 1월 기준 8000명을 넘어섰다. 9년새 5배 가까이 늘었다. 법조계에서 가장 여성 비율이 적었던 여성 검사도 크게 증가했다 2.4%에 불과했던 2000년 여검사 비율은 2018년 30%가 됐다. 변호사를 비롯해 판사와 비교해도 더뎠던 증가폭이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 판사도 마찬가지다. 판사 중 여성 비율은 2000년 7%대에서 2010년 24%대를 거쳐 2018년 29%에 근접했다.

이처럼 판·검사를 비롯한 여성 법조인 비율이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면서 이제는 법정에서 변호사, 판사, 검사가 모두 여성인 경우를 보는 일도 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 법조인들은 여러 제약과 한계에 부딪쳐 좌절하는 일이 적지 않다.

◆ '최초'의 여성 법조인은 이태영 변호사

국내 '여성 법조인 1호'는 고 이태영 변호사(1914~1998)다. 1951년 고등고시 사법과(사법시험의 전신) 2회에 합격했으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로 판사에 임용되지 못하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야당 국회의원 정일형 박사의 아내라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을 지내며 가족법 개정운동을 하는 등 유교적 인습에 저항했다. 이듬해(1952년)에는 첫 여성 판사가 등장했다. 고 황윤석 판사는 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54년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됐지만 32세 나이로 요절했다.

최초의 여성 검사는 조배숙, 임숙경 변호사다. 두 사람은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나란히 82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임관해 최초의 여성 검사로 기록됐다. 다만 과중한 업무를 견디지 못해 각각 1986년과 1987년 판사로 전관했다.

사법시험 '최초' 수석합격의 영예는 이영애 변호사(사법연수원 3기)가 차지했다. 이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수석 졸업에 이어 1971년 사법고시에도 1등을 차지해 화제가 됐다. 1995년 여성 최초의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2004년 법원장에 발탁되며 법조계 '유리천장'을 깨는 데 앞장섰다. 2004년 김영란(사법연수원 11기) 대법원 양형위원장(전 대법관)이 2004년 8월 대법관에 임명될 때 후배들을 위해 법복을 벗었다.

김소영 전 대법관은 네번째 여성 대법관이자 역대 최연소 여성 대법관이다.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했으나, 이영애 변호사가 첫 여성 수석합격자 타이틀을 먼저 가져갔다. 대신 김 전 대법관은 2002년 당시 금녀 구역이었던 법원행정처 첫 여성 조사심의관을 지냈다. 재직 당시 여성 법관의 출산휴가 대책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법원 내 소수자인 여성 판사들의 목소리를 사법행정에 반영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년 만에 여성 검사 2%→30%까지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판·검사 법조인 중 여성 비율은 28.7%로 2008년 10.5%에 비해 18.%p 증가했다. 법조인 중에서는 검사 내 여성 비율이 30.4%로 가장 높았고, 판사(29.7%)와 변호사(28.5%)가 뒤를 이었다. 2018년 같은 통계에 따르면 법조인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8.7%로 2017년(26.1%)보다 2.6%p 증가했다. 역시 검사(30.4%), 판사(29.7%), 변호사(28.5%) 등의 순이다.

10% 비율을 가장 먼저 달성한 직군은 판사(2005년)였다. 이어 검사가 2007년, 변호사는 2009년 등의 순이다. 여성 비율이 20%를 차지한 것 역시 2008년 판사, 2010년 검사, 2014년 변호사 등으로 집계됐다. 여성 판사 비율이 가장 빠르게 증가했으나 30%대는 검사 직군이 2018년 먼저 달성했다.

판·검사 여성비율 고공행진에도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첫 여성 지검장은 검찰 창설 67년 만인 2015년에야 등장했다. 조희진(사법연수원 19기) 변호사는 2014년 '첫 여성 검사장'이 된 데 이어 다시 검찰 내 '여성 1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노공 전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사법연수원 26기)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2018년 7월 여성 최초로 차장검사로 발탁됐다. 당초 법조계에서는 이 전 지청장이 조 변호사, 이영주(22기) 변호사, 노정연(25기) 전주지검장에 이어 네번째 여성 검사장에 발탁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2020년 1월 인사에서 서울고검 검사로 발령나자 다음날 사의를 표명했다.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 사진은 2019년 3월 세계여성의 날 을 기념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35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올해 여성운동상을 수상하기 위해 행사에 참석한 서 검사 모습. /더팩트 DB.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 사진은 2019년 3월 세계여성의 날 을 기념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35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올해 여성운동상을 수상하기 위해 행사에 참석한 서 검사 모습. /더팩트 DB.

