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무조건' 38세까지 이중국적인 남자
입력: 2019.12.13 00:00 / 수정: 2019.12.13 00:04
복수국적자 남성이 국적법 제12조 제2항에 대해 청구한 헌법소원 공개변론이 12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렸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더팩트DB
복수국적자 남성이 국적법 제12조 제2항에 대해 청구한 헌법소원 공개변론이 12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렸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더팩트DB

헌법재판소로 간 국적법…​​​​​​​"기본권 침해" VS "징병제서 불가피"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국적 선택 기한을 놓치면 약 20년간 이중국적자로 살아야 하는 국적법 조항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심판대에 올랐다. 복수국적자 남성이 해당 내용을 규정하는 국적법 제12조 제2항 본문 등이 국적이탈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해서다. 12일 오후 2시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공개변론에서 청구인 측은 병역기피를 막겠다는 입법 취지와 달리 한인 2, 3세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심판대 오른 국적법 제12조 제2항은

대학생 A(20) 씨는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뒀다. 국적 선택 원칙으로 속지주의를 택하는 미국에서 태어난 A씨는 미국 국적 취득과 동시에 속인주의를 취하는 한국 국적의 어머니를 둬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됐다. 한국 국적법은 복수국적자가 특정 연령이 되면 2개의 국적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도록 한다. 제12조(복수국적자의 선택 의무) 1항은 "만 20세가 되기 전 복수국적자가 된 사람은 만 22세 전까지, 만 20세가 된 후 복수국적자가 된 사람은 그때부터 2년 내 하나의 국적을 선택한다"고 규정한다. 문제는 A씨가 헌법소원을 청구한 2항이다.

"제1항 본문에도 불구하고 병역법 제8조에 따라 병역준비역에 편입된 자는 편입된 때부터 3개월 이내 하나의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 (국적법 제12조 제2항)

애초 국적법은 한국에서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복수국적자가 만 22세가 될 때까지 국적 선택을 하지 않으면 국적을 상실시켰다. 그러나 원정 출산 등 병역기피 현상이 심화되자 법 개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국회는 2005년 복수국적자 남성이 병역준비역에 편입된 만 18세가 되는 해 3월 31일까지 국적을 선택하지 않으면 병역의무가 종료될 때까지 국적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개정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막 성인이 된 복수국적자가 3개월의 기한을 놓치면 38세가 될 때까지 약 20년간 국적을 선택할 수 없도록 법제화한 것이다.

법무부는 국적이탈권 제한은 병역기피를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사진은 2014년 열린 을지연습 대테러 대비훈련. /더팩트DB
법무부는 국적이탈권 제한은 병역기피를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사진은 2014년 열린 을지연습 대테러 대비훈련. /더팩트DB

◆"병역이 아닌 인권의 문제"

해외 한인사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아직 자아와 가치관이 확고히 정해졌다고 보기 어려운 만 18세 성인이 병역의무가 있다는 이유로 3개월 내 부모의 국적 중 어느 국적을 따를지 결정해야 하고, 이를 놓치면 20년 간 국적 선택 기회를 묶어두는 건 기본권 침해라는 이유다.

청구인 측 대리인 천하람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이 사건은 병역에 관한 것이 아니다. 복수국적자들이 한국 군대를 가지 않게 해달라는 주장이 아니다"라며 "청구인과 같은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외국에서 나고 자란 사실상 외국인으로 한국의 병역 자원으로 보기 어렵다. 국적법 개정 배경이 된 병역기피를 위한 기회주의자들과는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많다는 점도 핵심이다. 천 변호사는 "한창 왕성한 사회활동을 할 시기 복수국적자라는 이유로 취업제한은 물론 직장생활에서도 차별받고 있다. 많은 복수국적자들이 불이익을 받을까봐 이력서에 허위로 기재하고 마음을 졸이며 산다"고 말했다.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전종준 변호사(변호사 전종준 법률사무소) 역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후 '미국인 우선' 인식이 팽배해져 복수국적을 가진 한인 2, 3세들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라고 강조했다.

◆법무부 "징병제 국가에서 불가피"

미국 워싱턴에서 변호사로 근무 중인 전 변호사는 국적법 파급력에 비해 홍보와 설명이 부족해 많은 한인 2세 남성이 자신도 모르는 새 국적 선택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변호사는 "저는 변호사인데도 제 아들도 해당되는 이 조항의 문제점을 2013년 우연히 알게 됐다"며 "한국에서도 생소한 내용인데 한글도 잘 모르는 한국계 외국인들이 어떻게 법을 알고 제대로 국적을 선택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이날 공개변론 내용을 종합하면 해당 조항은 각국 재외교포 사이트에서 공지하는 것에 그친다. 개별 통지 절차도 없어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 반드시 적법한 절차에 근거해야 한다'는 적법절차의 원리에도 위배된다는 취지다.

이해관계인인 법무부 측은 "실제 법령은 공표만으로 족하고 개별통지를 해야만 적법절차를 충족한다고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인권 침해'를 근거로 든 청구인 측과 달리 병역기피 현상을 잠재우기 위해 입법됐다는 취지를 중심으로 변론을 이어갔다. 법무부 측은 "이스라엘, 싱가포르 등도 복수국적자의 국적 이탈을 제한하고 있다. 징병제 국가에서는 불가피한 제도"라며 "병역의무자의 국적이탈권을 넓게 볼수록 병역기피를 초래할 가능성 농후하다"고 반박했다. 직업 선택에 난항을 겪는다는 주장에도 "복수국적자로서 주요공직을 맡는 사례가 외국에 많이 존재한다. 공직진출에 제한이 있다는 이유로 국내법령을 위헌으로 볼 상당한 이유는 없다"고 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재미교포 2세 A씨가 국적법 12조 2항 등에 관해 청구한 헌법소원심판 사건 공개변론을 진행을 위해 자리하고 있다. /뉴시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재미교포 2세 A씨가 국적법 12조 2항 등에 관해 청구한 헌법소원심판 사건 공개변론을 진행을 위해 자리하고 있다. /뉴시스

헌재는 이날 변론 내용을 토대로 재판관 전체회의를 거쳐 최종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지난 2015년 헌재는 같은 조항에 대해 5(합헌) 대 4(위헌)로 합헌을 결정한 바 있다. 사실상 재판관 사이에서도 의견이 팽팽했던 만큼 이번 헌법소원에서는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관심이 모인다. 2019년 헌재는 기본권과 헌법에서 보장하는 병역의무 중 무엇에 경중을 둘까.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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