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시민센터의 기공식이 9월 4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노무현시민센터 건립부지에서 열린 가운데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김세정 기자 |
KBS 법리 검토..."성희롱 형사처벌 쉽지않아"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검사들이 KBS OOO기자를 좋아해 (수사 상황을) 술술술 흘렸다. 검사들에게 또 다른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친밀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
한 언론사 기자 A씨는 지난 15일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 생방송에 출연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을 취재한 KBS 여기자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이 기자가 성적 매력을 앞세워 남성 검사로부터 정보를 빼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취지의 말로, 이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다.
유 이사장은 방송 말미에 "오해의 소지가 조금 있을 것 같다. 성희롱 발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사과했다. 알렐레오 측은 생방송 당시 발언 일부를 편집한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유 이사장은 "평소 그런 부분에 있어 깨어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잠을 못 자고 생각해보니 감수성이 약했던 거다"라며 "내가 여자였으면 바로 꽂혔을텐데 남자라서 여성들이 느끼는 만큼 못 느꼈던 것 같다"고 해명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를 비롯해 SNS 등을 중심으로 논란은 확산됐다. KBS 기자협회와 KBS 여기자회는 유 이사장에게 방송에서 공식 사과 이상의 책임을 지라며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양승동 KBS 사장도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KBS국정감사에서 "빠른 시일 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17일 '알릴레오'에서 벌어진 KBS 여기자 성희롱 논란에 대해 "감수성이 부족했다"며 사과했다.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 캡쳐 |
그렇다면 문제의 발언을 한 A기자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밝히면 '받을 수 없다.'
'성희롱'은 업무와 고용, 그 밖의 관계에서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해 성적인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이지만, 성희롱 자체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장윤미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이번 사건은 추행이나 명예훼손 등의 요건에 해당돼야 형사처벌(고소) 등을 고려해 볼 수 있고, 자신의 의견을 말한 것은 명예훼손 (혐의)에서 사실 혹은 사실적시 등이 입증돼야 하는데 A기자의 발언은 '이렇게 취재하고, 좋아한다더라'는 의견으로 보여져, 형사적 처벌은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지선 동부법률사무소 변호사도 "(A기자의 발언으로) KBS 여기자가 부당한 취재를 한다는 식의 의미를 추론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말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A 기자에게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순 있지만 법적 책임까지 묻게 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특히 "남자 검사가 누구인지, 또는 이름 등도 특정되지 않아 형사적 처벌은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투운동 등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변화함에 따라 과거에는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행동에도 성희롱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국민적 법 감정에 비해 법에서 적용되는 범위는 여전히 좁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 5월 28일 이른 아침 귀가하던 여성을 뒤따라가 집까지 들어가려고 시도했던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이 대표적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는 지난 16일 성폭력범죄의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주거침입강간) 혐의로 구속 기속된 조 씨(30)에게 주거침입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핵심 쟁점이었던 강간미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객관적으로 드러난 조 씨의 행동은 피해자의 집에 들어가려고 한 것이지 강간 의도를 추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강간미수 무죄 판단 이유를 설명했다. 의심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에게 말을 걸기 위해 뒤따라갔다는 피고인 주장을 완전히 배척할 수 없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문을 열려고 하거나, 초인종을 누르는 등의 조 씨 행위들이 '강간 의도'를 아주 명백하고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강간' 목적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인들은 법원이 폭넓게 강간 미수를 인정해버리면 강간죄 법 규정 자체를 무시하는 결과가 된다고 봤다. 다만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시민단체들은 피해 여성이 겪은 상황에 대한 공감이나 현실 반영 없이 재판부 입장에서 내리는 판단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4월 소속학과 여학생들을 상대로 백허그와 "뽀뽀를 해주면 추천서를 만들어주겠다"는 등의 부적절한 발언을 한 B대학 장 모 교수의 해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을 심리할 때 '성인지 감수성'을 갖추고 '2차 피해'를 우려하는 피해자의 입장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이 성희롱 관련 사건의 심리와 증거판단의 기준을 제시한 것은 이날 판결이 최초다.
대법원은 9월 9일 여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해 징역 3년 6개월을 확정했다. 사진은 지난 2월 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마친 뒤 호송차에 오르고 있는 안 전 지사의 모습./남윤호 기자 |
지난달(9월) 여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대법의 '실형' 확정 판결 등 최근 법원에서 피해자의 상황을 고려한 전향적인 판결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알릴레오 KBS 여기자 성희롱 논란,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의 선고 등을 볼 때 성폭행이나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 원칙이 재판부의 판단에 적극 고려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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