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박병대 전 대법관이 지난 9월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
'사법농단' 48회 공판…윤성원 전 판사 "두 사람 지시받은 적 없다"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장우성 기자] 윤성원 변호사(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인천지법원장)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법정에서 증인은 보통 뜸을 들이고는 하는데 조금도 답변을 주저하지 않았다. 신문에 나선 검사에게 맞질문을 던질 만큼 적극적으로 검찰의 공소사실을 반박했다.
그는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을 지내던 2014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법원에 해산된 통합진보당 잔여재산 가압류를 신청했을 때 "가압류보다 가처분이 적절하다"는 검토 보고서를 만들고 전국 담당 재판부에 내려보내는데 관여했다.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전 법원행정처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 제 48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윤성원 변호사는 피고인 중 특히 박병대 전 대법관에게 중요한 인물이었다.
박 전 대법관의 주요 혐의 중 하나가 법원행정처장을 지내던 2014년 12월 사법지원실에 '통진당 예금계좌에 대한 채권 가압류 신청 사건에 관한 검토' 보고서를 작성해 전국 17개 재판부에 전달하라고 지시해 재판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사법지원실장이던 윤 변호사는 이날 박 전 대법관에게 유리한 증언을 계속했다. 당시 검토 보고서 작성과 전국 재판부 전달은 사법지원실장인 자신의 판단으로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박 전 대법관이 지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날 그의 증언을 요약하면 이렇다.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강형주 차장, 박병대 처장이 특정 결론의 검토 보고서 작성이나 일선 법원 전달을 지시한 적이 없다. 세 사람에게 현안 보고는 했지만 승인이나 의사결정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이는 사법지원실장인 내 권한 범위 안에 있다. 나 자신도 재판 개입 의도는 없었다. 재판 지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도 도움이 되는 증언을 했다. 2014년 9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1심 판결 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은 '원세훈 사건 1심 판결 분석 및 항소심 쟁점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윤 변호사는 이 보고서를 들고 양승태 대법원장을 찾아가 직접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형식적인 보고였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확실한 것은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아무런 지시를 받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증언이 변호인 반대신문 중 쏟아져 나오자 검찰은 불만이 목까지 차올랐다. 변호인 반대신문에 이은 재 주신문에서 반격에 나섰다.
"전국 재판부에 통진당 보고서를 전달하는 게 증인 단독 결정으로 가능합니까?"
"제 권한에 포함됩니다."
검사는 윤 변호사의 증언이 검찰 조사 당시 진술 취지와도 다르다며 고개를 저었다.
"임종헌 실장, 강형주 차장, 박병대 처장에게 보고한 건 승인이 필요해서 아니었나요?"
"현안보고지 승인과는 관계없습니다."
"2개 재판부는 문의가 있었다고 해도 문의도 하지 않은 다른 재판부에는 왜 보냈습니까."
검사의 신문은 2014년 12월22일 당시 대전지법과 천안지원의 통진당 재산 가압류 사건 담당판사가 법원행정처에 "전례가 없는 사건이라 법리적 해석이 분분하다"며 문의해 온 사실을 뜻한다. 증인은 검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꾸했다.
"제가 물어봅시다. 그럼 문의한 재판부에는 줘도 됩니까."
대법원 자료사진 / 남용희 기자 |
윤 변호사가 이날 검사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 것은 하나 있었다. 검사가 "이 보고서가 실제 청와대에도 전달된 게 부적절한 것은 맞나"라고 묻자 "부적절하다"고 대답했다. 역시 망설임이 없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의 요구에 따라 통진당 가압류 신청 사건 검토보고서를 만들어 전국 재판부에 전달해 통일된 결론을 내도록 개입했다고 본다. 실제 당시 모든 법원은 선관위에 '가처분'으로 바꿔 신청하라는 보정 명령을 냈고 이후 전면 인용됐다.
검찰 측은 재판부의 증인 신문이 끝난 뒤에도 추가 신문을 요구했다. 일분일초의 시간이 아쉬운 재판부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검찰에 따르면 2014년 12월22일 오후 6시, 윤 변호사는 전지원 사법지원총괄 심의관에게 처음으로 전국 17개 재판부에 검토보고서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박병대 전 처장까지 보고하러 올라갔다 마치고 돌아온 직후였다.
"(박병대 처장이 보고에서) 승인했기 때문에 전국 판사에게 보내라고 지시한 것 아닙니까. '하겠습니다' 해도 노(No) 하면 안 되는 거고."
윤 변호사는 하늘을 향해 두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그건 재판부가 알아서 판단하실 일이죠."
leslie@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