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 제50대 회장이 24일 서울 강남구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실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신년맞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
"변호사 사회 개혁·직역수호 등 새해 3대 목표"…개혁위원회 본격 가동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2019년은 법조계 신뢰도를 추락시킨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된 법관들이 본격적으로 법의 심판대에 오른 해였다. 같은 해 2월 국내 최대 변호사 법정단체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대한변협) 제50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찬희(55·사법연수원 30기) 회장의 어깨도 무거웠다. 법조계 한 축인 변호사들을 대표하는 회장으로서 소통과 협조, 상생을 일념으로 삼았다. 싸우지 않는 법이 최고의 법, 싸우지 않고 성과로서 이기는 게 진정한 승자라는 교훈은 변호사 이찬희가 아닌 '인간 이찬희'로서 경험을 통해 터득한 교훈이었다.
사법농단 사태 외에도 검찰개혁을 위한 움직임과 유사직역 갈등 등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만난 이 회장은 이를 두고 "운이 좋았다"고 표현한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일념으로 삼은 "소통과 협조를 통한 상생"을 마음에 품고 법조계 각 분야를 넘나들며 변호사와 피고인을 위한 변론권 강화 기틀을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이 회장은 "회장 임기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 2년이다. 올 한해 그래도 많은 일이 있어 변호사들을 위한 업무에 쉼 없이 달릴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런 이 회장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원래 조직에서 비위를 일으켜 '도피성'으로 변호사 등록을 하는 전관들을 그는 도저히 받아줄 수 없었다. 현행법상 변호사 등록신청일로부터 3개월이 지나면 변호사 자격을 내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변호사는 국민 인권을 수호하는 직업이다. 자격이 없는 사람은 할 수 있는데 까지 거절, 또 거절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해마다 급격히 감소해 대한변협의 성과로 꼽히기도 하는 '전관예우' 문제도 감소가 아닌 근절이 돼야 한다며 다시 신년의 목표로 세웠다. 집행부 중심이었던 대한변협 내부 개혁을 위해 출범시킨 개혁위원회의 목표 중 하나로 '전관예우 척결'이 자리매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19년 사상초유의 대법원장 구속,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 재판 돌입 등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급락했다. 같은 해 대한변협 회장 임기를 시작했는데.
사법부는 국가 분쟁을 해결하는 최후의 보루인 만큼 국민의 절대적 신뢰를 토대로 서 있는 존재다. 사법부 운영의 핵심인 재판 공정성에 문제가 제기돼 전 국민적 불신이 생기고 일대 혼란이 시작됐다. 제가 회장으로 취임한 올해는 검찰개혁이라는 국민적 요청에 검찰이 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소 의견 차이가 생기며 논란이 더해진 해였다. 대한변협 역시 혼란스러운 시기에 사법부, 검찰과 대립하고 변호사들끼리도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법조3륜'인 법원과 검찰, 변호사 세 그룹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며 발전하는 게 원래 원칙이다. 협회장이 되며 저는 이 원칙을 다시 살려 우리 3륜이 서로 소통하고 신뢰하며 상생 발전해 돌아선 국민의 마음을 되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지난 한해는 무엇보다 소통과 협조의 자세로 매사에 임했다. 변호사를 대표해 사법행정자문회의에 직접 위원으로 참석해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부 개혁 의지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도왔고, 검찰과도 끊임없이 소통하며 변호사와 피고인 변론권 강화를 강조했다. 상호이해와 협조를 통해 함께 발전할 소통 흐름의 창구를 만드는 걸 그 해답으로 믿고 움직였다.
-'법조3륜'으로 불리지만 의뢰인을 지켜야 하는 변호사는 평소 법정에서 판사·검사와 양보없이 논쟁하기도 하는데.
물론 법정에서 법리논쟁은 재지 않고 제대로 해야 한다. (웃음) 앞서 말씀드렸듯 사법농단 사태 당시 법조3륜은 물론 변호사들끼리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소통이 안돼 테러방지법처럼 국민 인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높은 법안을 찬성한다는 대한변협 공식 의견서가 나가 논란을 일으킨 적도 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한때 선배 변호사들께서 법원과 검찰이 시끄럽고 약해졌을 때 우리 변호사들이 목소리를 높여 압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저는 그건 아니라고 본다. 대한민국에는 4800개가 넘는 법이 있는데, 저는 가장 좋은 법은 '싸우지 않는 법'이라 생각한다. 다만 논쟁은 하되 감정싸움을 해서는 안된다. 싸워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혀 내가 이기는 게 아니라, 싸우지 않고 성과로 이기는 게 가장 최선이란 걸 전 제 인생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우리 변호사들이 승리해 거머쥐고 싶은 성과는 변론권 강화, 의뢰인 인권 강화밖에 없다. 사법부 개혁 의지가 높은 시기에 맞물려 회장이 된 저는 운이 좋게도 이런 측면에서 목소리를 많이 낼 수 있었다.