◆'출산휴가'가 뭐에요?...육아 등 고용불안 여전

여성 법조인 수 증가로 소수자 인권 증진에 기여하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로 꼽힌다. 실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보려는 노력이 따르고 있으며 인식과 제도 개선 등을 통해 실무에 반영되기도 했다. 대법원 성인지 감수성 판례가 대표적 사례다.

다만 출산과 육아에 따른 고용불안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2016년 한 대기업이 육아휴직을 신청한 직원(변호사)에게 불이익을 감수하는 서약서를 쓰도록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다. 잘 나가는 대기업에서 변호사인 여성 직원에게 불이익을 감수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충격은 배가 됐다.

헌법상 여성은 출산과 육아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고 평등하게 근로할 권리가 있다. 이에따라 육아 휴직으로 인해 불이익을 감수한다는 서약서는 남녀고용평등법에 위배된다.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함께 진행한 2012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출산한 여성변호사 34%는 '출산휴가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출산휴가를 사용한 변호사들 중에서도 법정 휴가 기간인 3개월을 채우지 못한 응답자가 25%에 달했다.(전체 여성 변호사 1560명 중 360명 응답) 특히 출산 후 대체인력 고용이 힘들다는 등의 이유로 무언의 퇴직 압력을 받으며 사실상 해고되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촉발된 '미투운동'의 영향으로 법무부는 '성희롱·성범죄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대책위는 법무·검찰 직원 8194명을 상대로 우편 설문조사(2018년 3월 26일~4월 6일)한 결과 재직 중 성희롱이나 성범죄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7407명으로 집계됐다. 직장 내 여직원 62%가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경험했다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피해 유형별로는 음담패설 등 언어적 성희롱 피해가 51%로 가장 많았고, 외모와 몸매 평가, 회식 중 술 시중이나 춤 강요 등의 순이었다.

여검사 70.6%가 피해를 봤다고 답했고, 특히 재직 3년 이하 초임 검사 42.6%가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당시 성희롱·성범죄대책위원회 권인숙 위원장은 "서지현 검사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밝힌 바 있다.

여성 법조인 수 급증에 비해 고위직이나 의사결정기구에 참여하는 수도 여전히 많지 않다. 여성변호사 직역확대 등 수직·수평적 진출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2009년 로스쿨 제도 도입과 함께 여성 변호사 증가 폭이 커지는데다 청년 변호사가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여성 법조인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은 시급한 문제로 보인다.

현장의 여성 법조인들은 현실의 벽에 답답함을 호소하며 실질적인 변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예비 여성 법조인들부터 법조계 진입에 앞서 녹록지 않은 미래를 예감한다. 직장 생활을 하다 로스쿨에 재학 중인 한 30대 여성은 "대기업에서 5년 정도 근무하다 고용불안 등을 이유로 전문직이 되려고 로스쿨에 입학했다"며 "공부도 힘든데 변호사가 되고 나서도 여자라서 차별받게 된다면 정말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결혼과 출산, 육아는 여전히 여성 법조인이 정착하는 데 걸림돌이다. 서울에서 활동 중인 한 30대 여성 변호사는 "남편이 대학병원 레지던트(수련의) 2년차라서 현실적으로 집에 오지 못해서 혼자 육아를 담당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힘든건 사실"이라며 "평일에는 친정 어머니가 봐주셔서 그나마 일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에서 근무하는 40대 여성 법조인은 "검찰로 임관했지만 결국 직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며 "개업 변호사들은 비교적 스케줄을 용이하게 조절할 수 있지만 법무·검찰에서 근무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최근까지 서울에서 지방으로 근무지를 옮긴 40대 여성 검사는 "주위 동기들이 너무 힘들어하니 결혼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될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한 50대 여성 변호사는 "우리 때야 시어머니가 연락하면 휴가내고 김장하면서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며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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