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코로나 기승에도 '법원은 돌고 도네 돌아가네~'
입력: 2020.03.02 05:00 / 수정: 2020.03.02 05:0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에 각급 법원은 24일부터 사실상 휴정기에 들어갔지만, 긴급 사건의 경우 예정대로 재판을 진행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고등법원. /남용희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에 각급 법원은 24일부터 사실상 휴정기에 들어갔지만, 긴급 사건의 경우 예정대로 재판을 진행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고등법원. /남용희 기자

긴급한 재판은 예정대로 진행…'마스크 쓴 판사님' 눈길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한 분씩 들어가실게요. (열화상감지카메라 앞에) 3초간 대기해주세요. 네, 들어가셔도 돼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법원의 시계도 느려졌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법관부터 조국(55)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들까지 주요 재판이 잇따라 미뤄졌다. 하지만 선고만을 앞둔 사건 등 긴급한 재판에 참여하는 관계자들은 법원에 남았다. 평소보다 한산할 뿐 법원은 여전히 쳇바퀴를 돌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례없는 풍경이 법원 곳곳에서 펼쳐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고등법원은 법정으로 직통하는 서관 6번 출입구 등이 폐쇄된 탓에 법원에 들어가려면 동·서관 입구를 거쳐야 한다. 입구에는 법원 관계자부터 민원인까지 꽤 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법원 경위 통제 아래 '한 명씩' 들어갈 수 있다. 26일부터 가동된 열화상감지카메라 검사를 받기 위해서다. 열이 있으면 경보가 울려 법원 내 마련된 대기실로 이동해 병원 이송 등 후속 조치를 기다려야 한다.

엄숙한 법정에서도 이례적인 모습이 연출된다. 방청객이 몰릴 수 있는 주요 재판들 다수가 2주 뒤로 연기됐지만, 피고인이 구속된 항소심 사건은 대부분 예정대로 재판을 진행한다.

자신이 일하는 숙박업소 투숙객을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장대호가 피의자 시절이던 지난해 8월21일 오후 경기 고양경찰서에서 보강 조사를 받기 위해 이동을 하고 있다. /배정한 기자
자신이 일하는 숙박업소 투숙객을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장대호가 피의자 시절이던 지난해 8월21일 오후 경기 고양경찰서에서 보강 조사를 받기 위해 이동을 하고 있다. /배정한 기자

'장대호 사건'도 그 중 하나였다. 지난해 8월 자신이 일하던 서울 구로구 모 숙박업소에서 투숙객을 살해해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지난 27일 오전 11시 서울고법 제3형사부 법정. 장 씨의 2차 공판기일이다. 입석을 포함해 약 3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법정이지만 방청 인원은 절반으로 제한됐다. 마련된 좌석들은 한 자리씩 띄워서 앉아야 했고 입석은 허용되지 않았다.

부장판사와 배석판사 2명을 포함해 검찰, 변호인 모두 마스크를 쓴 채였다. 법정 내 마이크에는 모두 덮개를 씌웠다. 이날 재판에는 장 씨의 범행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피해자 진술이 진행됐다. 오열하는 유족 앞에 앉은 장 씨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마스크를 착용한데다 재판 내내 눈을 질끈 감았고 주먹쥔 양손은 무릎 위를 떠나지 않았다. 증거 채부와 공소장 변경 등 주요 쟁점 사안이 있을 때마다 덮개가 씌워진 마이크에서 멀리 떨어져 변호인과 숨죽여 대화 몇 마디를 나눌 뿐이었다.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의 항소심 결심 공판 역시 예정대로 진행됐다. 지난해 5월 귀가하는 여성을 따라가 집에 침입하려 한 CCTV 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안겼던 그 사건이다.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그는 항소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한창이던 27일 오후 3시 서울고법 제12형사부는 결심공판을 열었다.

조 씨 사건 재판부와 검찰은 마스크를 착용하지는 않았다. 대신 재판부는 방청객 수가 자리의 절반 안팎이었지만 입정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챙겼다.

"혹시 어떤 사건 때문에 오셨나요. 자리를 띄워서 앉아 주세요."

"마스크를 쓰지 않은 분들도 계시는데 각자 사정을 고려해 써주십시오. 재판부 역시 재판 중 마스크를 착용할 수도 있습니다."

피고인 조 씨 역시 하늘색 수의를 입고 마스크를 쓴 모습이었다. 이날 검찰은 재판부에 "조 씨에게 징역5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1심 재판 때보다 다소 야윈 모습의 조 씨는 "피해자께 정말 죄송하다"는 뜻을 마스크 너머 전했다.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파문을 일으킨 정준영(31)·최종훈(30)의 항소심도 이날 같은 재판부 심리로 진행됐다. 이날 출석하기로 한 증인이 불출석해 공전됐지만, 짧은 시간에도 재판부는 정 씨 등 피고인 5명을 따로 앉게 했다.

구속 상태인 정 씨와 최 씨, 전직 클럽 버닝썬 영업직원(MD) 김모 씨와 이들의 공범 권모 씨 역시 마스크를 착용한 채 재판에 임했다.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불구속 상태인 허모 씨는 멀찌감치 떨어져 방청석에서 재판에 참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자 수가 2000명을 넘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일대에서 방역관계자들이 방역을 하고 있다.(기사내용과 무관) /이동률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자 수가 2000명을 넘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일대에서 방역관계자들이 방역을 하고 있다.(기사내용과 무관) /이동률 기자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꾸린 서울고법은 지난 24일부터 3월6일까지 2주간을 휴정기에 준해 구속 관련, 가처분, 집행정지 등 긴급을 요하는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은 탄력적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법원 구성원에게는 마스크 착용을 권고 중이다. 재판 중 마스크 착용 등은 담당 재판부의 소송지휘권에 속해 별도로 공지를 내리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에도 촉박한 구속 기한 등 부득이한 사유로 재판을 진행하게 된 만큼 각 재판부 재량으로 방역에 힘쓰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28일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재판 연기를 권고했지만 재판 진행은 어디까지나 재판부 재량이다. 구속 사건처럼 시간을 다투는 일은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한 듯 하다"며 "마스크 착용 역시 법원 전 구성원에게 공지했지만 재판 중 착용은 재판부 소송지휘에 달려 있다. 상황이 불안하다 보니 반드시 얼굴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각 재판부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주 재판을 위해 법원을 방문했던 한 변호사는 "사실 마스크를 쓰고 가긴 했지만 재판부에서 벗으라고 하면 따를 생각이었는데 막상 재판에 가보니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평소와는 많이 다른 상황"이라며 "피고인이 많은 사건은 방청석까지 분배해 앉게 하기도 하고 사건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방청객은 입정을 제한하는 등 부득이한 상황 속에서 열심히 관리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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