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사법개혁 핵심 '고법 부장판사' 폐지 눈앞에
입력: 2020.03.05 05:00 / 수정: 2020.03.05 05:00
고등법원 부장판사직 폐지 등 내용을 담은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고등법원 부상판사직 폐지는 김명수(사진) 대법원장의 사법개혁을 위한 숙원 중 하나다. 사진은 지난해 8월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김 원장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매일경제 이승환 기자)
고등법원 부장판사직 폐지 등 내용을 담은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고등법원 부상판사직 폐지는 김명수(사진) 대법원장의 사법개혁을 위한 숙원 중 하나다. 사진은 지난해 8월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김 원장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매일경제 이승환 기자)

발의 1년만에 국회 통과 앞둬…'부장없는 고법' 숙제로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사법개혁의 핵심으로 꼽혔던 고등법원 부장판사직 폐지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발의 1년여 만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5일 국회 본회의 처리만 남겨뒀다. '김명수 대법원'이 출범 직후 법관 승진제도 단계적 폐지안을 제시한 것으로 따지면 2년여 만이다. 특히 '사법농단' 사태를 거치면서 고법 부장제는 사법부 관료화와 법관 독립성 침해의 폐단을 막기 위해 없어져야 할 제도로 지목돼왔다.

◆'대법관으로 가는 길' 고등법원 부장판사

지방법원 부장판사 중 대법원 내부 인사평가를 통해 일부만이 선발되는 고법 부장직은 대법관으로 가는 '엘리트 코스'로 불린다. 고등법원 부장이 되면 관용 차량 지급 등 행정부 차관급 예우를 받는다.

법률상으로는 전보 인사지만 사실상 승진이다 보니 법관들로서는 인사권을 쥔 대법원장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법관은 법과 원칙보다 대법원장 기준에 맞춘 판결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 역시 그 위에 군림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양승태(72·2기)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일어난 '사법농단' 사태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고등법원 부장행이 좌절되면 법관들이 후배 기수를 위해 물러나 이른바 '전관 비리'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물러난 법관은 대부분 로펌으로 들어가고 고액의 수임료와 '전관예우' 등 전관 비리가 되물림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사법농단 사태 정점에 서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입장을 대변하려 재판에 개입하고, 특정 판사들을 물의야기 법관으로 정리해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의혹 등을 받는다. 사진은 지난해 7월 보석으로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는 양 전 원장의 모습. /남용희 기자
'사법농단 사태' 정점에 서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입장을 대변하려 재판에 개입하고, 특정 판사들을 '물의야기 법관'으로 정리해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의혹 등을 받는다. 사진은 지난해 7월 보석으로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는 양 전 원장의 모습. /남용희 기자

◆헌법에도 없는 법관 승진 "진작 폐지됐어야"

개정안에 따르면 제27조 2항 "부(고등법원 재판부)에 부장판사를 둔다"는 조항을 삭제해 고등법원에서 부장판사 개념은 없어진다. 또 제27조 3항 "부장판사는 그 부의 재판에서 재판장이 되며, 고등법원장의 지휘에 따라 그 부의 사무를 감독한다" 역시 삭제해 대등한 자격으로 구성된 재판부의 구성원 중 1인이 재판장을 맡게 된다.

고등법원장 아래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수석부장판사 명칭은 '수석판사'로 하고, 선임부장판사 역시 '선임판사'로 바뀐다. 승진 코스로 불렸던 고등법원 내 부장 개념이 모두 삭제되는 것이다. 다만 현재 고법 부장의 경우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재판장 역할과 차관급 예우를 유지한다.

법관 독립성 침해부터 전관 비리 원인 제공까지 논란이 많았던 제도인 만큼 법조계는 해당 개정안 가결에 "진작 이뤄졌어야 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보학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등 부장을 없애야 한다는 건 예전부터 법률가들과 시민단체 등에서 나오던 제안"이라며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중심이었던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몸담으려는 1차적 목적도 고등 부장 승진을 위해서였다. 고등 부장 제도가 없어지면 법원행정처도 힘을 잃을 것이고 법원 내 관료화 등 사법부 인사제도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필우 대한변호사협회 제2기획이사(입법발전소) 역시 "헌법은 원칙적으로 판사는 대법관과 법관으로만 분리하고 직급 역시 없다. 헌법에는 애초 없던 제도가 법원조직법에서 그동안 자리를 지켜왔던 것"이라며 "고등 부장이 되려면 인사평가를 거칠 수밖에 없어 소위 말하는 '인사권자' 비위에 맞는 재판을 하는 판사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개정안 통과로 고등 부장직이 폐지되면 인사경쟁에서 자유로워져 더욱 공정한 재판이 진행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엘리트 법관들이 거치는 대법원 법원행정처 역시 고등법원 부장판사으로의 승진을 위한 발판이라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남용희 기자
'엘리트' 법관들이 거치는 대법원 법원행정처 역시 고등법원 부장판사으로의 승진을 위한 발판이라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남용희 기자

◆부장없는 고등법원, 직무 평가는 어떻게?

개정안 제안 이유에 따르면 부장직이 폐지된 고등법원 내 재판부는 대등한 자격을 가진 법관으로 구성된다. 부장판사가 재판장을 맡고 2명의 판사가 배석하는 기존 합의부 형태에서 벗어난 '대등재판부' 형태로 해석된다. 이미 고등 부장으로 재직 중인 부장판사에게 소급 적용되지는 않지만, 지난해 2월 정기인사부터 고법 부장 신규 보임은 전면 중단된 상태다.

고등법원 합의부에는 주요사건이 몰리는 만큼 시범단계를 갓 벗어난 대등재판부 활성화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부장판사 출신 법조인은 "기존 합의부의 경우 부장판사인 재판장과 배석 판사의 나이와 경력 차이가 크다 보니 재판부 구성원간 활발한 의사소통이 불가피했다"며 "판사 연차가 높아질수록 맡는 사건도 어렵고 방대해질 수밖에 없는데 고연차 판사로만 구성된 대등재판부의 경우 각자 업무가 과중해 한 판사에게 특정 사건을 몰아줘 무늬만 합의부가 될 우려가 있다"고 봤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고등법원 합의부에 배당되는 사건은 다른 사건보다 매우 어렵고 중대한 건으로, 고등법원 합의부 재판장 위치가 차별화됐던 이유이기도 하다"며 "대등재판부의 경우 기수와 경력이 비슷하다 보니 사실상 단독 재판처럼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고등법원이 다루는 사안이 중대한 만큼 부장직 폐지와 함께 이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승진제도 폐지에 따라 법관의 직무수행능력을 평가할 또 다른 수단도 필요하다. 서보학 교수는 "아무래도 고법 부장이 되면 법원장, 나아가 대법관이 되는 구조여서 법관들이 밤새워 판결문을 쓰고 열심히 일한 부분도 없지 않았을 것"이라며 "법관 독립을 위해 규정된 신분 보장을 악용해 직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는 법관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국민에게 양질의 재판을 제공할 동력과 동기를 어디서 갖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숙제로 남았다"고 제언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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