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존경하는 재판장님'은 어디에...구하라·윤중천 판결의 그늘
입력: 2019.12.07 00:00 / 수정: 2019.12.07 19:29
25일 오후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故구하라의 빈소가 마련된 가운데 영정 사진이 보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5일 오후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故구하라의 빈소가 마련된 가운데 영정 사진이 보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성범죄 선고 잇따른 논란..."가해자 중심 사고" 비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가 미국 주간지 워싱턴포스트에 등장했다. 오 판사는 지난 8월 고 구하라 씨에게 사생활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 등을 받는 구 씨의 전 남자친구 최종범(28) 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구 씨가 고통 받았던 사생활 영상을 직접 보고 최 씨의 협박 행위를 "우발적 행동"으로 여겨 도마 위에 올랐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강혜련 씨는 워싱턴포스트에 기고문을 내고 "고인의 죽음으로 두 남성의 이름이 오르내리는데, 한 명은 고인의 신체를 동의없이 촬영해 협박한 최종범과 그에게 해당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오덕식"이라며 "한 한류스타의 죽음으로 한국 사법 정의에서 여성은 열외임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가해자는 이해, 피해자는 무시하는 재판부

최 씨는 지난해부터 구 씨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수사과정에서 최 씨가 구 씨에게 사생활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고 폭행하는 등 데이트 폭력을 가한 사실이 드러나 피고인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8월 불법촬영을 제외한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최 씨의 재판에서 법봉을 잡은 건 오 부장판사였다. 그는 "피해자의 명시적 부동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불법촬영 혐의는 무죄로 봤다. 문제의 영상으로 구 씨를 괴롭힌 혐의도 유죄로 봤지만 실형은 선고하지 않았다. 최 씨가 사생활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우발적 행위였고 실제로 유포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구 씨가 무릎을 꿇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던 최 씨의 행동은 "피해자의 이별 통보에 가해자가 너무 화나서"라는 우발적 감정으로 참작됐다. 검찰과 최 씨의 항소로 2심 판단이 남았지만 오 부장판사의 이같은 판결에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오 부장판사 논란은 재판과정에서 구 씨의 영상을 직접 봤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 가열됐다. 구 씨 측은 거세게 항의했으나 오 부장판사는 사건 심리에 필요하다며 영상을 단독으로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영상을 직접 확인한 건 정당한 재판 심리과정으로 볼 수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부대표는 "구 씨의 비보로 오 판사의 행위가 집중 조명됐지만 사실 불법촬영 혐의 재판에서 실제 영상을 일반 증거물과 같이 부주의하게 취급하는 건 오랜 문제였다"며 "판사들 대부분 범죄 대상이 될 여지가 많은 존재로 살아본 적이 없어 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 해 생기는 세태"라고 지적했다.

오 부장판사의 판결이 논란의 중심에 선 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8월 고 장자연 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모 전 조선일보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오 부장판사는 무죄 선고 이유로 "사건현장은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로, 공소사실대로 성추행이 있었다면 중단됐을 것"이라며 "종업원들도 수시로 드나드는 공개적인 자리였고 다른 참석자의 강제추행은 없었다"고 판단했다. 생일 파티에 신인 배우를 동원해 성을 착취했다는 사건 배경의 이해가 부족했고, 성범죄는 은밀한 공간에서만 일어난다는 편견에 갇힌 판결이라는 비난이 잇달았다.

정상참작 요소 중 하나인 '재범 가능성'도 오 판사는 적극 활용했다. 지난 21일 오 판사는 3년간 예식장 바닥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방문객을 불법촬영한 사진기사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장기간에 걸쳐 범행이 이뤄졌지만 오 판사는 "피고인의 범행 전후 과정을 볼 때 재범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오 판사가 춘천지법에서 근무하던 2013년 4월에는 반 년 동안 10살 전후의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1000여 건 업로드한 '헤비 업로더'에게 "피고인이 다시는 음란물을 소지하거나 유포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점을 양형에 참작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사건의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당시 모습/더팩트 DB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사건'의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당시 모습/더팩트 DB

◆"성공하기 위해 성접대 제공" 한없는 너그러움

성범죄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논란의 중심에 선 건 드문 일이 아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손동환 부장판사)는 지난달 '별장 성접대' 사건의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58) 씨의 강간치상 혐의를 면소 판결했다. 피해여성은 2006~2007년 윤 씨에게 3차례 성폭행을 당한 충격으로 2013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과거의 성관계로 상해를 입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성폭력 트라우마로 장시간 고통을 겪는 피해자들이 많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윤 씨의 범행 배경으로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사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고위층에게 성 접대를 제공했다"고 너그럽게 바라본 반면, 성 착취를 당한 여성이 겪었을 고통은 "성 접대를 위해 이용된 여성들은 윤 씨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축소했다.

피해자가 느꼈을 성적 수치심에 대한 판단도 들쑥날쑥하다. 지난 7월 광주고법 제1행정부(최인규 부장판사)는 60대 여성 택시기사를 성추행한 초등학교 교감의 해임처분이 부당하다는 취지로 판결하며 "피해자는 사회 경험이 풍부한 60대 여성으로, 진술 내용을 고려하면 성적 수치심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경향도 짙다. 지난해 5월 대전고법 제1형사부(권혁중 부장판사)는 친구의 부인 A씨를 성폭행한 폭력조직원 박 모(38) 씨에 대해 1심에 이어 성폭행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사건 당시 CCTV에 찍힌 박 씨와 함께 찍힌 A씨의 모습이 피해자로 보기에 매우 자연스러웠다는 점, 범행 직후 A씨가 박 씨의 담배를 피웠다는 점에서였다. 1월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박 씨의 성폭행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4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지만, 재판부 판단에 울분을 참지 못한 A씨 부부가 자녀를 의탁하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진 후였다.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재판과정과 판결에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이는 피해 당사자다. 피해사실을 고발하고 복잡한 수사과정을 거친 피해자의 용기와 노력을 재판부가 간과한다는 비판이 각계에서 나온다. 김상균 법무법인 태율 변호사는 "많은 판사들은 사회적 취약계층이 많은 성범죄 피해자가 수용하기 어려운 높은 눈높이로 피해자를 판단하기도 한다. '왜 피하지 않았냐, 왜 좀 더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았냐'는 질문은 결국 피해자가 아닌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피해자의 행동을 탓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역시 "구 씨가 고통 받은 불법촬영죄의 경우 형량을 상향 조정하는 개정이 이뤄졌음에도 사안의 심각성을 공감하지 못하는 재판부가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있다. 이제 성범죄는 법이 아닌 재판부가 바뀌어야한다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강조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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