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마음 상했다면 미안" '김은경 재판부'의 속사정
입력: 2019.11.28 00:00 / 수정: 2019.11.28 00:00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에 대한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에 대한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공범부터 혐의 적용까지 공소장 '맹타'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주원 기자] 이른바 '환경부 리스트' 관련 혐의로 기소된 김은경(63)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52)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의 첫 정식 재판이 진행됐지만 검찰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달 준비기일에서 '공소기각'이라는 강수를 둔 재판부 지적으로 변경된 공소장을 들고 왔지만, 공범이라고 본 사건 관계자 중 한 명이 공소장 한 편에는 피해자로 기재돼 문제가 됐다. 재판부도 곤란했는지 "마음 상했다면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송인권 부장판사)는 27일 오후 2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 위력에의한업무방해, 강요 혐의 등을 받는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의 첫 공판기일을 진행됐다.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은 2017년 12월~2018년 1월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을 내보내려고 사표 제출을 요구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2018년 7월 청와대 추천 인사였던 박 모 씨가 환경공단 상임강사 서류 심사에서 탈락하자 다른 지원자를 모두 불합격 조치하도록 하급자에게 지시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강요죄를 저질렀다고 본다. 떨어진 박 씨를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이 지배주주로 있는 기관 대표로 임명되도록 종용한 것에는 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와 위력에의한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문제는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의 지시를 받은 환경부 공무원들이 일방적 지시를 받은 피해자인지, 범행에 가담한 공범인지였다. 검찰은 초기 공소장에서 전자로 기재했다. 그러나 공소사실을 뜯어보면 내정자에게 면접에 도움이 될 만한 문건을 전달하거나 내부 회의에서 내정자 채용에 유리한 분위기를 주도한 '행위자'들은 환경부 공무원들이었다. 공범관계는 피고인 방어권 보장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특정할 문제였다.

재판부는 지난 준비기일에서 "이대로 가면 공소기각"이라고 엄포를 놨고 이날 첫 공판에서 검찰은 변경된 공소장을 들고 왔다. 환경부 공무원들을 주위적 공소사실상 간접정범, 예비적 공소사실상 공동정범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공소장 한 편에는 공범으로 적시한 환경부 인사팀 공무원 정 모 씨가 위력에의한업무방해 피해자로 돼 있었다. 재판부는 "공소장을 변경해주셔서 감사하다"면서도 "예비적 공소사실에 피고인의 공범으로 지목된 사람이 다른 혐의에서는 피해자라고 돼 있다. 간접정범 사실도 '피고인들이 공무원을 이용해'라고만 적어 (간접정범이) 책임을 아예 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간접정범으로 기재된 공무원들을 놓고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무원이 직무수행에서 위법성을 인지하고도 상관의 지시를 따른 경우 책임이 없다고 보지 않는다. 이들도 함께 기소해야 정의 구현이고, 검찰도 선별적 기소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기일 검찰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공소장 변경을 역설했던 재판부였지만, 첫 공판기일까지 서로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송인권 부장판사는 "앞으로 법률적인 부분은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다. 제 말 때문에 마음 상했다면 사과드린다"며 "다만 재판장으로서 재판이 잘 진행됐으면 하는 마음에…"라고 멋쩍게 웃었다.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3월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3월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범죄행위의 결과가 없다면 범죄 자체가 성립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남았다.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에 따르면 내정자 채용을 위해 사표 제출을 강요받은 13명 중 일부는 임기가 지났음에도 근무 중이라 후임자가 채용되는 대로 나가야하는 상황이었다. 변호인은 "심지어 일부는 지금도 근무 중"이라며 "사건 당시 정권 교체 시기라 김 전 장관으로서도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었다. 장관으로서 직권을 남용했다고 볼 수 없다"고 변론했다.

변호인이 모두진술을 하며 꺼낸 카드였지만 피고인 측에게도 넘어야할 벽이 됐다. 재판부는 "사표 제출을 강요받은 명단을 보니 임기가 많이 남아있던 분들도 보인다. 임기가 절반가량 남았는데도 사표 쓰고 나가라는 말을 들었다면 당사자는 법익을 침해받았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도 "당시 사표 제출을 강요받은 피해자라면서 지금도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걸 볼 때, 검찰과 변호인 모두 행위 결과가 없는 직권남용 범죄가 가능한지 다음 기일까지 검토해 달라"고 말했다.

이날 재판은 피고인 출석의무가 있는 정식 재판인 만큼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도 출석했다. 어두운 색 정장을 입은 피고인들은 약 1시간30분에 걸친 재판 내내 담담한 태도로 임했다. 공소사실에 별다른 뜻을 직접 전하지는 않았다. 이들의 2차 공판기일은 12월 11일 오후 2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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