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제3자 정자로 태어난 아이…"친자식 맞나요?"
입력: 2019.10.22 05:00 / 수정: 2019.10.22 08:28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5월 22일 오후 대법정에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관련 공개변론을 열었다. /뉴시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5월 22일 오후 대법정에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관련 공개변론을 열었다. /뉴시스

"시대적 흐름 반영돼야"vs "자녀는 한 순간에 아버지 잃어"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남편의 동의로 제3자의 정자로 인공수정해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남편의 친자식일까? 아침 드라마 줄거리 같은 이야기가 대법원의 판단을 받는다.

대법원은 지난 1983년 7월 '부부가 동거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곤 친생자로 추정한다'고 선고한 이후 이런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친생자 추정'이란 민법상 혼인이 성립된 날부터 200일 후 또는 혼인이 종료된 날부터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녀는 친자식으로 인정한다는 법률용어다. 어머니는 출산이라는 증거가 있지만 아버지는 친자 확인 전에는 명백하게 증명할 수 없다. 그래서 법적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당시 대법원의 설명은 이렇다. 부부가 동거한 상태에서 아이를 임신했다면 친자식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부부의 한쪽이 해외에 오래 나가 있거나 사실상의 이혼으로 별거하고 있었다면 다르다. 아내가 남편의 자녀를 임신할 수 없는 명백한 사정이 있다면 친자식으로 추정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결론이다.

36년이 지난 2019년 10월 23일 대법원은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관련 선고를 내리게 됐다. 아버지 A씨가 자녀들을 상대로 낸 소송이다.

1985년 결혼한 A씨와 B씨 부부는 무정자증으로 자녀가 없었다. B씨는 A씨의 동의를 얻어 제3자로부터 정자를 제공받아 시험관시술을 받았다. 그 덕분에 1993년 첫째 아이를 낳은 뒤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4년 뒤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A씨는 자신의 무정자증이 치유된 것으로 생각하고 둘째 역시 친자식으로 출생신고했다. A씨는 2013년 가정불화로 B씨와 이혼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둘째가 혼외관계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두 자녀를 상대로 친자식이 아니라며 소송을 낸 이유다.

1.2심은 기존 판례에 따라 자식들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은 A씨가 무정자증 진단을 받았지만 부부가 동거했기 때문에 '친생자 추정 원칙'이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친생추정'은 부자관계를 확정해 자녀의 복리를 보장한다는 의미도 있다.

반면 2심은 A씨가 인공수정에 동의했기 때문에 첫째 자녀는 친자식으로 볼 수 있지만, 둘째는 친자식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다만 입양의 실질적 요건을 갖췄기 때문에 양자친자 관계는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A씨의 상고로 사건을 넘겨 받은 대법원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이유로 지난 5월 22일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날 참고인으로 공개변론에 나선 원고측 차선자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회적 친자관계가 파탄됐을 경우 친자관계부존재확인 소를 통해 친생부인(아내가 혼인 중에 가졌다고 추정되는 자식을 남편이 자기의 자식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이 자녀 복리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시대 흐름에 따른 변화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반면 피고측 참고인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AID(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 방식의 인공수정으로 출생한 자녀에 대한 친생부인이나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는 '금반언의 원칙'에 따라 허용될 수 없다"며 맞섰다. '금반언의 원칙'은 선행 행위와 모순되는 후행 행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대법원 전경 /더팩트 DB
대법원 전경 /더팩트 DB

피고(자녀) 측 대리인 최유진 변호사는 "이미 1.2심 모두 원고인 A씨가 졌고, 원고가 상고했으니 상고기각을 예상한다"며 조심스럽게 자신감을 내비쳤다. 최 변호사는 "AID에 동의한 남편이 뒤늦게 친생부인권을 행사하는 것은 금반언의 원칙에 위반돼 불가능하다"며 "이는 민법 제 844노 제1항의 친생부인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 변호사는 "대법이 예외를 인정하게 된다면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자녀들은 타의로 본인의 법적 지위가 확정될 때까지 신분이 불안정하다는 불합리성이 잠재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소송으로 자녀들은 아버지가 한 순간 없어져 버릴 수 있어 두려워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고(A씨) 측 대리인 안은혜 변호사 역시 최초 대법 선고 이후 36년이 지난 만큼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 새로운 법 해석이 나올 때가 됐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안 변호사는 "(친자가 아닌 것을 확인했는데도) 친자관계를 지속시키면 불행한 가족관계가 지속된다. 인공수정 동의는 아이를 낳기 위한 의료행위에 동의한 것으로 친생자라는 법적 효력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라며 친생자 추정 예외 확대를 주장했다.

또 "민법 제844조 규정이 제정된 지 50년, 친생자 추정의 예외를 부부가 동거하지 않는 경우로 본 대법원 판결이 30년이 지났다"며 "아버지와 자녀 간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점이 과학적으로 명백하고,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파탄이 됐으며, 아버지와 자녀 간 사회적, 정서적 유대관계도 단절됐다면 예외적으로 친생자추정의 효력은 미치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happy@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