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법정구속 MB, '익명의 제보자'에 허 찔렸다
입력: 2020.02.20 05:00 / 수정: 2020.02.20 05:00
이명박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횡령과 뇌물 등 혐의 관련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횡령과 뇌물 등 혐의 관련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인보이스'로 뇌물액 증가… 청탁·직권남용죄는 피해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이명박(79) 전 대통령이 항소심에서 1심보다 2년 늘어난 징역17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지난해 3월6일 건강상 이유로 청구한 보석을 법원이 받아들이며 석방된 지 약 1년만이다.

항소심 재판 중 추가기소된 51억 원 상당의 뇌물 혐의액 중 절반 이상이 유죄로 판단된 점 등이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자동자 부품업체 다스(DAS)를 실소유한 채 35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횡령했다는 혐의 역시 1심이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한 부분까지 포괄일죄로 구성해 원심보다 5억 원 가량 불어난 약 252억 원을 유죄로 판단했다. 반대로 인사 청탁 대가로 정·재계 인사에게 받은 36억 원 상당의 뇌물 혐의액은 대부분 인정되지 않았다.

◆미국까지 다녀 온 '51억 원어치' 인보이스

삼성 뇌물은 이 전 대통령의 형량을 가를 핵심 혐의였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받는 다스의 미국 소송 비용을 대신 내주는 형태로 뇌물공여·수수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다스 의혹'과도 맞닿아 있다.

당초 검찰은 삼성이 이 전 대통령에게 건넨 혐의액을 67억7000만 원으로 특정했다. 2018년 10월 1심 재판부는 다스는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자임을 인정하며 이학수(74)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승인한 59억 원을 유죄로 판단했다.

2019년 5월28일 항소심 과정에서 검찰이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삼성이 51억 상당의 대납액을 추가로 건넸다는 내용의 인보이스(invoice)를 제보받으며 새로운 국면에 접어 들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익명의 제보자가 보낸 인보이스 사본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반박했으나 한 달 뒤 공소장은 변경됐고 이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 혐의액은 119억여 원까지 늘어났다.

추가기소 뒤에도 인보이스 증거능력은 화두였다. 인보이스를 두고 법정공방이 장기화되자 같은 해 10월에 이르러서는 검찰은 다스 미국 소송을 대리한 미국 로펌 에이킨 검프(Akin Gump)에 해당 인보이스 진위를 입증하기 위해 국제형사 사법공조를 통한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같은 해 12월 한 달 반만에 속개된 재판에서 검찰은 에이킨 검프에서 선서진술서와 함께 진위가 입증된 인보이스들을 제출했고, 재판부는 이를 '적법한 증거'로 채택했다.

19일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인보이스 자료대로 해당 금액이 오간 객관적 사실관계가 인정되지만, 일부 금액은 피고인이 대납 사실을 인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38억 원만을 인정했다. 자문료 형식으로 수수한 51억 원도 뇌물로 인정되며 이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 관련 혐의액은 1심의 59억 원보다 30억이 불어난 89억 원이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비자금 120억 조성 의혹과 관련해 서울동부지검 소속 검찰 직원들이 지난 2018년 1월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다스 서울지사 사무실을 압수수색 하고 있다. /더팩트DB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비자금 120억 조성 의혹과 관련해 서울동부지검 소속 검찰 직원들이 지난 2018년 1월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다스 서울지사 사무실을 압수수색 하고 있다. /더팩트DB

◆입증 까다로운 '청탁 행위' 혐의액 중 19억 빠져

이처럼 '유력 증거'로 혐의액이 1심보다 30억이나 늘어난 이 전 대통령이지만, 반대로 물증을 찾기 쉽지 않은 청탁 관련 혐의는 무죄 판단을 받았다.

이에 따라 공직 자리를 대가로 이팔성(76) 전 우리금융 회장 등에게 36억6000만 원의 뇌물을 수수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정치자금법 위반(사전수뢰)에 대해서는 16억 원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과 달리 4억 원만이 인정됐다.

이 전 회장은 돈을 줬지만 인사 청탁이 좌절된 분노를 담은 '비망록'을 작성해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인으로 꼽혔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실제로 1심 재판부는 비망록이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1230만 원 상당의 양복 선물을 포함해 19억여 원을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 전 회장에게 금품을 받았다는 개연성은 갖췄다"면서도 "당시 피고인은 당선인 신분으로 정치자금법상 사전수뢰죄 성립을 위해서는 구체적 청탁과 뇌물 수수를 거쳤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이 전 회장의 구체적 청탁이 피고인에게 전달됐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이에 따라 비교적 직무관련성과 대가성 범위를 폭넓게 보는 대통령직 재임기간 중 받은 양복 등 2억1000여만 원의 금품만을 유죄로 봤다.

김소남 전 국회의원에게 당 비례대표 추천을 대가로 받은 4억 원에 전액에 대해 1심은 유죄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달랐다. 이 전 대통령이 취임 전 받은 2억 원은 국회의원 공천 관련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없고, 구체적 청탁이 이 전 대통령에게까지 전달된 증거가 없다고 봤다. 혐의액 중 절반만을 유죄로 판단한 이유다.

손병문(70) ABC상사 대표이사에게 받은 2억 원, 최등규(72) 대보그룹 회장에게 받은 5억 원 등도 "피고인 취임 전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을 통해 돈을 받은 사실이 인정되나 명시적 청탁은 물론 묵시적 청탁이 있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던 지난 2018년 3월22일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더팩트DB
이명박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던 지난 2018년 3월22일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더팩트DB

◆1심 이어 2심도 무죄…직권남용 벽 높아

이 전 대통령은 다스 의혹을 놓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도 기소됐다.

김백준(80)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공무원들에게 다스 소송 관련 검토를 지시하고, 처남 고 김재정 씨 사망 시점을 전후로 고인의 차명재산 상속세 절감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내용 등이 골자다.

1심은 해당 혐의에 대해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 국가 행정 작용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있는 업무에 한해 지시할 권한이 있다. 다스 미국 소송과 상속세 절감 방안 검토 등은 이러한 대통령 직권과 이해관계가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직권남용죄는 직무 권한에 속하면서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해야 성립되는 범죄로, 이 전 대통령의 경우 당초 사기업 소송 검토 지시를 내릴 '직권'이 없어 범죄로 성립하지 않는다 취지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다만 지난 1월 직권남용죄 성립요건 중 '의무없는 일'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대법원 판례가 무죄 판단의 근거를 더한 것으로 보인다. 19일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원심과 마찬가지로 "청와대 소속 공무원에게 공소사실과 같은 일을 지시할 일반적 직무권한이 없다"면서 "대법원 판례와 제출된 증거를 검토한 결과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언급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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