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검찰 조서의 '몰락'…​​​​​​​재판이 더 치열해진다
입력: 2020.01.18 00:00 / 수정: 2020.01.28 10:38
13일 국회는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 증거 효력을 제한하는 취지의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사진은 영화 내부자들에서 우장훈 검사(조승우)가 피의자 석명관(권혁풍)을 조사 중인 모습. /네이버영화 제공
13일 국회는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 증거 효력을 제한하는 취지의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사진은 영화 '내부자들'에서 우장훈 검사(조승우)가 피의자 석명관(권혁풍)을 조사 중인 모습. /네이버영화 제공

공판중심주의 가속도…​​​​​​​진술 의존도 높은 뇌물·​​​​​​​성범죄 사건은 과제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피고인 측 동의에 따라 검찰 피의자신문조서를 제시합니다."

곧 법정에서 이같은 말을 듣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 등 '검경수사권조정법안'이 통과됐다.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을 갖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개정 형소법으로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이 제한된다는 사실은 덜 주목받았다. 몇 가지 요건을 갖추면 피고인 측 동의 없이 증거로 채택되던 검찰 신문조서의 영향력에 제동이 걸리며 형사재판 풍경도 달라질 전망이다.

개정된 형소법 조항 중 312조 1항은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서 공판 절차에서 피의자였던 피고인 측이 그 내용을 인정할 때에만 증거로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현행법의 "검사가 피고인이 된 피의자 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서, 피고인 진술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돼 있음이 인정되고 조서에 기재된 진술이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해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해 증거로 할 수 있다"는 조항에서 '피고인 동의'라는 제어 장치가 추가됐다.

또 "피고인이 조서 성립 진정을 부인하는 경우 조서 내용과 피고인 진술 내용이 동일함을 영상녹화물이나 그 밖의 객관적 방법에 의해 증명하고,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확보된 진술임을 증명하면 증거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한 현행 형소법 312조 2항은 아예 삭제됐다.

사법경찰관이 작성하는 경찰의 피의자신문조서는 현행법에서도 312조 제3항에 따라 피고인 측 동의 하에서만 증거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으로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 효력이 경찰 조서와 사실상 동일 선상에 놓이게 됐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국방부 검찰단으로부터 이관받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관련 기록물에 포함된 윤보선 전 대통령의 피의자신문조서의 모습. /뉴시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국방부 검찰단으로부터 이관받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관련 기록물에 포함된 윤보선 전 대통령의 피의자신문조서의 모습. /뉴시스

법조계에서는 검찰과 경찰이 기존 상하관계를 벗어나 협력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검찰개혁'에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라는데 의미를 둔다. 또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이 지켜보는 법정에서 다뤄진 진술과 증거를 우선으로 보는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주의 등 형사재판 대원칙을 지키는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한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도 강압적이거나 무리하게 조서를 받아낼 필요가 줄어들어 피의자 인권이 향상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하태훈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의 경찰 수사지휘권 축소가 검찰개혁을 위한 주요한 과업인 만큼, 검․경 피의자신문조서 증거효력에 차등을 뒀던 기존 법규 역시 수사권 조정과 뗄 수 없는 문제였다"며 "검찰 피의자신문조서가 절대적 영향력을 갖다 보니 정작 재판에 넘겨진 후 공판이 형식적인 '조서 재판'으로 전락하는 문제점이 있었는데 여기서 탈피하게 됐다. (개정안이) 공판중심주의로 가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남승한 변호사(법률사무소 바로)는 "검․경 모두 공판을 위해 피의자 조사를 신중히 해야 할 책임이 무거워져 더 양질의 수사와 재판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며 "재판 절차가 복잡해져 피고인이 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데, 피고인으로서는 양질의 수사와 재판을 받을 권리가 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재판부 배당 사건을 줄이거나 법관 인원을 늘리는 등 제도적으로 보완할 문제지, 공판중심주의까지 해치며 검찰의 신문 조서만을 높이 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남용희 기자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남용희 기자

일각에서는 공판에서 증거 인정 여부가 엄격해짐에 따라 수사기관 진술이 사실상 무의미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피의자가 이를 악용해 재판에 넘겨진 뒤 신빙성 있는 진술조차 부인해 재판 절차가 늘어질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도 있다.

특히 성범죄와 뇌물 사건처럼 피의자 진술이 혐의 입증에 절대적인 범죄 사건의 경우 더 난항을 겪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충윤 변호사(법무법인 해율)는 "피고인이 수사기관 진술을 부정할 경우 사실상 수사가 원점으로 돌아간다. 소송경제적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공판이 치열해지는 건 장점으로 볼 수 있지만 뇌물죄처럼 진술에 의존하는 사건은 수수자와 공여자가 공판에서 혐의를 부인하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가 선고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장(서경대학교 공공인적자원학부 교수)은 "이번 개정안으로 검찰의 피의자신문과 법원의 조서 검토가 더 꼼꼼하게 이뤄진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성범죄와 뇌물 범죄처럼 피의자 진술이 중요하고 물증을 찾기 힘든 사건은 재판이 지연될 염려가 있다. 공판으로 넘어가는 사건을 줄여 법관이 소수 사건에 집중해 신속한 재판을 진행하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전제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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