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격화되고 있는 홍콩 민주화 시위의 여파가 국내 대학가를 덮치고 있다. 사진은 지난 8월 18일 오후 홍콩 빅토리아 파크에서 열린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대규모 집회에 참가한 시위대가 집회가 끝난 후 센트럴 지역의 한 거리를 우산을 쓴 채 행진하고 있는 모습. /홍콩=김세정 기자 |
한·중 대학생 '대결 구도'..."혐오 표현은 삼가해야"
[더팩트ㅣ윤용민 기자] 날로 격화되고 있는 홍콩 민주화 시위의 여파가 국내 대학가를 덮치고 있다.
대학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가 훼손되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는가 하면 한국 학생들과 중국 유학생들간 커다란 충돌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각종 SNS를 비롯한 온라인에서도 이 사태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며 대학생들의 반중정서에 불이 붙고 있는 모양새다.
한양대에서는 전날 오후 3시께 중국인 유학생 70여 명이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가 붙은 인문대 앞으로 몰려가 오성홍기를 붙이는 소동을 벌였다. 당시 중국 학생들은 '원차이나(one china)'를 외치며 한양대생들에게 격렬하게 항의했다.
11일 고려대에서는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 대자보가 찢긴 상태로 쓰레기통에서 발견됐다. 이에 학생들이 돌아가며 대자보 앞을 지키자 지나가던 중국 학생들이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며 소리를 질렀다.
학내 논란이 이어지자 고려대 총학생회는 성명을 통해 "대자보 훼손 행위가 반복될 경우 엄중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고, 중국 유학생들은 이에 반발했다. 고려대 중국 유학생모임은 '홍콩 시위가 민주인가 폭행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중국인들은 국가 통일과 안전을 지킬 책임이 있다"며 "(한국인들은)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
연세대에서도 최근 비슷한 일이 연달아 발생해 급기야 경찰이 수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대문경찰서 관계자는 "고소인 조사를 이제 마쳤고, 앞으로 법과 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재물손괴죄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양국의 누리꾼들도 이 싸움(?)에 합세했다. 한국 학생들은 자신들의 대학 커뮤니티에 '중국이 아직도 우리 종주국인지 아느냐', '공산당 짓은 중국가서 해라', '민주주의의 기초부터 배워서 다시 와라' 등 격한 반응을 쏟아냈고, 이에 질세라 중국 누리꾼들은 웨이보에 '한한령을 찬성한다', '한국으로 유학가지 말자. 이런 나라에 돈을 쓰는 게 부끄럽다' 등의 글을 올려 맞섰다.
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한양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등 서울시내 대학 내에 설치된 '홍콩시위 지지' 현수막이 연이어 훼손되는 일이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 11일 고려대에서 발견된 찢겨진 대자보 /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 페이스북 캡처 |
이러한 갈등이 반중정서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 소속 연은정(28·고려대 사범대학 4학년) 씨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중국인을 중국정부와 동일시해선 안 된다"며 "(중국 학생 가운데) 우리처럼 홍콩 민주화 지지하는 학생도 많고, 대자보가 훼손될 때 직접 전화를 걸어 알려주면서 사과하는 중국 학생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중국인과 중국공산당을 하나로 엮어서 보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목소리가 크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일부 중국 유학생들 때문에 애꿎은 다른 중국 학생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한다"며 "중국에 대한 혐오나 반중정서는 우리들 스스로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 대학생 4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공동대표 박도형(21·서울대 사범대학 2학년) 씨는 "중국 학생들이 대자보 훼손 등 물리적인 실력행사만 하지 않으면 충분히 대화할 수 있다"며 "홍콩 민주화를 지지하는 중국인들의 위해서라도 반중과 관련된 혐오 표현은 삼가해달라"고 당부했다.
연세대에 다니는 A 씨는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주위에 중국을 넘어 중국인 개개인들에게조차 적개심을 드러내는 학생이 많다. 이런 (반중) 분위기까지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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