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검찰에게 유난히 길었던 '30분'
입력: 2019.10.29 13:44 / 수정: 2019.10.29 13:44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4월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4월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환경부 블랙리스트'재판…재판부 '공소장 연타 지적'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주원 기자] "검찰에서 3000개 이상 증거를 대셨는데 입장 정리하는데 충분하지 않으셨을까요. 아, 물론 기소도 충분히 정리한 후 하셨겠죠?"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63) 전 환경부 장관 등의 두 번째 재판이 약 30분 만에 끝났다. 내달 27일 첫 정식 공판기일을 앞두고 앞으로의 재판 진행을 논의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검찰에게는 유난히 길었던 재판이었다. 재판부가 지난달 30일 첫 준비기일에 이어 검찰의 공소장을 지적하며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을 시 형사소송법에 따라 증거조사없이 선고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송인권 부장판사)는 29일 오전 10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강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 사건의 2차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공판준비기일은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어 두 피고인 대신 변호인단만이 법정에 자리했다.

재판부는 지난달 30일 첫 준비기일에 검찰이 제출한 공소장의 문제점 세 가지를 지적한 바 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의 지시를 받고 직접 범행한 행위자가 많이 등장하나 이들에 대한 형법적 평가를 누락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행위자가 업무방해죄 피해자로 기재된 건 모순이라고 판단했다. 공소장 내용이 장황하고 산만하다며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 소지를 경고하기도 했다. 공소사실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재해 재판부 판단을 흐릴 우려가 있다는 취지다.

약 1개월 만에 열린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은 공소장 변경 신청서 대신 10월 21일자로 제출한 의견서를 들고 왔다. 재판부는 해당 의견서를 실물 화상기에 띄웠다. 검찰은 의견서를 통해 "간접정범이든 공동정범이든 본건 재판에서 피고인 방어권 보장에 지장은 없다"고 밝혔다. 앞서 재판부에서 김 전 장관의 지시를 받은 행위자가 특정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공범관계 역시 모호하다는 지적에 대한 해명이다. 행위자들이 상급자인 김 전 장관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저질렀다면 간접정범, 고의적으로 가담했다면 공동정범이 된다. 재판부에 따르면 검찰은 이러한 내용을 특정하지 않았고 김 전 장관의 혐의인 업무방해죄 피해자라는 취지로만 기재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환경부와 한국환경관리공단를 압수색한 지난 1월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들고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청와대 특별감찰반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환경부와 한국환경관리공단를 압수색한 지난 1월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들고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재판부는 "간접정범과 공동정범은 적용 법조는 물론 혐의 내용도 다르다. 같은 정범이라도 고의성, 위법성, 책임성 등 범행 가담 이유에 따라 변호인 방어전략이 달라진다"며 "검사가 (공범 관계를) 특정하지 않는 건 피고인 방어권을 보장하는 형사소송법 기본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3000개 이상 증거를 댔는데 입장 정리에 충분하지 않으셨을까요. 아, 물론 기소도 충분히 정리한 후 하셨겠죠?"라는 날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변호인 역시 앞서 제출한 의견서를 실물 화상기에 띄워 "검찰은 54쪽에 이르는 공소장으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제기하셨는데 피고인과 실제 행위자 사이를 산만하고 장황하게 작성하셨다. 공범 관계도 명확히 특정하지 않아 피고인 방어권 행사가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은 "피고인을 간접정범으로 기소했다는 취지다. 공판과정에서 공범인지 간접정범인지 달리 판단된다면 바꿀 수 있다는 여지를 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공소장을 변경하겠다고 덧붙였지만 재판부의 공세는 멈출 줄 몰랐다.

"저희가 의견서로 의견을 밝힌 건 간접정범으로 보고 기소했다는…" (검찰)

"그 부분을 특정하세요. 공소장 바꿔주세요." (재판부)

"저희도 (공소장을) 바꾸지 않겠다는 건 아닙니다." (검찰)

"오늘까지 정리해 달라고 하지 않았나요? 4주면 충분했을텐데 다음 기일까지 정리해주세요."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장 변경할 기한을 11월 12일로 정했다. 첫 정식 공판기일은11월 27일 오후 2시로, 검찰과 변호인 양측의 모두진술, 서증조사가 있을 예정이다. 검찰이 공범관계를 특정하지 않으면 형사소송법 325조, 327조 2항에 따라 별도의 증거조사없이 판결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형사소송법 "피고사건이 범죄가 아니거나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 판결로써 무죄를 선고한다"고 규정한다. 327조는 공소기각 판결에 대한 조항으로 2항에서 공소기각 조건으로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 규정에 위반한 때"를 명시한다.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은 2017년 12월~2018년 1월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을 내보내려고 사표를 요구한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다. 후임자 공모 과정에 고의적으로 관여한 혐의도 포함됐다. 2018년 7월 청와대 추천 후보자 박모 씨가 환경공단 상임감사 서류 심사에서 떨어지자 심사에서 통과한 다른 후보자들을 모두 불합격 조치한 혐의다. 또 박 씨를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이 지배주주로 있는 기관 대표로 임명되도록 종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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