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강제징용 재판개입' 임종헌은 누구의 심부름꾼이었나
입력: 2020.02.22 00:00 / 수정: 2020.02.22 10:20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54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54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 두달 만에 재개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폐암 수술을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이 해를 넘겨 다시 열렸다. 지난해 12월 20일 이후 두달여 만에 열린 재판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에 양 전 원장 등 사법부 윗선의 개입이 있었다는 정황이 또 드러났다.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 전 원장 등의 제 54회 공판에는 조모 김앤장 변호사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조 변호사는 강제징용 피해자가 일본 전범기업 신일본제철, 미쓰비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미쓰비시 쪽 대리인을 맡았다.

2012년 5월 대법원이 강제징용 소송 사건을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하고 서울고법도 원고에게 각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자 일본기업들은 모두 재상고했다. 김앤장은 당시 한상호 변호사를 주축으로 조 변호사, 최모 변호사가 한 팀을 꾸려 재상고 사건에 대응했다. 한 변호사는 양승태 전 원장의 사법연수원 1년 후배이자 법원행정처에서 함께 근무한 적도 있는 절친한 사이다. 검찰은 양 전 원장과 한 변호사가 강제징용 소송 건을 놓고 소송 지연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본다.

조 변호사는 검사가 "한 변호사에게 양승태 전 원장이 2012년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고 들은 적이 있느냐"는 묻자 "부정적이라기 보다는 양 전 원장이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이 나가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는 취지로 들었다"고 증언했다. 한상호 변호사도 이전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와 "양 전 원장이 '김능환 대법관(당시 주심)이 귀띔도 안해주더라'라고 말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와 외교부는 1964년 한일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입장이어서 대법원 판결에 비판적이었다. 이에 외교부는 대법원에 의견서를 내기를 바랐으나 당시에는 제도적 절차가 없었다. 양승태 전 원장은 법원의 숙원인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박근혜 정부의 협조가 필요했다. 이 때문에 강제징용 판결을 뒤집거나 지연시키기로 하고 민사소송 규칙을 개정해 '참고인 의견서 제출제도'를 만들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2016년 5월 한상호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외교부에 의견서 요청서를 내달라"고 말했다. 조 변호사도 임 실장이 전화 건 이야기를 한상호 변호사에게 들었다.

박주성 부장검사 : 임종헌 실장이 말한 내용이 혼자 생각이었을까요? 임 실장 윗선인 박병대 법원행정처장, 양승태 대법원장의 뜻을 한 변호사에게 전달하는 거라고 이해하셨습니까?

조 변호사 : 깊이있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요. (임 실장) 혼자 생각은 아닐거다 생각했습니다. (대법원) 재판부 부탁인지 누구 부탁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요.

변호인 반대신문에서도 이 대목이 다시 언급됐다.

이남균 변호사(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변호인) : 임종헌 실장 말이 혼자 생각은 아닐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추측하는 근거는 뭔가요?

조 변호사 : 당시 인상, 느낌이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임 실장이 독단적으로 그랬을까, (대법원)재판부 심부름을 임 실장이 한 게 아닌가(생각했습니다).

지난해 8월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사과를 요구하는 대학생 시위대. /남용희 기자
지난해 8월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사과를 요구하는 대학생 시위대. /남용희 기자

한상호 변호사, 조 변호사, 최 변호사로 이뤄진 '강제징용 소송 팀'은 회의를 하고 나면 문건으로 정리를 했다. 최 변호사의 몫이었고 조 변호사가 검토했다. 한 변호사가 전해준 소송에 얽힌 외교부나 청와대 등의 동향이 주 내용이었다. 그 문건에는 강제징용 소송 전략을 놓고 법원행정처 쪽과 긴밀하게 논의가 오간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도 보인다.

박주성 검사 : 최 변호사가 작성한 문건을 보면 '대법에 새로 제출한 증거를 파기하자는 의견도 있으나 원칙적으로 전원합의체로 회부'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도 한 변호사에게 들은 것인가요?

조 변호사 : 봤던 것 같습니다. 최 변호사가 (한 변호사에게) 들었으니까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양 전 원장은 이날 흰 마스크를 쓴 채 법정에 들어섰다. 재판장도 "마스크를 가져온 분은 모두 쓰셔도 좋다"고 착용을 허용했다.

양승태 전 원장 변호인은 "피고인의 상태는 어떤가"라는 재판장의 질문에 "법정 출석은 가능하지만 안정과 추적진료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회복 중인 피고인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재판을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 공판은 3월 4일에 열린다.

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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