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전담변호인제 15년②] 눈물의 손편지에 감동…"변호사로서 긍지 느껴요"
입력: 2019.11.12 05:00 / 수정: 2019.11.12 09:28
동부법률사무소 임지선 변호사가 2017년부터 지금까지 국선변호인 활동을 하며 피고인들에게 받은 감사 편지. 임 변호사는 이 편지들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송은화 기자
동부법률사무소 임지선 변호사가 2017년부터 지금까지 국선변호인 활동을 하며 피고인들에게 받은 감사 편지. 임 변호사는 이 편지들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송은화 기자

사선변호인이 없으면 피고인을 위해 법원이 국가 비용으로 변호인을 선정해주는 '국선변호인' 제도. 헌법 제12조 제4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지난 2004년 국선변호 업무만을 전담하는 국선전담변호사 제도가 도입되면서 실질적인 제도로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 최근 형사재판에서 국선변호인이 맡은 사건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특히 2018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1심 결심공판에서 국선변호인들의 열정적인 변론으로 국선 이미지가 크게 개선됐고 많은 관심도 받았다. 이에 따라 <더팩트>는 법무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시행을 앞두고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때부터 인정된 '국선변호인' 제도와 2004년 도입된 '국선전담변호인' 제도의 현주소와 한계, 개선 사항 등을 살펴본 기획보도<국선전담변호인제 15년> 2편을 준비했다. 국선변호인제의 현황과 문제점을 살펴본 1편에 이어 2편에서는 실제 현장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네명의 국선 변호사를 만나봤다. <편집자주>

현장 변호사 4인이 본 '국선의 세계'…"기소 전 단계도 확산돼야"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처음에는 개업 변호사로서 고정적인 매출 수단으로 시작하게 됐다."

임지선 변호사(동부법률사무소)는 솔직했다. 본인을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편이라고 소개한 대로 국선변호인을 하게 된 이유도 이같이 밝혔다. 더 거창한 이유를 들며 자신을 포장해도 될 텐데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국선 활동은 단순 수익을 넘어 변호사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임 변호사는 "막상 (국선변호인) 역할을 하다 보니 공공성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며 "변호사의 사명인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 기본적 인권 옹호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몸소 깨달으면서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변호사법 제1조, 변호사의 사명 1항에 따르면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2항에는 변호사가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 유지와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됐다.

임 변호사는 지난 2017년 서울 서부지법에서 국선변호인을 시작해, 2018년 서울 동부지법 근처에 사무실을 개소하면서 옮겼고, 현재는 대법 국선 사건까지 맡고 있다.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의뢰인이 있느냐"는 질문에 임 변호사는 핑크색 편지보관함을 열어 보였다. 직접 손으로 쓴 편지들 모두에는 자신을 위해 열정적으로 변론해 준 임 변호사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절도 등의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명백한 증거 없이 재판을 받게 된 피고인 A씨의 편지가 눈에 띄었다.

그 편지에는 "변호사님으로 인해 삶에 대한 애착과 현실에 대한 용기가 생겼다. 변호사님께서 해주셨던 말씀, 마음 속 깊이 새겨 잊지 않겠다"라고 적혀 있었다.

사설 구급차를 운전하던 A씨는 어느날 거리를 걷다 길가에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직업상 객사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보다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자연스레 생존 여부를 확인한 뒤, 큰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나서야 가던 길을 갔다. 하지만 며칠 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그날 거리에 쓰러져 있던 사람의 휴대폰이 분실됐고, CCTV에 A씨가 찍혔으니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것이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듯 경찰은 A씨의 과거 전과들을 이유로 거짓 자백들을 받아 구속했다. 검찰이 A씨가 '유죄'라고 주장한 이유는 근처 CCTV에 A씨가 찍혔다는 사실 뿐이었다. 하지만 실제 녹화된 내용에는 A씨가 피해자의 지갑을 훔치는 장면은 없었다.

임 변호사는 이 점을 재판에서 강조했고 재판장은 법정에서 CCTV 녹화본을 직접 틀어 해당 사실을 확인했다. 이로써 A씨의 무고가 증명됐다. 임 변호사는 "경찰과 검찰은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과거 전과를 이유로 A씨를 범죄자로 만들었다"며 "A씨 본인 조차도 자신의 삶을 포기한 채 경찰 조사에서 거짓진술을 했지만 저의 노력으로 다시 삶에 대한 애착과 현실에 대한 용기가 생겼다는 A씨의 말은 큰 힘이 됐다"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군사법원 국선의 특별한 보람

최유진 변호사는 2년째 육군 제1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국선변호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군인에 한정된 재판이지만 입대 전 벌어진 문제 등으로 재판을 진행하기도 해 사건은 다양하다. 한 달에 5~6건 정도 배당받는다.

