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유행으로 관광객이 뜸해진 제주도를 찾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 사진은 눈 쌓인 한라산 모습. /더팩트 DB |
"싸고 쾌적, 지금이 오히려 기회"..."동선 최소화해야" 우려도
[더팩트ㅣ윤용민 기자] "눈 쌓인 한라산에 호젓한 진짜 제주도를 보고 싶으시면 정말 혼자옵서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각종 모임이 취소되고 주요 관광지에 중국인 단체관광객(유커)까지 줄어들었다. 오히려 이런 한가한 때를 역이용하는 '여행족'들이 있다.
그들에게 개강 연기와 저렴해진 항공권 가격은 더 안락한 여행을 보장해주는 일종의 '옵션'이다. 특히 여행 마니아들은 시끌벅적한 유커가 사라진 지금이 진짜 제주를 느낄 수 있는 시기라고 추천한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직장인 나모(30) 씨는 이번 주부터 이른바 '코로나 휴가'에 들어갔다. 신종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자 곧장 회사에 휴가를 낸 나 씨는 지난 5일 제주도행 비행기에 무작정 몸을 실었다. 5년 전 메르스 당시의 기억이 이번 여행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라고 한다.
나 씨는 "어려서부터 자주 제주에 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유커에 치이고 밀려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며 "그러다 지난 메르스 사태 당시 우연히 간 제주 출장에서 내가 항상 그리던 '진짜 제주도'를 봤다"고 말했다.
잇따른 예약 취소로 항공권 가격이 급락한 것도 여행을 결심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왕복 항공권이 4만원으로 평소 반값도 안 되는 수준"이라며 "제주도 관광 종사자 분들은 힘들겠지만, 여행객들에겐 지금이 진짜 제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적기"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항공기 요금은 급락했다. 사진은 텅 빈 제주도행 항공기 좌석 모습. /독자 제공 |
실제 김포~제주 노선의 경우 평소 10만원가량 하던 요금이 이번 주말엔 왕복 기준으로 2만~3만원까지 떨어졌다. 저가 항공사에서는 공항세와 유류할증료를 제외하고 1만5000원에 표를 내놓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대학가엔 비상이 걸렸지만 대학생들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여행의 기회이기도 하다.
올해 서울 모 대학교 졸업반인 김모(27) 씨는 "이번 겨울방학에 이것 저것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마지막으로 여유있게 지낼 수 있는 보너스같은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해 제주도행 티켓을 끊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도를 다녀온 친구 얘기를 들으니 평소와 달리 비행기 안이 텅텅 비었다고 한다"며 "이번 기회에 제주도에서 조용하게 머리를 식히고 싶다"고 덧붙였다.
제주도민들은 유커와 국내 관광객이 자취를 감추자 '이게 바로 제주'라며 진정한 제주의 겨울을 만끽하고 있다.
제주의 모 중학교 한 교사(34·여)는 "장사를 하시는 분들한텐 죄송한 얘기지만, 호젓한 제주는 정말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며 멋쩍은 듯 웃었다.
제주에서 나서 자란 그는 "주말에 차를 타고 이곳 저곳을 둘러볼 예정"이라며 "육지사람들도 이번 기회에 '제주도 푸른밤'을 한 번 느껴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우려에 따라 무사증(무비자) 입국제도가 일시 중단된 제주국제공항 국제선 출국장. /뉴시스 |
이러한 틈새 시장을 노리는 여행족들을 놓고 일각에서는 걱정섞인 시선도 보낸다. 한창 신종 코로나 지역 사회 확산이 우려되는 국면이기 때문이다.
현재 제주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을 방문한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했다. 무사증(무비자) 입국마저 전면 금지한 상태다.
의료계 관계자는 "접촉 가능성만을 두고 시민들의 이동을 심각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그래도 가급적이면 동선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여행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느냐"며 "지금은 분명 엄중한 상황이기 때문에 감성보다는 이성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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