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공소장 비공개 논란' 법적으로 따져보니
입력: 2020.02.10 05:00 / 수정: 2020.02.10 05:00
법무부가 지난 4일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관련 공소장을 비공개하기로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추미애(62)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3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종합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장관 취임식에 참석해 취임사를 하는 모습. /과천=이덕인 기자
법무부가 지난 4일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관련 공소장을 비공개하기로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추미애(62)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3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종합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장관 취임식에 참석해 취임사를 하는 모습. /과천=이덕인 기자

헌법상 가치 서로 충돌…독일은 공판 전 공개하면 처벌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법무부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으로 재판을 받게 된 송철호(71) 울산시장과 황운하(58) 전 울산경찰청장 등 13명의 공소장 전문을 국회에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법무부는 "당초 공소장 공개는 잘못된 관행으로, 앞으로 원문 대신 요지 등을 담은 자료 제공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했다. 이에 국회법 위반은 물론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추미애(62) 법무부 장관은 4일 "원문 제출시 헌법상 규정된 피고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사건 관계인의 사생활과 명예 등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며 국회가 요구한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피고인 13명의 공소장을 비공개 결정했다. 대신 A4 용지 3쪽 가량의 공소사실 요지만 제출했다. 법원에서 공판이 시작되면 절차에 따라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논란은 법적으로도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헌법을 봐도 국민의 알권리(헌법 제21조)와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헌법 제17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무죄추정의 원칙(헌법 제27조) 등이 충돌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공소장 공개와 관계된 하위법 해석도 다양하다.

◆'피의사실 공표' 처벌하지만 기소-공판 사이 공백

공소장은 형사재판에 한해 작성된다. 검찰이 공소를 제기하게 된 배경과 수사과정에서 소명된 혐의내용, 피의자의 범죄사실 등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쉽게 말해 검사가 수사한 결과 피의자가 죄를 지었고, 현행법에 저촉되는 혐의로 보이니 이를 판단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는 공문서다. 공소장을 받아든 법원의 재판부는 재판을 열어 검사의 입증과 변호사의 변론, 피고인 본인의 주장까지 직접 들은 뒤 유·무죄 판단을 내리게 된다. 때로는 피고인의 혐의가 인정돼 유죄 판결이 나오거나 혐의는커녕 공소장 내 사실관계조차 입증되지 않아 무죄 판단이 나오기도 한다.

이에 따라 현행법은 수사기관의 수사 단계에서 피의사실 공표를 범죄로 처벌하고 있다. 형법 126조 '피의사실공표'는 "검찰·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하던 중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각 조직내 훈령과 공보 준칙 등에 따라 기소 전인데도 피의사실을 공공연히 밝히는 사례가 많아 사문화됐다는 지적을 받지만 엄연히 '범죄'로 다스린다.

그렇다면 공소장은 어떨까. 공소장의 존재는 이미 기소가 됐다는 의미라 피의사실공표죄에서는 벗어난다. 하지만 공소장에는 수사과정 중 확보된 '피의사실'이 아닌 피고인의 '공소사실'을 담는 과정에서 사건 관계자의 신상 정보까지 자세히 담겨 무분별한 공표는 경계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공적인 인물의 경우 비실명화 작업을 거친 공소장이어도 사건에 연루된 이들의 신상까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서 사생활 보호를 위해 금지하는 조항들이 사실상 무의미해지는 실정이다.

헌법은 "피고인 또는 피의자는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명시한다. 검찰 측 주장만을 담은 공소사실이 공표되는 것 역시 좌시할 수만은 없는 문제다. 이에 따라 무죄 추정 원칙을 채택하는 나라 중에는 공소사실 중 일부 내용이라도 길게는 소송 절차가 종결될 때까지 공개를 금지하는 나라도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피의사실공표죄의 합리적 적용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독일 형법 제353조의 하위 항목 중에는 "공판에서의 낭독 또는 소송절차 종료 이전에 공소장 또는 형사소송절차·과태료부과절차·징계절차에 관한 기타 공적 문서의 전부 또는 주요 부분을 원문대로 공연히 전달한 자"를 처벌 대상으로 본다.

6일 YTN '노영희의출발새아침'에 출연한 조수진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 역시 "참여정부 때부터 10여 년간 공소장이 공개되며 생긴 부작용이 이름만 가렸을 뿐 나머지는 그대로인 공소장이 의원들에게 공개된 뒤 실시간으로 언론에 다 나갔다는 것"이라며 "재판을 하기도 전에 공소장 내용이 이슈가 됐지만 정작 재판에서는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사례도 있다. 대부분 1·2심의 무죄 판결은 기억하지도 못한다"고 지적했다.