-지난 12월 출범한 대한변협 개혁위원회도 같은 맥락인지.
앞서 말씀드렸듯 지난 한해는 사법부, 검찰개혁의 목소리가 높았다. 실제로 개혁위원회가 여럿 출범하기도 했다. 그런데 변호사 사회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법원과 검찰 등 외부기관을 개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적은 많지만, 정작 변호사 집단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에는 살짝 비껴나가 있었다. 소수 집행부원끼리 논의에 그치지 않고 모든 변호사들이 참여해 변호사 사회를 개혁해보자는 취지로 결성하게 됐다.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현직 집행부원은 단 한 명도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다. 위원장은 전 대한변협 수석부협회장을 역임한 박기태 변호사가 맡았고, 전 대한변협과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집행부 임원, 현 서울지방변호사회 집행부 임원, 각 지방변호사회 대표, 로스쿨 및 사법연수원 출신 청년변호사, 여성변호사, 5대 변호사회 대표 등이 함께 한다.
-개혁위원회를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크게 두 가지 목표로 나눌 수 있다. 바로 변호사 직역수호와 전관예우 문제다. 사실 전관예우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개혁위 목표로 삼은 건 전관예우는 감소가 아니라 근절돼야 해서다. 사실 전관 '예우'라는 표현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 많은 변호사들도 전관 특혜, 또는 비리라고 표현한다. 당연히 전관 출신 변호사들은 법조계 생활을 오래 했고, 그만큼 전문성이 있는 분들이다. 그 능력을 발휘해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턱없이 높은 수임료를 받는데 악용한다. 전관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보호받아야할 국민의 재산을 탈취하는데 그 문제점이 있다. 현 단계에서 이 같은 전관비리가 나타나면 징계 수위를 높이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과거에는 견책, 소액 과태료 정도였다면 이제 부과하는 금액을 높이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제재를 강화할 생각이다. 제 식구 감싸기,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엄단하겠다.
-고 김홍영 검사 사건으로 논란이 된 김대현 전 부장검사 변호사 등록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계획인지.
김 전 부장검사는 해임당한 지 3년이 지나 변호사 등록 자격요건은 충족했다. 본인도 그렇게 주장하지만 서울지방변호사회부터 부적격 의견을 밝혔다. 우리 대한변협도 검토해 봤지만 변호사 등록은 적절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변호사들끼리도 자격요건 미달이 아닌데 어떻게 등록을 거부할 수 있느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래서 저는 김 전 부장검사에게 "자숙기간을 가지고 고 김홍영 검사 부모님께 진심으로 사죄하라"고 전했다. 만약 김 검사 부모님께서 용서하신다면 마냥 등록을 거부할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그런데 김 전 부장검사는 지방에 계시는 유족을 서울까지 불러 약속을 잡고 연락 한 통 없이 바람맞혔다. 전 아직도 기다리다 못해 제게 전화하신 김 검사 아버님의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 '너 역시 누군가의 아들인데, 그러니 나도 용서하겠다'는 마음으로 올라오신 분이었다. 사실 현행법상 제가 아무리 등록 거부를 해도 3개월만 지나면 자동 등록된다. 변호사법을 대대적으로 다듬을 계획도 있지만 법과 상관없이 변호사로서 근본적인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제가 할 수 있는데까지 등록을 거부, 또 거부할 거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 제50대 회장이 24일 서울 강남구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실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신년맞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
-개혁위원회 출범의 또 다른 목표가 변호사 직역수호다. 최근 국회에서 세무사법 개정안 반대 집회를 열기도 했는데 여론이 곱지만은 않다.
