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탄원서는 판결을 바꾸나...이재명과 박한별의 예
입력: 2019.11.25 05:00 / 수정: 2019.11.25 05:00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선처해달라는 시민 13만명이 낸 탄원서는 대법원을 움직일까.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남용희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선처해달라는 시민 13만명이 낸 탄원서는 대법원을 움직일까.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남용희 기자

'법률심' 대법원 영향은 미미…법적 영향력 있다면 변수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시민 13만여 명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항소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이재명(55) 경기도지사의 무죄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쏟아지는 탄원서는 대법원 대법관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전직 판사를 포함한 법 전문가들은 하급심 판결 정당성만 판단하는 상고심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급심 재판 역시 단순히 반성과 선처의 내용을 담은 탄원서가 유의미할지 미지수다. 다만 법리적으로 짚고 넘어가야할 내용이 담겼다면 재판부 역시 심도 있게 본다.

◆대법원 법률심에서 탄원서란

20일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이국종 아주대학교 교수 등 13만 6000여 명이 대법원에 이 지사를 위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 지사는 방송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9월 항소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선출직 공무원은 △일반 형사사건에서 금고 이상 △공직선거법 위반 벌금 100만원 이상 △정치자금법 위반 벌금 100만원 이상 형 등을 확정 받으면 당선이 무효가 된다. 이 지사 본인은 물론 지지자들도 애가 타는 상고심이다.

대법원에서 지지자들의 애달픈 마음을 담은 수십만 통의 탄원서를 판결에 고려할 지는 미지수다. 혐의내용의 사실관계를 다퉈 형량을 결정하는 사실심과 달리 대법원은 모든 변론이 종결된 후 판결의 타당성만 따진다. 익명을 요청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은 법률심이라 원심 내용과 제출된 증거자료만으로 원심 판단이 옳은지를 분석한다"며 "상고이유서 외에는 원칙적으로 검토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역시 "이 지사의 상고심은 유죄로 보고 선고한 벌금형이 올바른 판단이었는지를 따지는 법률심에 불과하다. 수십만 통의 탄원서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 정도"라고 강조했다.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8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김세정 기자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8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김세정 기자

◆버닝썬 영장 기각은 박한별 탄원 효과?

법률심이 아닌 사실심으로 진행되는 일선 법원의 재판에서 탄원서는 유의미할까. 지난 5월 클럽 버닝썬 사건으로 기소된 유인석(35) 전 유리홀딩스 대표의 부인 배우 박한별(35)은 A4 용지 3장 분량의 자필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구속 전 심문을 앞두고 제출된 박한별의 탄원서에는 "첫 돌이 지난 어린 자녀의 아버지로서 제 남편은 회피하거나 도주할 생각이 없다. 불구속 상태라도 충실히 조사받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유 전 대표의 구속 영장은 기각됐지만 박한별의 탄원서가 큰 몫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형사사건 전문 민홍기 변호사(법무법인 승전)는 "탄원서는 피고인이 아닌 제3자가 재판부에 의견을 전달할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며 "입건된 피고인에 대한 판단은 어디까지나 법적인 부분이라 탄원서가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모호하다"고 선을 그었다.

피고인 본인이 재판부에 제출하는 반성문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귀가하는 여성을 따라가 집에 침입하려 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른바 '신림동 CCTV 사건'의 범인 조 모(30) 씨는 지난 8월 첫 공판이 열리기 전까지만 7건의 반성문을 제출했다. 피해자와 멀리 떨어져 반성하겠다는 의미로 주소도 옮겼지만 불순한 의도로 주거지를 침입하려 한 범죄사실이 인정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피고인 대부분이 주장하는 '반성하는 태도'와 법을 위반한 죄에 상응하는 형량을 판단하는 것은 별개여서다. 부장판사 출신 여상원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는 "단순히 반성한다는 내용의 탄원서 및 반성문은 사실 양형에도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며 "거의 매 재판 피고인이 쓴 반성문을 받았지만 서면에 말하는 '반성의 태도'는 법정에서도 피고인과 변호인이 직접 진술해서 큰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범행 피해가 복구될 수 없는 살인사건의 경우 효과는 더욱 미미하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자신을 진료하던 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박 모(31) 씨의 어머니는 재판부에 선처를 부탁하는 탄원서를 거듭 제출했지만 항소심에서도 원심과 같은 징역25년형을 선고받았다. 박 씨의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6부(오석준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사전에 계획한 후 피해자를 살해한 사실이 분명해 1심 양형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피고인 어머니께서 간절히 호소하셨지만 판결에 반영을 못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판시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고등법원. /남용희 기자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고등법원. /남용희 기자

탄원서 및 반성문 내용이 공소장에 준할 정도로 법적인 영향력이 있는 내용이라면 예외가 된다. 기존 혐의내용에 반하는 사실이라도 확실한 근거를 담아 탄원서나 반성문 등을 제출한다면 재판부에서 추가로 심리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또 피해자 측에서 가해자의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 역시 주요하게 보는 편이다. 범행 피해가 형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여상원 변호사는 "탄원서에 혐의를 뒤집을 사실관계가 명확히 기재돼 있다면 추가로 심리해 진실을 밝혀내기도 한다"며 "특히 범행 피해자가 합의할 의사가 없음을 강조하거나 범행으로 입은 피해가 얼마나 극심한지 등을 상술한 탄원서는 양형에 적극 반영한다"고 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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