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월 14일 부산 기장군 부산추모공원을 방문, 상관의 폭언 등을 견디지 못하고 2016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 김홍영 전 검사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뉴시스 |
3년 전 '그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2016년 5월 19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고 김홍영 검사.
사건 초기엔 김 검사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며칠 뒤 김 검사가 상사였던 김대현 전 부장검사의 폭언과 폭행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주변 지인 등에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커졌다.
당시 대검찰청을 출입할 때였는데 김 검사가 자신의 방 벽에 '내 잘못이 아니다(NOT MY FAULT)'라는 문구를 적어놓았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적어도 집에서 만큼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끝까지 노력한 그의 애씀이 느껴졌다.
학창 시절 감명깊게 본 영화 중 하나가 '굿 윌 헌팅'인데, '내 잘못이 아니다'라는 문구는 바로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다. 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 '윌'(맷 데이먼)은 천재적 두뇌를 가지고 있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로 세상에 마음을 열지 못하는 불우한 반항아다. MIT공대에서 청소부로 일하던 그의 재능을 알아본 수학과 '램보' 교수는 대학 동기인 심리학 교수 '숀'(로빈 윌리엄스)에게 '윌'을 부탁한다.
'윌'은 '숀'과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상처를 위로 받으며 조금씩 변화한다. 이 영화의 명장면은 단연 로빈 윌리엄스가 멧 데이먼을 향해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순간이다. '윌'은 '숀을 향해 그만하라고 소리치지만 '숀'은 멈추지 않고, 결국 '윌'은 참았던 울음을 떠뜨리며 '숀'과 포옹한다. 김 검사 역시 이 영화를 본 뒤 '내 잘못이 아니다(NOT MY FAULT)'라고 적어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위로하려 했던 점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검찰에서는 김 검사 죽음 두 달여가 지나서야 '진상조사' 이야기가 처음 나왔다. 이미 김 전 부장검사의 폭언 및 폭행 사실을 알고 있던 검찰은 그를 법무연수원으로 좌천성 인사 조치하면서 일을 마무리하려고 했다고 한다.
유족들의 항의가 무시당하자 김 검사 연수원 동기회가 들고 일어났다. 700명이 넘는 동기들이 김 전 부장검사를 처벌해달라는 탄원서를 쓰자 그제서야 검찰의 입장이 달라졌다. '업무과다'에 맞춰있던 조사의 초점이 김 부장검사의 개인적 범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사건 발생 40일 만에 대검 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뤄졌다. 대검찰청 감찰본부의 조사 과정에서 김 부장검사가 이전 근무지에서도 후배 검사들에 대한 폭언으로 악명을 날린 사실이 드러났다. 술자리에 불러 술 시중을 시키는 것은 기본이고, 집안일로 휴가를 신청해도 "일도 못하면서 무슨 휴가를 가느냐"고 질책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2016년 7월 26일 감찰위원회를 열고 당시 김수남 검찰총장에게 김 부장검사의 해임 청구를 권고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법무부도 8월 19일 검사징계위원회를 열어 당시 서울고검 소속이었던 김대현 부장검사를 해임했다. 검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징계다.
이번 달(11월) 말이면 김 전 부장검사는 자동으로 변호사로 등록돼 활동이 가능해진다. 검찰 징계 처분으로 해임돼 변호사법에 따라 3년간 변호사 등록이 제한됐지만, 제한 기간이 지나자 자격등록을 신청했다.
이에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11일 상임이사회를 열고 사건 당시 형사적 검토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해 김 전 부장검사를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변협이 변호사 등록 과정에서 형사고발에 나선 첫 번째 사례인 만큼 의미있다 생각한다. 고인과 연수원 동기인 오진철 변호사가 고발 대리를 맡아 김 전 부장검사가 변호사로 자동으로 등록되기 전 절차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11월 말 전에는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할 것으로 보인다.
故 김홍영 검사. / 사진=유가족 제공 |
고인의 아버지 김진태 씨는 지금도 여전히 아들을 그리워 한다. "노력해도 안되는 일은 어쩔 수 없다"는 그를 한번 직접 찾아 뵙기로 했다.
당시 김수남 검찰총장은 2016년 7월 확대 간부회의에서 "경험이 부족한 신임검사, 신임수사관 등 후배들이 어려운 검찰업무에 빨리 적응하여 능력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잘 지도하고 교육하는 것이 상사와 선배들의 역할이다. 그러나 상사나 선배가 감정에 치우쳐 후배를 나무라거나 인격적인 모욕감을 주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논어의 '태이불교 위이불맹(泰而不驕 威而不猛)'을 언급했다. 김 전 총장은 "태산 같은 의연함은 갖되 교만하지 않아야 하며, 위엄은 있되 사납지 않아야 한다"고 간부들에게 전했다. 그는 "상사가 지도할 것은 지도하되, 항상 후배들을 따뜻하게 지도하고 격려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6년 5월 19일 이전 김 검사를 만났다면 그가 그만하라고 소리칠 때까지 말해주고 싶다.
"네 잘못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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