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 사진은 2018년 2월 서지현 검사 성추행 피해를 검찰 간부가 은폐했다는 의혹을 공론화한 임 부장검사가 참고인 진술을 위해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한 모습/ 더팩트 DB |
검찰청 압색영장 거듭 기각...수사권 조정 놓고도 수싸움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감히 경찰 따위가 어찌 검찰을 압수수색 하겠나?"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모든 국민들에게 적용되는 대한민국 법률이 검찰공화국 성벽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지난 4월 김수남 전 검찰총장, 김주현 전 대검 차장 등 전·현직 검찰 수뇌부를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부산지검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서울중앙지검은 기각했다.
임 부장검사가 고발한 사건은 김 전 총장 등이 2016년 당시 부산지검 소속 윤 모 검사가 민원인이 낸 고소장을 위조한 사실(공문서위조)을 적발했지만 징계 조치 없이 사표 수리로 무마했다는 내용이다.
경찰의 부산지검 압수수색 영장 신청 기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경찰은 지난 9월 9일에도 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법무부와 검찰에 요청한 자료제출도 개인정보 등을 이유로 거부당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지난 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경찰청 등의 종합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
◆경찰청사 올해만 3번 압색당해 '굴욕'
임 부장검사 만큼 경찰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 모양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검찰의 거듭된 영장 기각을 놓고 "경찰도 검찰 관련 사건은 신중히 검토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반 사건에 비해 검찰 관련 사건의 수사 진행이 어려운 것은 현장에서 수사하는 경찰들 모두가 느끼는 것"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경찰의 하소연은 근거가 없지 않다. 최근 경찰청이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검찰청사 및 전·현직 검사·검찰공무원 대상 영장신청 현황'에 따르면 경찰은 최근 10년 동안 전·현직 검사가 연루된 사건에서 총 55건의 각종 영장을 신청했다. 이중 검찰이 청구한 영장은 10건에 그쳤다. 특히 2016~2019년에는 대검찰청 등 검찰청사 압수수색 영장을 5차례 신청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2013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사건 수사 당시 8차례 신청한 영장이 모두 기각된 일도 유명하다. 반면 검찰은 올해 들어서만 버닝썬 사건 등으로 경찰청·서울경찰청사를 3차례 압수수색해 경찰의 기를 꺾었다.
검찰은 부산지검 압수수색 영장 기각은 강제수사를 할 만큼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을 불식시키기 위해 '검찰 자체감찰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비위가 의심되는 검사의 사표 수리를 원칙적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뼈대를 이룬다. 변호사와 변리사, 회계사 등을 비롯해 감사원·경찰·국세청의 감사 업무 담당자를 대검 감찰부의 특별조사관으로 영입하는 등 외부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된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린 대검찰청 청사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배정한 기자 |
지금까지 검찰과 경찰의 힘겨루기는 항상 검찰의 승리로 마무리 됐다. 경찰로서는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 여론이 강한 지금이 '천재일우'의 기회인 셈이다. 최근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이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검찰개혁 보고서를 직원들에게 공유했다가 논란을 빚은 것도 이같은 조바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청한 경찰 출신 한 변호사는 "검찰의 경찰을 무시하는 태도는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며 "이번에는 반드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 다 넘겨"…'수사권 조정' 조이는 검찰
검찰 역시 수사권 조정을 놓고 점점 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4일 대검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에는 "모든 사건은 검사에게 송치돼 최종적으로 증거에 따른 사실관계와 법률판단을 거쳐야만 한다"고 적혔다. 윤 총장이 그동안 인사청문회와 대검 국정감사 등에서 수사권 조정에 긍정적인 취지로 발언해 온 것과는 상반된 내용이다. 검찰의 경찰 수사 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주려는 정부안에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검찰과 경찰의 희비를 가를 검찰개혁 법안을 다룰 정치권에서는 '고위공직자범죄(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이 쟁점이 되는 상황이다. 수사권 조정은 상대적으로 관심 밖이다. 오히려 검찰 출신 야당 인사들은 '검찰 독립성'을 강조한다. 검사 출신인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자신의 SNS에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와 검찰 수사의 독립성 확보가 검찰개혁의 핵심"이라며 "검찰 예산의 독립과 검찰 인사의 독립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차마 드러내지 못 하는 속내를 대신 보여주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로서는 여야가 대치하는 공수처에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수사권 조정에서 실익을 확보하는 것이 더 현명할 수 있다. 정부 방침대로 특수부를 축소하더라도 일정 기간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유지된다.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경찰 수사지휘권만 만족할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검찰권은 크게 위축되지 않을 수 있다.
윤석열 총장은 취임 3개월이 넘도록 아직 민갑룡 경찰청장을 만나지 않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수사로 대외 활동을 최소화한 탓도 있다. 하지만 문무일 전 총장이 취임 직후 역대 최초로 경찰청을 직접 방문하고 퇴임 전날에도 민갑룡 청장을 찾은 것과는 비교된다. 이미 국회에서 패스트트랙 법안 논의가 본격화된 만큼 검경 수장의 만남은 '수사권 조정' 승부가 판가름난 뒤에야 이뤄질 가능성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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