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신림동 CCTV 남성' 강간 혐의 벗은 이유는
입력: 2019.10.16 16:49 / 수정: 2019.10.16 16:49
지난 5월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침입하려 한 조모(30) 씨의 범행이 담긴 CCTV 영상 중 일부. /유투브 캡처
지난 5월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침입하려 한 조모(30) 씨의 범행이 담긴 CCTV 영상 중 일부. /유투브 캡처

법원 "범의 있더라도 강간미수죄 적용 어렵다"…주거침입은 유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법원이 지난 5월 귀가하는 여성을 따라가 집에 침입하려 한 조모(30) 씨의 강간 범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강간할 의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강간 범의가 있었더라도 강간미수죄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혼자 살았던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감과 사회 불안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주거침입죄를 적용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제31형사부(김연학 부장판사)는 16일 오전 10시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주거침입·강간) 혐의로 기소된 조씨에 대한 선고기일을 열고 이같이 판결했다.

구속기소 100일을 넘긴 조씨는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기르고 지난 7월에 있었던 첫 재판에 비해 다소 야윈 모습이었다. 평소와 달리 선고기일에는 변호인 없이 홀로 출석했다. 조씨는 변경된 주소를 확인하는 재판부의 질문에 짧게 답할 뿐 고개를 숙인 채 판결을 들었다. 조씨는 직전 공판에서 피해자와 멀리 떨어져 반성하겠다는 의미로 서울에서 본가가 있는 지방으로 이사갔다고 밝힌 바 있다.

재판부는 애초 검찰이 기소했던 성폭력특별법상 주거침입·강간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형법상 주거침입죄를 적용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검찰이 결심공판에서 요청한 신상정보공개·아동청소년 기관 취업제한 등은 기각됐다.

조씨는 5월 28일 오전 6시20분께 지하철 2호선 신림역 부근에서 귀가하던 피해자를 발견해 200m 거리를 뒤따라가 집에 침입하려 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가 급히 현관문을 닫자 약 10분간 휴대전화 손전등으로 도어록을 비춰보고 문을 두드리는 등 위협을 가했다.

조씨 재판의 쟁점은 성폭력특별법상 강간미수죄 적용 문제였다. 조씨 측은 피해자와 술을 마시기 위해 따라갔을 뿐 강간할 의도는 없었다고 부인해왔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강간 범의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는지 △강간 범의가 있었다면 법률상 강간미수범으로 볼 수 있는지 두 가지 측면을 들어 조씨의 주거침입·강간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렸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고 피고인이 술 한잔 하자고 제안한 것을 피해자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피해자에게 말을 걸려고 따라갔다는 피고인 주장을 배척할 수만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와 단둘이 있었던 엘리베이터에서 바로 폭행과 협박 등 범행에 나아갈 수 있었지만 (피고인은) 그와 같이 행동하지 않았다"며 "피고인은 피해자가 혼자 사는지 여부도 알지 못한 상황에서 주거지 침입 이상의 범행에 나아갈 의도가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건 현장을 담은 CCTV 영상, 조씨와 피해자의 진술을 종합하면 강간 범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경. /남용희 기자
대법원 전경. /남용희 기자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강간 범의가 있었더라도 강간미수를 적용하기 힘들다. 재판부는 "성폭력특별법에 나타난 주거침입·강간죄 적용을 위해서는 실행에 나아갔는지 봐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라며 "강간 수단으로서 폭행이나 협박을 한 사실이 있어야 하고 가해자의 폭행·협박은 피해자가 항거 불능할 정도여야 한다"고 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고 112에 신고한 점을 볼 때, 피해자가 생명 또는 신체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저항을 포기하고 현관문을 열어주거나 위험한 방법으로 도망할 정도로 (피고인이) 위협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봤다.

범죄자의 주거침입 목적으로는 강간과 강제추행 등 성범죄, 금품갈취와 살인 등이 꼽힌다. 이중 하나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법관이 임의로 처벌한다면 국가형벌권의 자의적 행사라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법치국가 기본원칙과 제헌법정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간 범의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조씨는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성폭력특별법상 주거침입·강간죄보다 형량이 가벼운 형법상 주거침입죄를 적용하되 죄질이 극히 나쁘다며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판결 이유로는 "이른 아침에 홀로 귀가하는 면식 없는 젊은 여성을 따라가 공동주택 계단까지 침입한데다 주거지 침입을 시도한 죄질이 좋지 않다. 선량한 시민 누구나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과 불안감을 증폭시켰다"고 밝혔다.

조씨는 재판부의 판결에 별다른 뜻을 밝히지 않고 교정 관계자와 법정을 나섰다. 검찰과 피고인 모두 7일 이내 항소장을 제출해야 하지만 조씨가 피해자에게 합의금 3000만원을 지급한 점과 피해자가 더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으로 미뤄볼 때 항소심은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순찰을 돌고 있는 여성안심귀갓길 자원봉사자들 대부분 여성 2인이 한조를 이루어 순찰을 돌고 있다. /이동률 기자
순찰을 돌고 있는 여성안심귀갓길 자원봉사자들 대부분 여성 2인이 한조를 이루어 순찰을 돌고 있다. /이동률 기자

검찰은 조씨가 2012년 유사한 방식으로 여성을 따라가 강제추행한 혐의로 입건된 전력을 들며 이번 사건 역시 강간 범의가 있었다고 볼 사유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5년과 신상정보공개·아동청소년 기관 취업제한 7년, 보호관찰 6년 야간 등 특정 시간대 외출 제한 및 피해자 등 특정인에 접근금지, 성폭력치료 프로그램 이수 등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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