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리(53) 고려대학교 연구교수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 '민주당만 빼고'가 파문을 불렀다. 여당 원내대표의 사과와 고발 취하로 일단락됐지만 칼럼을 실은 경향신문은 공직선거법 제8조 '언론기관의공정보도의무'를 위반했다며 언론중재위원회의 '권고'를 받았다.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캡처 |
'표현의 자유 침해' 비판…언론 형사처벌 사례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임미리(53) 고려대학교 연구교수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 '민주당만 빼고'가 파문을 불렀다. 여당 원내대표의 사과와 고발 취하로 일단락됐지만 칼럼을 실은 경향신문은 공직선거법 제8조 '언론기관의공정보도의무'를 위반했다며 언론중재위원회의 '권고'를 받았다. 칼럼 내용을 놓고 논란은 컸지만 정작 본질적인 공직선거법 문제는 공론장에 올리지 못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추상적 규정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공직선거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민주당만 빼고', 선거법으로 보면
법조계에서는 임 교수의 칼럼이 현행법상으로는 재판에 넘겨진다면 유죄로 볼 여지도 없지 않다고 분석한다. 바로 '공직선거법' 때문이다.
임 교수의 칼럼 말미에는 "선거가 끝난 뒤에도 국민의 눈치를 살피는 정당을 만들자. 그래서 제안한다.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는 구절이 나온다. 다가올 총선에서 특정 정당 후보자를 투표하지 말자는 취지의 주장은 공직선거법 제58조 "(선거에)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에 따라 선거운동으로 분류될 수 있다. 만약 임 교수의 칼럼이 선거운동 일환으로 분류된다면 바로 아래에 있는 제59조 '선거운동기간'에 속하지 않아 사전선거운동이라는 불법 행위로 판단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법원 판례에 비춰 보면 임 교수는 제목처럼 '민주당'을 지목했을 뿐 특정 후보자를 선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선거운동으로 볼 가능성이 낮다. 임 교수가 칼럼을 게재한 1월28일은 각 정당의 총선 후보자 최종명단도 나오지 않은 시기인 점 역시 유리하게 작용한다. 결국 당초 '선거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사전선거운동이라는 범죄도 성립할 수 없는 셈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총선을 두 달 앞둔 시점 "국민 여러분께서 열린우리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주시길 기대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총선 개입 혐의로 탄핵소추를 당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정당의 후보자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정당에 지지 발언을 한 건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며 국회의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헌법재판소 결정은 대법원 판례에도 영향을 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6년 8월 26일 "사전선거운동행위가 성립하려면 특정 후보자 또는 후보자가 되려는 자를 위한 것임을 인식하고 행위를 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행위자에게 당선되거나 또는 되지 못하게 할 목적을 인식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다. 다만 목적을 인식한 정황은 반드시 명시적일 필요는 없으며 "객관적 사정에 비춰 선거인 관점에서 특정 선거에서 당선이나 낙선을 도모하려는 목적을 쉽게 추측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봤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직선거법상 사전선거행위 범죄 성립 요건으로 "특정 후보자 또는 후보자가 되려는 자를 위한 것임을 인식하고 행위를 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행위자에게 당선되거나 또는 되지 못하게 할 목적을 인식해야 한다"를 판시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남용희 기자 |
◆지나치게 추상적·포괄적…"전면 개정 필요"
공직선거법 자체에 대한 갑론을박도 만만치 않다. 공직선거법 제1조 목적은 "대한민국헌법과 지방자치법에 의한 선거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하여 공정히 행하여지도록 하고, 선거와 관련한 부정을 방지함으로써 민주정치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한다.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선거를 입법 목적으로 두면서도, 대법원 판례상 '쉽게 추측할 수 있을 정도'라는 추상적 기준 아래 의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언론 탄압 역시 비판론 근거 중 하나다. 임 교수 칼럼을 실은 경향신문이 권고를 받은 것처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언론사나 언론인이 입건된 사례는 적지 않다. 2012년 1월 '전북일보'는 칼럼 '정동영 불가론'을 게재했다가 이번 사태처럼 권고 결정을 받았다. 형사재판에 넘어가 유죄 선고를 받은 사례도 있다. 2016년 4월 총선 당일 '단원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지금 투표하러 가십시오'라는 내용이 담긴 기사를 편집한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유죄로 판단해 벌금형 선고유예를 선고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국회의원의 비리의혹 폭로 역시 선거기간과 겹치면 불법이 된다. '뉴스타파'는 2016년 3월 '공짜 점심은 없다…나경원 딸 성신여대 부정입학'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가 공직선거법상 공정보도 의무를 위반했다며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으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았다. 같은 해 6월 '뉴스타파'는 경고처분 취소소송을 냈고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 해당 기사를 보도한 기자 역시 나경원(57) 미래통합당 의원 측에게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해 재판에 넘겨졌으나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나경원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난 2016년 딸의 입시비리 의혹을 보도한 '뉴스타파'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사진은 나 의원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대표연설을 경청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
선거기사에 관한 공직선거법 조항 역시 추상적이다. 공직선거법 제8조 "언론사가 정당의 정책이나 후보자에 관해 보도·논평하는 등 경우에는 공정하게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공정성을 법정에서 따지는 방법 역시 전문가들에 따르면 △얼마나 취재가 됐는지 △사실관계 확인을 얼마나 면밀히 했는지 △실제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 등으로 명시적인 기준이 없다. 이에 따라 법조계 일각은 공직선거법의 포괄적인 법문과 들쑥날쑥한 판례가 사회 각계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이필우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입법발전소)는 "현행 공직선거법은 말 그대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유사한 사안임에도 직전 판례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며 "표현의 자유는 물론 선거운동까지 지나치게 제약하고 있어 전면 개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손지원 사단법인 오픈넷 변호사 역시 "공직선거법의 가치는 국민의 소중한 투표권 행사를 위해 국회의원과 국가기관이 공정하게 선거운동을 펼치는데 있다. 그런데 그 공정성의 책임을 시민과 언론에게 묻고 있는 기형적인 법"이라며 "언론의 경우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역으로 국민의 공정한 사고를 방해할 수도 있어 어느 정도 규제 장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직선거법보다는 형법상 저촉될 수 있는 다른 법규들로 처벌하거나,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해 웬만하면 민사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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