사실 유사직역 문제가 나오면 "변호사들이 밥그릇 싸움한다"는 비판을 많이 하신다. 변호사 직역수호를 외치는 이유는 당장 사건 수임을 한 건 더 하자는 게 아니라 법 질서와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세무사법 개정안이다. 사실 세무 업무는 2003년 이전까지 변호사도 당연히 할 수 있었다. 다만 일제강점기 잔재이기도 한 소수 엘리트 법조인 양성 시스템 하에서 변호사가 적게 배출되다보니 국민의 법률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게 되자 세무사와 같은 유사직역들이 생겨났다. 로스쿨 도입 후 세무에 전문성을 가진 변호사들도 많이 배출됐다. 그런데 막상 업무를 하려니 국세청에서 코드를 부여하지 않았다. 원래 할 수 있었던 일을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에 변호사들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사실상 위헌선언인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헌재 결정에 따른 법률안 개정 기한이 2019년이었는데, 법무부와 기획재정부가 1년간 머리를 맞대고 세무사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 출신 국회의원이 위헌이라고 결정된 법률안보다 변호사 업무범위를 더 제한한 안을 만들어 상임위원회를 통과시켰다. 원래 할 수 있었던 것을 막는 건 위헌이다. 최고의 헌법기관이 위헌으로 본 내용을 입법기관이 뒤집는 건 국가 법질서를 무너트리는 행위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저와 변호사들은 즉시 위헌법률소송을 청구할 계획이다.
-최근 범국민적 화두인 '검찰개혁'에 대한 생각은.
변호사란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어디로 나아갈지 방향을 밝히는 등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검찰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도움이 되고자 한다. 각계에서 검찰개혁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수사권 조정을 두고 어느 기관에서 수사권을 행사할지를 두고 잡음이 많다. 지금 국회에 올라가 있는 개정안은 국민이 염원하던 수사권 조정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 많이 고민해야할 단계다. 이를 위해서는 검찰도 국민이 납득할 정도로 기존에 갖고 있던 기득권을 내려놔야 할 필요가 있다. 대척점에 서 있는 경찰 역시 만약 수사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어떤 통제 장치를 둘지 수단을 고민해 봐야 한다. 안타까운 점은 정치적 진영 논리로 오염된 감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어차피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표는 모두 같다. 시간이 다소 지연돼 현 정권에서 미처 마무리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기관에서 수사권을 가지는 게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압수수색 등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검찰의 강제수사에 변호사 사무실도 예외는 아니다.
사법부 차원에서 변호사의 의뢰인 비밀유지 의무, 의뢰인의 비밀유지권한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의뢰인은 변호사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상담한다. 그래야 변호사도 제대로 변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비밀스러운 내용마저 의혹이 제기됐다는 이유로 압수수색으로 가져가 활용하는 건 분명 큰 문제가 있다. 검찰은 변호사 사무실 자료가 필요할 경우 임의제출 등 다른 방식으로 파악하고, 의뢰인과 상담 내용이 포함된 자료가 필요할 때는 "수사를 위해 절대적이고 유일한 자료인지"를 통찰한 후 영장 청구를 해야 한다. 법원 역시 변호사 사무실의 특수성을 인지하고 철저히 영장을 심사해 발부해야 한다. 강제수사와 의뢰인 비밀유지권은 국민 기본권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사실 지난 7월에 의뢰인과 대화를 나눈 내용은 '누구에게도' 건네주지 않는다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다. 신년에는 좋은 소식이 있길 바란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 제50대 회장이 24일 서울 강남구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실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신년맞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
-어느덧 임기 절반이 지났다. 신년에 임하는 각오가 있다면.
각오에 앞서 말씀드리자면 정말 저는 운이 좋은 협회장이다. 한국에서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르는 '변호사들의 올림픽' 세계변호사협회(IBA) 연차총회를 임기 중에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2019년에는 외국 대사님들도 직접 방문하셔서 자국 변호사협회와 교류를 제안하는 러브콜을 보내올 정도로 우리 대한변협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 그렇기에 새해에 임하는 각오는 높아진 위상에 걸맞도록 건강한 대한변협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시급한 건 앞서 말씀드린 개혁위원회를 통한 대한변협 체제 개선이다. 직역 수호와 전관예우 완전 철폐를 통해 우리 후배님들이 건강한 환경에서 국민 인권 수호를 위해 싸울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회장 임기가 2년이라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시작만 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일도 많다. 그러나 저는 이 세 가지 열매만큼은 반드시 맺겠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프로필
△제40회 사법시험 합격(1998) △사법연수원 수료(제30기)(2001) △서울지방변호사회 재무이사(2007) △스폰서검사사건 특별검사팀 특별수사관(2010)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위원회 위원장(2013) △제94대 서울지방변호사회장(2017) △경찰개혁위원회 인권보호분과 위원(2017) △서울중앙지방법원 총괄조정위원(2017) △한국헌법학회 부회장(2018) △한국부패방지법학회 부회장(2018~현재) △제50대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2019~현재)
ilraoh@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