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국정농단' 심판한 판사 '사법농단' 증언한 이유
입력: 2019.12.12 05:00 / 수정: 2019.12.12 09:17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8월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 관련 2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8월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 관련 2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임종헌과 법원행정처 근무 …문모 판사 비위 의혹 증언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국정농단'을 심판한 판사가 '사법농단' 증언대에 섰다.

김세윤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근무 시절 국정농단 사건 1심 재판장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에게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그밖에 최씨의 조카 장시호 씨 등 핵심인물의 1심 재판도 이끌어 '국정농단 전문 법관'이라는 말도 나왔다. 최씨도 감사를 표시할 정도로 피고인을 배려하는 재판 진행과 박 전 대통령 선고 당시 방송 생중계를 허용한 파격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김세윤 부장판사가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 고영한 전 대법관의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 50회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유는 2014~2016년 몸담은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 이력에서 비롯됐다.

윤리감사관실은 법원행정처 차장 직속 기구다. 법관과 법원 공무원의 비위를 감찰하는 임무를 띤다. 김 부장판사는 윤리감사관으로서 양승태 대법원장-박병대 법원행정처장-임종헌 차장으로 이어지는 보고·결재체계 아래 일했다.

2015년 9월 7일, 그는 거의 매일 얼굴을 마주 대하는 임종헌 차장의 호출을 받고 6층 집무실로 올라갔다. 임 차장은 "대검 고위 간부에게 받았다"며 2페이지 짜리 문건을 보여줬다. 부산고법 문모 판사의 향응 수수 의혹 첩보였다.

내용이 사실이라면 가볍지 않아 보였다. 문 판사가 2015년 5월 조현오 전 경찰청장 뇌물수수 사건 주요 피의자가 체포영장을 발부받기 하루 전 그의 변호사와 셋이 유흥주점에서 만났다는 내용이었다. 2011~2015년 함께 16회 골프라운딩을 즐길 정도로 서로 가까운 사이라고 씌였다. 윤리감사관실은 차장이 지시해야 감찰에 착수한다. 임종헌 차장의 판단은 이랬다.

"검찰이 문 판사를 입건하지 않은 상태다. 검찰과 관계가 좋아 (이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은 없다. 정식 조사에 착수하면 밖에 알려지는 게 불가피하다. 최민호 판사 사건으로 법원 신뢰가 땅에 떨어졌는데 이 문제까지 언론에 보도되면 더 큰 타격을 받는다. 조사 없이 엄중경고하고 종결하자."

당시 최민호 판사는 '명동 사채왕'이라고 불린 사채업자에게 사건 무마 대가로 수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사법부로서는 뼈아픈 사건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은 상고법원 도입이 지상목표였다. 이를 달성하려면 국민 지지가 필수적인데 법관 비위 의혹이 이어지는 게 달가울리 없었다.

김세윤 판사는 찜찜했다. 임 차장은 검찰을 철썩같이 믿지만 만약 정보가 새나가면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멍에를 뒤집어쓸지도 몰랐다. 결국 윤리감사관실은 임 차장 의지대로 문 판사를 추가 조사하지 않았다. 부산고법원장에게 비위 첩보를 알려 문 판사를 엄중히 구두경고하도록 하자고 했지만 이마저도 확인되지 않았다.

박병대 대법관이 2017년 6월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으로부터 기념품을 전달받은 후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박병대 대법관이 2017년 6월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으로부터 기념품을 전달받은 후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검찰은 비위 의혹을 구두 경고로 끝낸 처분의 위법성과 양승태 대법원장이 얼마나 관여했는지를 입증하려 했다.

당시는 대법원이 법관 비위를 엄격히 감시하겠다며 법원감사위원회를 출범시킨 직후였다. 위원 7명 중 6명을 외부인사로 채우고 법관 비위 의혹을 보고받고 조사를 권고하는 역할을 맡겼다.

검찰은 이정도 의혹이라면 법원감사위원회에 당연히 회부해야 했던 것 아니냐고 캐물었다. 김 판사는 "조사에 착수했다면 그랬을 것"이라면서도 "(결국 조사하지 않았고) 감사위원회 출범과 규칙 제정이 몇 달 안 된 시점이라 정확한 판단이 어려웠다. 이 사건을 회부하지 않은 게 규칙 위반인지 모호하다"고 답변했다.

문 판사를 구두경고로 끝낸 과정이 조직적 무마라는 지적에는 "징계청구권자가 법원 신뢰 등 여러 사항을 고려해서 정책적으로 판단해 재량권을 행사한 것으로 본다"고 동의하지 않았다.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보고됐는지는 "들은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된 임종헌 전 차장의 혐의에는 문 판사 사건을 무마했다는 직무유기 건도 포함됐다. 그는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가 기각됐으나 재항고해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문 판사는 2017년 1월 퇴직해 변호사로 개업했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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