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2014년 성탄절 '양승태 코트'서 벌어진 일
입력: 2019.10.31 05:00 / 수정: 2019.10.31 05:00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선고가 열린 2014년 12월19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재판이 끝난 후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재판정을 나서며 당원들을 위로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선고가 열린 2014년 12월19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재판이 끝난 후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재판정을 나서며 당원들을 위로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사법농단' 40회 공판…통진당 재산 가압류 신청의 막후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2014년 12월19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정부가 청구한 정당 해산 심판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다. 재판관 8대1의 압도적 차이였다.

정당 해산이 결정됐다고 끝이 아니다. 그 정당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는 통진당 중앙당과 시·도당에 남은 후원금을 비롯한 잔여재산을 가압류해달라고 각 관할 법원에 신청했다.

그런데 가압류·가처분 중 무엇이 더 효율적인지, 일사불란한 인용이 가능할지 고민한 곳이 있었다. 바로 청와대였다.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김영한 민정수석-김종필 법무비서관을 타고 내려온 지시는 임종헌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 이르렀다. 독립돼야 할 사법부가 청와대의 법률자문기구가 된 셈이다. 당시 '양승태 코트'는 숙원인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청와대의 협조가 절실했다.

크리스마스를 눈앞에 둔 연말이었다. 12월 22일 인왕산 아래에서 시작된 라인의 최극단에 있던 최우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 심의관(현 수원지법 부장판사)은 두 지방법원 판사에게 연락을 받았다. 각 법원에 선관위의 통진당 잔여재산 가압류 신청이 들어왔는데 재판부가 판단에 혼선을 겪는다는 내용이었다. 정당 해산 자체가 전례가 없는데다가 가압류 신청을 인용할지를 놓고도 법적 견해가 분분하다는 게 뼈대였다. 최 부장판사는 이를 전지원 사법지원실 총괄 심의관에게 알렸다.

얼마 후 전 총괄심의관은 최 심의관에게 지시했다. 연락한 두 지방법원 판사들에게 검토 자료를 받고, 대법원 재판연구관에게도 의견을 구해 보고서로 정리하라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이브'인 12월 23일 이렇게 '통진당 예금계좌에 대한 채권가압류 신청에 관한 검토' 문건은 탄생했다. 이 문건은 가처분이 가장 적절하다는 결론을 담았다.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전 법원행정처장)의 40회 속행공판에 증인으로 나선 최우진 부장판사는 당시 윤성원 사법지원실장에게 문건을 직접 보고했는지는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어떻게든 보고는 됐을 것이라고 했다.

본격적인 문제는 문건 작성 다음부터였다. 임종헌 기조실장, 윤 실장을 거쳐 지시를 받은 전 총괄심의관은 이 문건을 통진당 가압류 신청을 판단할 전국 법원 재판부에 전달하라고 했다. 이는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격이었다.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는 조치였다. 당시 법원행정처 자체적으로는 어느 법원 재판부가 가압류 신청을 담당하는지 파악도 힘들었다. 전 심의관은 선관위에서 '채권 가압류 신청 제기 상황'이라는 자료까지 얻어다줬다. 훗날 이 자료는 윤성원 실장이 선관위원장인 이인복 대법관에게 문의해 확보한 사실이 전해졌다.

지시를 받은 최우진 판사는 문건을 법원행정처의 고유 양식이 아닌 일반 양식 문서로 바꿨다. 문건이 판사 사이에 자발적으로 공유됐다는 모양새를 위해 서울중앙지법 모 부장판사에게 대신 배포해줄 것을 부탁했으나 거절 당했다. 이후 16개 전국 담당 재판부에 자료를 보내면서 직접 전화해 권위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한 문건을 송부한다는 일종의 '안내'를 했다. 이런 사실들을 두고 이날 법정에서는 검사와 증인 사이 짧고 굵은 공방이 벌어졌다.

"법원행정처가 각 법원에 검토자료를 배포하지 않았다면 재판 결과가 다양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검찰 조사 때와 진술 취지가 달라진 것 같다."

"그때도 단언해서 진술한 건 아니었다."

"윤성원 실장과 전지원 총괄심의관의 검토 자료 전달 지시를 거절하거나 이의제기할 생각은 하지 않았나."

"특별히 거절해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다."

"재판 공정성과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는 부적절한 짓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당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검사는 증인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전혀 하지 않았나?"

"그렇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018년 11월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018년 11월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최우진 부장판사는 검토 자료에 법원행정처 고유양식을 일부러 없앤 것도 "각 법원에 행정처의 공식 의견이라는 부담을 주지않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반면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의도로 봤다.

그는 당시 김종필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임종헌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의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이나 자신이 쓴 문건이 청와대에 전달되리라는 점은 미처 몰랐다고 강조했다.

어쨌든 당시 통진당 잔여재산 가압류 신청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법원행정처가 보내 준 검토 자료에 따라 각 법원은 선관위에 '가처분'으로 바꿔 신청하라는 보정 명령을 냈다. 이후 가처분 신청은 모든 법원에서 인용됐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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