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다투다 차에서 뛰어내린 남편…아내는 유죄일까
입력: 2019.11.08 05:00 / 수정: 2019.11.08 05:00
서울고법 형사5부(김형두 부장판사)가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 남편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박 모(53) 씨에 대한 2심 선고기일을 7일 오후 2시 진행했다. 사진은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고등법원 자료사진. /남용희 기자
서울고법 형사5부(김형두 부장판사)가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 남편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박 모(53) 씨에 대한 2심 선고기일을 7일 오후 2시 진행했다. 사진은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고등법원 자료사진. /남용희 기자

법원 "부인 때문에 남편이 사망했다고 볼 수 없다" 결론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2017년 7월 22일 오후 10시 41분께 경기도 김포의 한 주점에서 술을 마시던 50대 부부는 만취한 채로 아반떼 차량에 올랐다. 운전대는 아내 박 모(당시 51세) 씨가 잡았다. 박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만취 수준인 0.150%로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태였다. 그러나 사고는 전혀 다른 형태로 발생했다. 평소 갈등을 빚은 남편 A(당시 54세) 씨의 아버지 간병 문제, 생활비로 말다툼을 벌이던 중 A씨가 차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지나가던 운전자가 도로에 쓰러진 A씨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혼수상태였던 A씨는 숨졌다. 박 씨는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 남편을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 후 2년이 흘렀다.

◆"남편은 차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유기치사 혐의의 전제가 되는 형법상 유기죄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자가 그 일을 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죄"로 정의된다. 2008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보호 의무가 있는 자는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한 부부부터 서로 혼인의사가 확실한 사실혼 관계까지 폭넓게 지정한다. 박 씨는 남편 A씨를 보호할 의무가 확실한 사람이었다. 재판에 넘겨진 박 씨 사건은 남편의 죽음에 박 씨의 방치가 직접적인 원인인지가 쟁점이었다. 검찰은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 만큼 남편이 심하게 다쳤을 걸 알고도 도로변에 버려뒀다고 주장했다.

박 씨 측은 1심에서 "차에 자동잠금기능이 있어 주행 중에 문이 열리지 않는다. 한 공원 주차장 입구에 차를 세워 내려줬고 남편은 걸어서 차도로 이동했다"고 반박했다. 달리는 차에서 남편이 뛰어내린 게 아니라 정차한 차에서 제 발로 걸어나갔다는 주장이다. 박 씨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취지다. 그러나 차량 블랙박스와 도로 CCTV 확인 결과 A씨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나 쓰러진 채 발견된 차도까지 이동하는 장면은 찍히지 않았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1부(정철민 부장판사)는 A씨의 심한 두개골 골절과 찰과상, 현장에서 벗겨진 신발 위치 등을 볼 때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려 숨졌다고 판단했다. 박 씨의 방치로 A씨가 숨졌다는 검찰 측 공소사실도 받아들여 지난해 11월 유기치사죄로 징역 1년6개월 형을 선고했다.

중부내륙고속도로 김천JC 부근(사건과 관계없음). /더팩트DB
중부내륙고속도로 김천JC 부근(사건과 관계없음). /더팩트DB

◆박 씨의 항소, 그리고 아반떼에 오른 판사들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한 박 씨는 같은 주장을 고수했다. 안전하게 정차된 차에서 A씨가 내렸으며, A씨가 쓰러진 채 발견된 차도까지 직접 걸어갔다는 내용이다. 사건을 넘겨받은 김형두 부장판사를 포함한 서울고법 형사5부는 피고인 요청에 따라 직접 아반떼에 올랐다.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세빛섬에서 현장검증에 나선 판사들은 박 씨의 주장과 달리 주행 중인 차 문도 열릴 수 있음을 확인했다. 판사와 검사, 변호인이 한강변을 왕복으로 주행하며 차 문 손잡이와 잠금장치 노브(knob)를 동시에 열려고 시도하자 시속 15km 이상으로 달렸는데도 문이 열렸다.

4개월 후 11월 7일 법정으로 돌아온 재판부는 몸소 체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피해자가 다투던 중 흥분한 상태로 차 문을 열려고 수차례 시도하다 문이 열려 뛰어내렸다"고 결론지었다. 현장 검증 외에도 박 씨 측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에 따르면 인근 CCTV 영상을 볼 때 정차된 차에서 내리는 사람의 형상은 찍히지 않았다. 박 씨가 내려줬다는 지점에서 약 70m 떨어진 차도까지 만취한 중년 남성이 걸어가는 모습을 봤다는 목격자도 없었다. 운전 중 쓰러진 A씨를 발견한 B씨 역시 사건당일 차도를 걸어가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A씨가 입은 두개골 골절상 등으로 미뤄볼 때 달리는 차에서 추락한 충격으로 사망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판결문이 의학 소견으로 넘어가자 결이 다른 판단이 나왔다.

박 씨는 2심 판결 후 7일 이내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할 수 있다. 사진은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더팩트DB
박 씨는 2심 판결 후 7일 이내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할 수 있다. 사진은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더팩트DB

◆"남편을 유기한 건 맞지만, 유기해서 남편이 죽은 건 아니다"

2017년 7월 23일 오전 12시 33분께 추락한 것으로 보이는 A씨는 약 2분 후 B씨가 발견해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다. 비교적 빠른 구호가 이뤄졌지만 이미 중상을 입은 A씨는 눈을 감았다. 당시 A씨를 담당한 의사에 따르면 A씨가 10분 일찍 왔어도 사망했을 확률이 높았다. 재판부는 해당 소견을 밝히며 "유기치사가 성립되려면 피고인의 방치로 피해자가 살 수도 있었는데 사망했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며 "피고인이 피해자가 뛰어내린 직후 구호 조치를 했더라도 피해자는 생존이 어려웠다고 보인다. 유기는 유죄, 치사는 무죄로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징역 1년6개월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방청석 곳곳에 앉아 있던 A씨 측 유족의 한숨이 줄을 이었다.

8개월이 감경됐지만 재판 중 수차례 "사실이 아니다"라고 눈물로 호소했던 박 씨는 여전히 억울함을 표했다. 박 씨는 울먹이며 "재판장님, 그런 사실 없다. 뛰어내린 사실 없다"고 말했다. 앞서 박 씨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7개월간 수용된 후 보석으로 풀려났다. 재판부는 해당 사실을 언급하며 "3개월 후에는 석방된다"고 말했으나 수용자 전용 출입구로 나서는 박 씨는 착잡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2년 전 그날 밤의 진실은 차에서 뛰어내린 남편을 방치했지만 남편의 사망에 책임이 없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박 씨가 대법원에 상고할 경우 2년 전 밤의 진실은 다시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감경된 2심 판결을 두고 박 씨 측에서 상고할지는 미지수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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