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자료사진. / 더팩트 DB. |
대법관 1인당 사건 역대 최고치…"하급심 신뢰도 높여야"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최근 대법원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은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원심 일부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정치적 사건 뿐만이 아니다. 시민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에도 적용 된다. 이날 대법원은 2013년 수영장 사고로 장애를 얻은 어린이 측이 수영장 운영기관에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이같이 판결이 최종심에서 극적으로 뒤집히는 일이 적지는 않다. 재판 당사자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게 되는 이유다. 현행 3심제에서 대법원 심리는 사후심이자 법률심이다. 사실관계를 따지는 1.2심과 달리 사실심의 재판결과가 법령을 위반했는지 등만 따지는데도 일말의 가능성에 미련을 버릴 수 없다.
실제로는 매년 상고율은 높아지지만 기각율 역시 비례하는 추세다. 이를 떠맡는 대법관의 부담은 점점 커진다. '상고' 남용이 법원의 골칫거리가 된 이유다.
'2019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2018년) 민사 본안사건의 상소율은 고법 판결사건은 34%, 지방법원 판결 중 소액사건 포함 1심 단독사건은 28.5%가 상고됐다. 3건 가운데 1건은 당사자 불복으로 대법원 상고가 이뤄지는 셈이다.
높은 상고율에도 지난해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율은 76.7%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심리불속행은 형사사건을 제외한 상고 사건 중 이유가 타당하지 않은 사건을 기각하는 제도다.
사법연감 등에 따르면 지난해 대법원이 처리한 본안사건 1만 7186건 중 1만 3181건(76.7%)에 해당하는 사건이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종결됐다. 10건 중 8건이 기각되는 셈이다. 5년 전인 2014년과 비교하면 20%p가 증가했다.
심리 불속행 기각률은 2016년 이후 3년 연속 70% 이상을 기록했다. 2014년 56.5%였던 심리불속행 기각률은 2015년 62.2%, 2016년 71.3%, 2017년 77.4%를 기록했다.
상고가 늘어나면서 대법원의 부담은 가중돼 충실한 심리에 걸림돌이 된다. 2018년 대법관 1인이 처리해야하는 연간 평균 사건 건수는 역대 최고치인 3998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8년 대법원에 접수된 상고심 본안 사건은 4만 7979건에 이르렀다. 기존 최대치였던 2017년 4만 6412건보다 1567건이 더 늘었다. 5년 전인 2014년 3만 7652건과 비교하면 무려 1만 327건이 급증했다.
실제 대법원 상고심에서 판결이 뒤집히는 확률은 높지않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대법원에서 처리한 민사 본안사건 1만 7677건 가운데 62.9%(1만1125건)가 상고 기각됐다. 원심 판결이 파기된 경우는 753건(42%)이었다. 고법 판결에 불복해 상고된 사건의 파기율은 11.2%, 1심 단독사건으로 지법에서 상고된 사건은 3.8%로 집계됐다.
법조계는 이같은 문제점에도 상고가 남용되는 이유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낮은 신뢰도와 당사자 간의 감정싸움, 소송대리인의 자질 등을 꼽는다. 특히 소송 당사자가 하급심 판결에 승복하려면 '재판부의 성실함과 신뢰'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병택 변호사(법률사무소 금상)는 "최소한 하급심인 1·2심 판결이 당사자에게 신뢰를 줘야하고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심리가 이뤄졌다고 느껴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되레 대법원의 심리불속행제도가 위헌 시비에 휘말린 적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7년 7월 "상고심 심리를 받지 못했고 판결서에는 아무런 이유도 기재하지 않은 채 기각해 재판받을 권리와 평등권 등을 침해당했다"며 심리불속행 제도를 규정한 특례법은 위헌이라며, 노 모 씨등 68명이 낸 헌법소원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헌법이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규정했다고해서 모든 사건을 상고심으로서 관할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법관에 의해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경중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건에 대해 대법원 재판을 받을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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