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히든카드 '김학의 가르마' 판 뒤집나
입력: 2019.11.05 05:00 / 수정: 2019.11.05 05:00
뇌물수수·성 접대 의혹을 받는 김학의 전 차관이 지난 5월 9일 오전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김 전 차관이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은 지난 2013년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이후 5년 반 만이다. /이새롬 기자
뇌물수수·성 접대 의혹을 받는 김학의 전 차관이 지난 5월 9일 오전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김 전 차관이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은 지난 2013년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이후 5년 반 만이다. /이새롬 기자

법조계 "가르마 위치는 신빙성 떨어져…'재판부 심증'은 가능"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성 접대와 3억 원대 뇌물수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학의(63) 전 법무부 차관이 때 아닌 '가르마 공방'을 벌였다. 지난달 29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차관의 결심공판에서 변호인은 두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한 장은 지난 4월 검찰에서 확보한 건설업자 윤중천 씨의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촬영된 피해여성과 한 남성의 셀프 카메라 사진이었다. 또 다른 사진 한 장은 검찰이 확보한 사진과 같은 날짜에 있었던 임채진(67)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김 전 차관의 사진이었다.

두 사진 속 남성의 생김새는 비슷했지만 가르마 위치는 달랐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제출한 사진 속 남성은 가르마 위치가 달라 김 전 차관으로 볼 수 없다고 변론했다. 김 전 차관 역시 "평생 왼쪽으로만 가르마를 탔다"고 직접 즈장했다. 오피스텔은 물론 윤 씨 명의의 강원도 원주 별장에서 성 접대를 받은 사실까지 완강히 부인하는 김 전 차관으로서는 가르마 위치가 선고 직전 '회심의 일격'인 셈이다. 과연 김 전 차관의 가르마는 22일 선고기일에서 유리한 양형을 끌어낼 수 있을까.

◆가르마 위치 "신원 구별 기준 아니다"

김 전 차관 측 변호인단은 검찰 수사기록을 열람‧등사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오피스텔 사진을 보고 가르마 위치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변호인단은 지난 7월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구치소 접견 때 김 전 차관에게만 말했을 뿐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결심공판 최후변론에 이르러서야 '가르마 패'를 꺼내 들었다.

다만 법조계는 변호인이 전략상 선고를 앞두고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지만, 가르마 위치가 달라 동일인이 아니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장윤미 변호사는 "변호인으로서 가르마 위치가 다르다는 주장은 할 수 있다. 일례로 사람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피고인이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는 유무죄 판단에 중요한 근거라 핵심적으로 파고든다"면서도 "이와 달리 가르마는 얼마든지 위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평소 습성으로 보기 힘들다. 가르마 위치만으로 특정된 신원을 뒤집기에는 무게감이 떨어지는 근거라 재판부 심증에 영향도 미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연 태연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역시 "가르마 위치가 DNA처럼 바꿀 수 없는 고정적 요인임을 증명한다면 (사진 속 남성이) 김 전 차관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신임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됐으나 성 접대 의혹이 불거져 같은해 3월 21일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하고 낙마했다. 사진은 2013년 무렵 김 전 차관의 모습. /뉴시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신임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됐으나 성 접대 의혹이 불거져 같은해 3월 21일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하고 낙마했다. 사진은 2013년 무렵 김 전 차관의 모습. /뉴시스

◆"일평생 가르마 위치 인증해야 신빙성"

김 전 차관 측이 가르마 위치로 신빙성 있는 변론을 펼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입증 자료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선 변호사들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자료와 사건 관계자 진술을 넘으려면 김 전 차관의 가르마 위치가 평생 왼쪽이었음을 증명할 확실한 증거자료를 확보해야 승산이 있다고 본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가르마 위치는 범죄자의 신원을 파악하는데 엄청난 근거가 되지 못한다"며 "가르마 위치만으로 본인이 아니란 걸 증명하려면 사진 한 장으로는 부족하다. 평생 가르마를 일관된 방향으로 탔다는 사실을 소명하기 위해 시기별로 찍은 사진을 제출해야 그나마 신빙성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청한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 역시 "제가 변호를 맡았어도 당연히 주장했을 내용이지만 판결이 뒤집힐 거라고 기대할 사안은 아니다. 이미 해당 내용과 관련해 증거와 진술 등이 많이 확보된 상황이라 가르마 위치만으로 검찰 측 공소사실을 반박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만약 김 전 차관 측에서 평생 가르마 위치를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를 댄다면 오피스텔 성 접대 건은 무죄로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정계선)는 22일 오후 2시 김 전 차관에 대한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남용희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정계선)는 22일 오후 2시 김 전 차관에 대한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남용희 기자

◆"재판부 심증에 영향 줘 형량 달라질 수도"

양형에 큰 영향을 미칠 근거는 아니지만 법정에서 나온 주장인 만큼 재판부와 검찰 모두 김 전 차관의 가르마 위치를 고려할 거라는 전망도 있다. 송기호 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김 전 차관 측에서 가르마 위치를 왼쪽으로만 고수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특별한 자료가 있다면 형사재판 대원칙에 따라 입증 책임이 검찰에게 간다. 검찰이 따로 의견서를 제출하거나 추가 심리가 필요할 경우 선고기일을 미룰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 역시 "김 전 차관이 받는 혐의가 여러 가지고 관련 증거자료와 진술도 많이 확보해서 사진 속 남성 신원은 특정하지 않고 1심이 마무리될 걸로 보인다"면서도 "변호인 주장이 재판부 심증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있다. 재판부에서 가르마 위치를 심증으로 보고 판단한다면 형량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증이란 사건을 바라보는 법관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확신이다. 형사소송법은 법관의 심증 형성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추가 조사 없이 재판부에서 변호인단이 제시한 가르마 위치를 판결에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다.

김 전 차관의 선고기일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정계선) 심리로 22일 오후 2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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