군사법원 국선변호인으로서 느끼는 보람은 남다르다. 특히 앞날이 창창한 젊은 장병들에게 힘이 됐을 때가 그렇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한 일병의 폭행사건이다. 고향 친구랑 주먹다짐을 했는데 상대가 많이 다쳐 벌금 50만원이 선고됐다. 하지만 일병의 경제 사정으로 벌금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피해자인 친구와 화해했다는 점을 강조해 벌금을 10만원으로 줄였다. 최 변호사는 "이후 그 일병이 손편지를 보내 감사함을 전했는데 꽤나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최 변호사는 "요즘 범죄자 인권과 흉악범 변호 등에 관해 여론이 좋지 않은데, 형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죄에 부합하는 형벌을 받기 위해선 반드시 국민 모두에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며 "앞으로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국선변호인 활동을 활발히 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다문화가정·이주여성 편에 선 '우수 변호사'

조찬형 변호사(법무법인 청음)는 지난 9월 대한변호사협회가 선정하는 제 10회 우수변호사 10명 중 한명으로 선정됐다. 2015년부터 다문화청소년과 가정을 위한 법률지원단, 대한변협 다문화가정법률지원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법률소외계층에 대한 공익적 법률지원을 활발히 펼쳤고, 서울시 공익변호사단과 서울지방교정청 국선대리인 등으로 활동하며 공익에 이바지한 점 등을 높이 평가 받았다.

그가 추구하는 '변호사로서 상'을 보면 이런 평가가 틀리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게 없다. 이 세상에는 나 혼자가 아니다'라는 김귀옥 수원지법 부장판사(당시 서울가정법원)의 판결문을 기억하며 신조로 삼아왔다. ​2010년 4월,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난 혐의로 법정에 서게된 청소년 A양에게 남긴 희망의 메시지였다. 조 변호사는 "선입견을 갖지 않고, 사람의 깊은 상처를 아우를 수 있는 그런 변호사가 되기를, 억울한 일은 최소화하도록 함께 노력하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2년차 때 필리핀 이주여성의 이혼사건을 맡아 처리하면서 다문화가족과 이주여성문제에 주목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에는 다문화 가족에 대한 편견이 상당하다. 청소년기 학생 사이에도 서로 이해보다 질시하는 풍조가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최근에는 탈북 청소년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조 변호사는 "국선변호인제도가 법률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실적 수단인 것은 맞지만, 사건이 불거진 뒤 사후적 조치의 성격이 강하다"며 "미리 자문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더 큰 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국선으로 활약하는 '유튜브 스타'

손영서 변호사(법률사무소 율신)는 채널 '손로몬 TV'를 운영하는 유튜브 스타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법률적 도움이 필요한 서민을 위한 채널이다. 정연덕 건국대 로스쿨 교수의 유튜브 방송 '정교수 지식채널'에 우연히 출연한 게 계기였다. 성형부작용 환자들의 의료 분쟁 해결법이 방송 주제였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성형부작용으로 고통받는 많은 환자들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이후 채널을 직접 운영하게 됐다.

손 변호사는 '말은 발화하는 사람의 입에서 태어나고 청취하는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는 말을 좋아한다. 그런데 어떤 말은 죽지 않고 듣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살아남는다. 그는 "제가 건넨 말이 누군가의 마음 속에서 간직될 수 있도록 따뜻하게 말하는 변호사, 귀 기울여 듣고 어려움에 공감하는 '좋은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는 대법원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국선변호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선을 하면서 느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점은 '비용의 선지출' 이다. 국선 사건의 피고인 변호를 위해선 구치소 접견에 드는 비용, 두꺼운 양의 수사기록을 복사하는 비용, 공판기일 출석에 소요되는 비용 등 다양한 지출이 발생한다. 모두 변호사의 사비로 먼저 처리한다. 법원에서는 두세달 지나서야 보수를 지급하는 실정이다.

국선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도 아직 걸음마 단계다. 손 변호사는 "변호인의 법적 조력은 공판 단계보다 기소 전 수사단계, 특히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가장 절실하고 긴요하다"며 "현재 수사절차에서 피의자 조사 시 변호인이 참여하는 비율은 고작 1%에 미치지 못한다. 많은 논의와 개선이 이뤄져 국선변호제도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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