4일 법무부에서 앞으로 검찰에게 받은 공소장 전문을 공개하지 않을 거라고 선언하자 일각에서는 국회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뉴시스
4일 법무부에서 앞으로 검찰에게 받은 공소장 전문을 공개하지 않을 거라고 선언하자 일각에서는 '국회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뉴시스

공소장의 공개를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법 조항도 있다. 정보공개법 제9조 4항은 '진행 중인 재판 정보와 범죄의 예방, 수사, 공소의 제기 및 유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중략)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를 비공개 대상으로 정했다. 2004년 개정된 정보공개법은 정보 공개 범위 확대를 위해 비공개할 수 있는 정보를 법적으로 명시했다. 알권리 확대를 위해 법을 개정하면서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정보'는 예외로 했다. 형사소송법 제47조도 "소송에 관한 서류는 공판의 개정 전에는 공익상 필요한 기타 상당한 이유가 없으면 공개하지 못한다"고 원칙적으로 재판 전 공소장 공개를 허용하지 않는다.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은 공소장을 제 1회 공판 개시 5일 전까지 받아볼 수 있다. 피고인 입장에서는 기소 즉시 공소장이 외부에 공개되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는다는 주장도 있다. 다퉈야 할 검찰의 공소사실이 공판 개시 전 언론을 통해 알려져 부정적 여론이 형성된다. 그 동안 피고인은 공소장을 송달받지 못할 뿐 아니라 방어권을 위해 수사기록을 검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공소장을 공개할 수 있는 '공익'을 놓고 문제는 남는다. 제93대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법무법인 공간)는 "공소장 공개 뒤 언론보도로 이어지는 사건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고, 피의자 역시 공적인 인물이다. 오히려 공소장 공개 뒤 여론을 살피며 반박할 논거를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며 "반대로 그동안 의혹에 불과했던 내용이 낱낱이 밝혀지며 검찰의 수사과정과 기소에 문제점이 있지 않았는지 분석할 기회의 폭도 넓어진다고 본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5일 논평에서 "전직 청와대 수석과 현직 울산시장 등이 개입한 혐의가 있는 중대한 사건으로 사건관계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명예와 사생활 보호가 알권리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고 공익상 공개할 필요성이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비공개가 국회법 위반?…국회는 법 지켰나

법무부는 검찰에서 비실명화 작업을 거친 공소장 전문을 받으면 자료제출 요구 절차를 거쳐 국회에 제공해왔다. 검찰이 후속 수사를 위해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은 적은 있다. 법무부가 비공개 결정을 내린 건 전례가 없다. 법무부를 통해 공소장을 건네 받았던 국회는 물론 '의원실'에서 공소장을 입수해 온 언론이 반발하는 이유다.

법무부의 비공개 결정은 '국회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법 제128조 '보고·서류 등의 제출 요구'는 "본회의, 위원회 또는 소위원회는 안건의 심의 또는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와 직접 관련된 보고 또는 서류와 해당 기관이 보유한 사진·영상물의 제출을 정부, 행정기관 등에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은 "서류 등의 제출을 요구받은 국가기관이 제4조제1항 단서(국가기밀에 관한 사항)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이를 거부한 때에는 본회의 또는 해당 위원회 의결로 주무부장관에 대해 해명하도록 하거나 관계자에 대한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고 정한다.

결국 국회가 국가기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 국가 기밀 등 중대한 사유가 없는 이상 따라야한다는 취지다. 이를 인용해 법무부가 공소장 비공개 결정의 논거로 든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놓고 훈령이 법규를 이길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난해 10월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정점식(55) 자유한국당 의원이 정경심(58) 동양대학교 교수의 공소장을 띄워둔 채 서울고검, 서울중앙지검, 서울동부지검, 서울남부지검, 서울북부지검, 서울서부지검, 의정부지검, 인천지검, 수원고검, 수원지검, 춘천지검 국정감사에서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0월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정점식(55) 자유한국당 의원이 정경심(58) 동양대학교 교수의 공소장을 띄워둔 채 서울고검, 서울중앙지검, 서울동부지검, 서울남부지검, 서울북부지검, 서울서부지검, 의정부지검, 인천지검, 수원고검, 수원지검, 춘천지검 국정감사에서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뉴시스

법조계 일각에서는 국회법을 두고 정치권 역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국회 역시 △안건 심의 △국정감사 △국정조사라는 법에서 규정하는 뚜렷한 목적없이 공소장 전문을 받아 정치적 목적으로 공개해왔다는 지적이다. 훈령 위에 법규가 있다는 주장처럼 국회법보다 상위에 있는 헌법이 정하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무죄 추정의 원칙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 △행복추구권이 침해될 우려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이필우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입법발전소)는 "국회가 헌법 위반도 아닌 일반 형법을 위반한 자의 공소장을 재판 시작 전부터 요구하는 목적이 정당한가부터 고민해 봐야 한다"며 "이번 사태의 쟁점은 피의사실공표나 무죄추정원칙보다 개인의 사생활과 명예, 행복추구권이 침해될 수 있는 내용이 기재된 공소장을 단순히 '국회는 국가기관에 대해 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는 근거로 요청할 수 있냐는 문제다. 오랜 세월 이어진 관행을 돌이켜 보면 국회법에서 말하는 대로 안건 심의나 국정감사, 국정조사라는 뚜렷한 목적으로 공소장을 받아 왔는지 점검할 필요성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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