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남편이 횡령한 돈 생활비로 써도 정당할까
입력: 2020.03.02 12:00 / 수정: 2020.03.02 12:00
1300억원대 회자 자금을 횡령한 뒤 해외로 도피하기 직전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 8만 7000달러를 송금한 것은 재산을 빼돌리기 위한 증여로 봐야 한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 더팩트 DB.
1300억원대 회자 자금을 횡령한 뒤 해외로 도피하기 직전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 8만 7000달러를 송금한 것은 재산을 빼돌리기 위한 증여로 봐야 한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 더팩트 DB.

대법, '무죄' 선고 2심 파기환송..."아내 선의 인정할 근거 부족"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1300억원대 회자 자금을 횡령한 뒤 해외로 도피하기 직전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 8만 7000달러를 송금한 것은 재산을 빼돌리기 위한 증여로 봐야 한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25년간 회사 재무 관리를 담당한 오씨가 미국 유학 중인 아내와 자녀들에게 송금한 8만 7000달러를 돌려달라며 A사가 제기한 소송의 상고심에서 아내 손을 들어준 원심 판결 일부를 파기하고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남편이 회삿돈을 횡령하고 해외 도피 직전 자신에게 미화를 송금한 사실을 알았다고 볼 여지가 크다는 취지다.

오씨는 1992년 A사에 입사해 25년여간 재무관리 업무를 맡았다. 그는 2005년 3월 14일부터 2017년 2월 3일까지 회사자금 1318억원을 횡령하고, 다음날(2017년 2월 4일) 홍콩으로 도피했다. 오씨는 2008년 6월 회사 계좌에서 아내 계좌로 3000만원을 이체했고, 도피 전날(2월 3일) 아내에게 8만 7000달러를 송금한 혐의를 받는다.

A사는 오씨가 회삿돈을 갚지 않기 위해 사해행위를 했다며 8만 7000달러를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사해행위는 돈을 갚을 의무가 있는 채무자가 채무(빚)을 갚지 않기 위해 그 소유재산을 제3자에게 허위로 이전하거나 제3자와 채권·채무가 있는 것처럼 허위 계약 등을 하는 행위를 뜻한다.

앞서 1심은 오씨 아내의 사해행위를 인정하고, 회사에 3000만원뿐 아니라 8만 7000달러를 한화로 환산한 9600여만원을 돌려주라고 선고했다.

1심 법원은 "오씨 아내가 A사 계좌로부터 이체받은 3000만원은 법률상 원인 없이 이루어진 것이므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또 "채무자(오씨)가 채무 초과 상태에서 자신의 재산을 타인에게 증여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이러한 행위는 사해행위"라며 "오씨가 아내에게 미화 8만 7000달러를 증여한 행위는 사해행위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오씨 아내의 악의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오씨 아내는 재판 과정에서 "미화 8만 7000달러는 자녀들의 학비와 생활비 명목으로 받은 것"이라며 자신은 이것이 사해행위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선의의 수익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오씨 아내)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를 선의의 수익자로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2심은 오씨 아내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회사측에서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아내에게 남편의 회삿돈 횡령 사실에 대한 악의나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오씨가 아내의 미국은행 계좌로 2011년 1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송금한 생활비와 교육비 합계는 모두 91만 1488 달러"로 "이 기간 9500달러에서 10만 달러를 19차례 보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아내가 2017년 2월 3일자로 송금된 8만 7000달러를 생활비와 교육비 명목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특히 당시 아내는 오씨가 채무 초과 상태에 있었고, 이날 송금행위로 채무 초과 상태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사정은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봤다.

서울중앙지검. /더팩트 DB.
서울중앙지검. /더팩트 DB.

그러나 대법원은 1심과 같이 회사측 승소로 판단했다. 원심판결 중 사해행위 취소 및 원상회복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환송했다. 오씨가 아내에게 송금한 8만 7000달러를 증여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오씨는 해외 도피 직전 아내 오빠 앞으로 건물 소유권을 이전했고, 8만 700달러를 아내에게 송금한 것 역시 해외 도피가 임박한 시점에 회사 자금을 빼돌려 무상으로 아내에게 보내기 위함이었다"며 "아내 역시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가 8만 7000달러를 자녀들의 학비와 생활비로 사용했다 하더라도 이는 사후사정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오씨 아내의 선의가 객관적이고도 납득할 만한 증거자료 등에 의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려운데도, 원심은 선의의 수익자라고 판단했다"며 "원심판결 중 사해행위 취소 및 원상회복 청구에 관한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밝혔다.

다만 오씨가 2008년 6월 아내에게 송금한 3000만원이 A사 자금을 횡령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선 "피고에게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었음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A사가 제기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기각한 원심은 유지했다.

happ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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