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존경하는 재판장님'도 탄핵될 수 있을까
입력: 2020.02.19 05:00 / 수정: 2020.02.19 05:00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민변·한국진보연대 등 시민단체가 포함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가 2018년 10월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된 법관들에 대한 탄핵소추안 초안을 국회에 전달하고 해당 초안의 발의 및 의결을 촉구하고 있다. 당시 탄핵소추안 초안에서 대상자로 거명된 법관은 권순일 대법관과 이민걸·이규진·김민수·박상언·정다주 판사다. /더팩트DB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민변·한국진보연대 등 시민단체가 포함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가 2018년 10월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된 법관들에 대한 탄핵소추안 초안을 국회에 전달하고 해당 초안의 발의 및 의결을 촉구하고 있다. 당시 탄핵소추안 초안에서 대상자로 거명된 법관은 권순일 대법관과 이민걸·이규진·김민수·박상언·정다주 판사다. /더팩트DB

헌법상 근거는 충분…악용 우려에 신중론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돼 재판을 받은 법관이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사태가 불거질 당시 대두됐던 법관 탄핵 여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무죄 판단 사유로 대부분 "범죄로 성립하지 않아서"를 든 만큼, 형사처벌로 단죄할 수 없다면 탄핵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취지다.

◆"법원이 단죄할 수 없다면 국회가 나서야"

지난달 13일 박근혜 정부의 '비선 의료진'으로 알려진 박채윤 씨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던 유해용(54·사법연수원 19기)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시작으로 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된 법관 5명이 연이어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 사태로 재판에 넘겨진 법관이 14명인 걸 감안하면 3분의 1에 달하는 수치다.

2월에 들어서는 13일 2016년 '정운호 게이트' 당시 검찰 수사기록을 대법원에 넘긴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55·사법연수원 19기)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 부장판사·성창호(48·25기)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조의연(54·24기)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튿날에는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임성근(56·27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유 전 연구관의 일부 혐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하지만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받은 신 부장판사 등에 대해서는 누설한 수사기록을 '공무상 비밀'로 볼 수 없어서, 임 부장판사의 경우 재판 개입이라는 위헌적 행위를 저질렀지만 형법상 직권남용죄로 볼 수 없어서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종합하면 사법을 농단한 행위는 실제로 했고, 잘못된 일이지만 법리상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각계에서는 부당한 재판 관여 등 사실관계가 드러난 만큼 '형법'으로 처벌이 어렵다면 '헌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바로 법관 탄핵이다.

임 부장판사의 선고 공판이 있었던 14일 참여연대는 "국회가 나서 사법농단에 관여한 현직 법관을 탄핵해야 한다"는 취지의 논평을 냈다. 참여연대는 "법원의 '셀프 재판'으로는 사법농단 사태의 책임자들을 제대로 처벌할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특히 임 부장판사는 법관 독립을 침해한 위헌적 행위가 실제로 이뤄졌다면서도,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며 "재판 개입의 위헌성이 확인된 만큼 국회가 나서 사법농단에 간여한 현직 법관 탄핵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일을 하루 앞뒀던 지난 2017년 3월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더팩트DB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일을 하루 앞뒀던 지난 2017년 3월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더팩트DB

◆해외에서도 드문 '법관 탄핵'…"악용 우려 크다"

헌법 65조1항은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법관 역시 직무 집행에 있어 위헌·위법한 행위를 했다면 '탄핵 대상'이 된다. 탄핵 안건을 올려 국회의원 3분의 1 이상이 찬성하면(대통령은 3분의 2) 탄핵 소추안이 의결되고, 헌법재판소 재판관 6명 이상이 찬성하면 탄핵이 결정된다.

근거조항에 따라 법관이 탄핵의 갈림길에 섰지만 국회 의결의 벽을 높지 못했다. 1995년 유태흥 전 대법원장의 탄핵소추결의안은 부결됐고, 2009년 신영철(66·8기) 전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됐지만 72시간 이내 표결이 이뤄지지 않아 국회법에 따라 폐기됐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법관탄핵 해외사례-미국과 일본 사례 중심으로'(2018)에 따르면 해외 역시 법관의 탄핵 사례는 드물다. 연방하원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뒤 연방상원에서 심판하는 형태로 탄핵이 이뤄지는 미국의 경우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연방법관은 15명, 실제로 탄핵된 법관은 8명 뿐이었다. 탄핵 제도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은 20세기에 들어서부터 탄핵 사례가 없었고 법관탄핵제도가 마련돼 있는 독일 역시 사례가 없다.

다른 나라와 달리 헌법상 탄핵 대상으로 재판관만을 적시한 일본은 탄핵재판소 결정에 따라 7명이 파면됐다. 다만 일본은 직무집행에 관한 위헌·위법적 행위만을 탄핵 사유로 규정한 한국과 달리 "직무와 관련 여부를 불문하고 재판관으로서 위신을 현저하게 실추하는 비행을 저지른 경우"로 폭넓게 보고 있다. 실제로 탄핵된 법관의 사유를 살펴보면 직무태만이나 뇌물처럼 직무에 관한 사정부터 성매매와 스토킹, 강제추행 등으로 다양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2월11일 검찰 출석을 앞두고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포토라인을 바라보고 있다. /더팩트DB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2월11일 검찰 출석을 앞두고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포토라인을 바라보고 있다. /더팩트DB

법률 전문가들은 이처럼 법관 탄핵 사례가 전세계적으로 드문 원인은 '악용될 우려'라고 입을 모은다. 이번 사법농단 사태 역시 직급이 높은 법관이 재판장에게 압력을 가한 정황이 드러난 만큼 탄핵의 필요성이 대두될 수는 있지만,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법부에서도 재판 개입의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위헌적 행위라고 판단한 만큼 법관 탄핵이 화두에 오를 수 있다. 법관들 중에서도 '엘리트'로 통하는 대법원 법원행정처나 형사수석의 재판 개입이나 압력은 특히 좌시할 수 없는 문제"라면서도 "국회를 거치는 탄핵은 결국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있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판결하는 법관을 억압할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탄핵의 선례가 형성된 이상 법관이 법치와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심증을 형성할 '재량권'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법관이란 직업은 신분이 보장된 상태에서 법과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심증을 형성할 재량이 있는데 법관 탄핵 선례가 생긴다면 신분 보장과 재량권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고 사법부 독립성 침해라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며 "법관의 신분 보장과 재량권 확보는 곧 국민이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와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탄핵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건 경계해야할 일"이라고 했다.

다만 사상 초유로 대법원장이 구속 기소된데다 1심에서 재판개입 의혹이 반헌법적 행위로 규정되는 등 '사법농단' 사태의 엄중함은 확인됐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태에 연루된 법관에게 재판 결과와 별도로 책임을 묻는 방법을 놓고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2018년 법관대표회의는 법원행정처의 재판개입에 연루된 판사들의 탄핵을 추진해야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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