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초밥맛 잊게 한 사법연수원 동기의 난감한 부탁
입력: 2019.11.07 05:00 / 수정: 2019.11.07 07:11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 2018년 8월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 2018년 8월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양승태 전 원장 등 '사법농단' 41회 공판…조한창 전 행정법원 수석부장 증언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조한창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생이다. 평판사 시절 서울고등법원에서도 같이 근무했다. 이규진 위원이 나이는 약간 위지만 서로 막역한 사이였다.

조한창 부장판사가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를 지내던 2015년 5월. 이규진 양형위원이 전화해 "점심이나 먹자"고 했다. 강남역 근처 초밥이 맛있는 한 일식집이었다. 편한 마음으로 식당에 들어섰다. 이규진 위원이 낯선 서류봉투를 들이밀기 전까지는 그랬다.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검토보고'. 봉투 안에 들어있던 문건 제목이었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과 의원직 상실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 전 국회의원들은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보고서는 이 소송 판결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법률적 판단이 아닌 절차적 결함을 이유로 재판을 종결시키는 '각하'는 부적절하다고 했다. 대신 기각이나 인용 결정을 하더라도 의원직 상실을 결정할 권한은 헌재가 아니라 사법부에 있다는 점을 못박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헌재와 법원은 최고 사법기관의 지위를 놓고 항상 맞서온 관계다.

"심리적 부담감이 상당히 컸던 것은 맞습니다." "(문건을 재판부에) 전달을 해야 하나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조한창 부장판사가 검찰 조사에서 했던 진술이다. 점심이나 먹자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던 조 부장판사는 이내 불편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이런 요청은 법관 생활 평생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 한 일이었다.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는 부적절한 행위였다. 또 이규진 위원은 "헌재와 관련이 있으니 각하는 부적절하지 않겠느냐"라며 당시 사건을 배당받은 행정13부 반정우 부장판사에게 이 문건을 전달해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규진 위원 개인이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어 보였다. 이 위원은 원래 이 식사 자리에 강형주 법원행정처 차장과 임종헌 기획조정실장도 오려고 했었다고 귀띔했다. 그럼 박병대 법원행정처장, 양승태 대법원장의 뜻일까. 이 위원은 재판부에 문건을 전달해달라는부탁에 조 부장판사가 소극적인 기색을 보이자 "잘 읽어보고 공부해서 (재판부에) 법리적 문제를 말해주라"고 거듭 설득했다.

"(문건 전달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규진 위원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검사)

"제가 승진은 상관없지만... (법원에서) 평판의 문제가 있죠. 원래 두루두루 좋은 소리를 듣는 성격인데 이정도 업무도 못 하느냐, 좋지 않게 생각하지 않을까 했죠. 그리고 생소한 경험이라 주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조한창 부장판사)

조한창 부장판사는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고영한 전 대법관의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 41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조 부장판사는 이규진 위원에게 부탁을 받은 지 한 달 뒤쯤 한 회식 자리에서 그 사건 재판장인 반정우 부장판사를 만났다. 다른 부장판사 3~4명이 합석한 자리였다. 이런저런 주요 사건 재판 이야기를 하다 넌지시 통진당 소송 이야기를 꺼냈다.

"각하 등은 법리적 문제가 있으니 신중하게 검토해서 결정하세요."

반정우 부장판사는 그냥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는 그해 11월 12일 '법원에 판단 권한이 없다'며 이 사건을 각하 결정했다. 이규진 위원의 "각하는 부적절하다"는 당부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대법원 전경/남용희 기자
대법원 전경/남용희 기자

그 판결 뒤에 작성된 반정우 부장판사의 인사 평정자료에는 이렇게 써있다.

'일부 사건 결론을 도출하면서 주관이 강하게 반영되었다고 보이는 경우가 있음.', '사건처리가 질적인 면에서는 다소 미흡.'

조한창 부장판사는 당시 수석부장판사로서 행정법원 판사들의 인사 평정 자료를 작성하는 업무도 맡았다. 그는 이날 법정에서 "반 부장판사의 인사 평정 기초안을 내가 작성했지만 그런 표현을 쓴 적은 없다"고 말했다.

조 부장판사는 검찰에 불편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자신이 조사에서 진술했던 것과 다른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반정우 부장판사에게 '기각 등은 법리적 문제가 있으니 검토해보라'고만 이야기했는데 공소장에는 '기각은'이라고 적혔다는 설명이다. '등'의 유무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조서를 확인할 때도 문제제기 했는데 수정되지 않았다는 취지다. 그는 "내가 말하지 않은 내용이 있어 기분이 나쁘다. 저에게도 좋지 않은 내용이기도 하다"고 했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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