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안인득이 판 무덤…'양날의 검' 국민참여재판
입력: 2019.12.01 00:00 / 수정: 2019.12.01 07:26
최근 국민참여재판에서 사형 선고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영화 배심원들의 한 장면/더팩트 DB
최근 국민참여재판에서 사형 선고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영화 '배심원들'의 한 장면/더팩트 DB

재판 투명성 위한 해법…'피해자 인권 무시' 부작용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22명의 사상자를 낸 안인득(42)이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선고받았다. 실질적 사형폐지국 분류된 지 12년째인 한국 사법부가 정신질환을 앓는 피고인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린다. 안 씨 스스로 원해서 국민참여재판으로 재판이 진행된 지 3일 만에 내려진 결과였다는 점 역시 그렇다.

◆예측 가능성 높은 일반 재판 견줘 '의외성' 높아

국민참여재판은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형사재판에 참여해 유․무죄 평결을 내리는 제도로 2018년 1월 도입됐다. 만 20세 이상 국민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며 같은 형사사건이라도 형사합의부에 배당된 사건만 대상이 된다. 형사재판은 길게는 수년간 진행되지만 국민참여재판은 원칙적으로 매일 재판을 진행해 1~3일 안에 끝내야 한다. 안 씨가 3일 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이유다.

안 씨의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단은 총 9명이었다. 이 중 8명은 사형, 1명은 무기징역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씨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린 국민참여재판을 원한 쪽은 다름 아닌 피고인 안 씨 본인이었다. 안 씨는 사형이라는 가장 무거운 형이 나왔지만 형사사건에 연루된 피고인들 중 일부는 유리한 양형을 기대하고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기도 한다. 이충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법무법인 해율)은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은 양날의 검이다. 일반 재판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성이 있는 반면 국민참여재판은 유․무죄부터 형량까지 의외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며 "유죄가 나올 확률이 높고 관련 증거도 상당수 확보된 안인득도 의외성에 기대기 위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남 진주시 한 아파트에서 방화 및 흉기난동 사건을 벌인 안인득(42)이 27일 국민참여재판 형태로 진행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안 씨가 지난 4월 진주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경남 진주시 한 아파트에서 방화 및 흉기난동 사건을 벌인 안인득(42)이 27일 국민참여재판 형태로 진행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안 씨가 지난 4월 진주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영향력'은 있다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단이 1~3일 법정 공방을 지켜본 후 피고인의 유무죄를 평결하고 형량을 토의하면 재판부는 이를 참고해 판결한다. 배심원단의 결정은 법관의 판결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까. 원칙적으로 배심원단 의견은 검찰 구형과 같이 법적 구속력은 없다. 그러나 국민의 사법참여에 의의를 두는 제도인 만큼 법관은 배심원단의 의견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

안 씨 역시 배심원단 과반수 의견대로 사형 선고가 내려졌고, 지난해 건물주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서촌 본가궁중족발 사장 김 모(55) 씨 사건의 경우 김 씨에게 적용된 3개 혐의에 대한 판단까지 배심원단 평결과 같았다. 당시 배심원단은 김 씨에 대해 살인미수 혐의는 무죄를, 특수상해·특수재물손괴 혐의는 유죄로 봤다. 재판부는 핵심 혐의였던 살인미수를 포함해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도 배심원단 평결을 그대로 받아들여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익명을 요청한 부장판사 출신 법조인은 "한국 헌법상 배심원단 의견은 어디까지나 참고용이고 법적 구속력은 없다"면서도 "다만 배심원단 의견과 다른 판결을 내릴 경우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국민참여재판 운영지침 자체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배심원단 의견을 존중하라고 내려온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재구성한 영화 배심원들(2013) 스틸컷. /더팩트 DB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재구성한 영화 '배심원들'(2013) 스틸컷. /더팩트 DB

◆피해자 인권도 고려하며 '시행율 1%' 벗어나야

헌법상 신분과 독립이 보장되는 직업법관이 소송을 심리·종결해야 한다는 한국 사법부가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도입한 건 국민의 사법참여 열망이 높은 시대를 반영한 결과였다. 배심제나 참심제 등 국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세계적 추세 역시 고려했다. 재판 진행의 투명성을 강구하고 사회적 공감을 이끌어낼 판단을 내린다는 의의가 있지만 활용률은 1%를 못 벗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판과정 투명성 보장과 국민 정서에 맞는 판례 축적을 위해서라도 시행율을 높여야 한다고 본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참여재판을 계속 확대해 궁극적으로는 해외처럼 배심제까지 도입하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한다"며 "국민참여재판에서는 검사와 변호인의 공방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배심원단을 설득하는 과정이 추가되는데, 이것이 곧 재판과정의 투명성이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판결을 이끄는 민주적 재판"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참여재판 활성화에 앞서 염두에 둘 점도 있다. 피고인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국민참여재판 특성상 범죄 피해자 의사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우려다. 특히 법관조차도 범죄사실을 접근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성범죄 사건의 경우 재판부의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십니까"라는 물음 대상에 피해자도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장윤미 변호사는 "제도 자체가 피고인 방어권 보장을 위해 보완된 한 절차다 보니 피고인 방어권만큼이나 중요한 성범죄 피해자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모순이 발생한다. 실제로 지난 2013년 친아버지가 어린 딸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 위탁아동 성폭력 사건 등 피해자의 명확한 의사표현이 유달리 힘든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며 "재판부는 성범죄 피해자 의사를 고려하라는 근거조항이 있긴 하지만 효력은 턱 없이 부족하다. 국민참여재판 관련 법률에라도 성범죄 사건 피해자 의사 확인을 의무사항으로 추가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예외사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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