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림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대표가 지난달 19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이선화 기자 |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은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인종, 국적, 그 어떠한 조건과 환경에서도 차별되어서는 안 되며,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져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는 어떤 상황에 있는 아동이더라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부모가 형사적 책임을 지고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수감생활을 징벌로만 인식하는 국내 정서에서는 수용자 자녀의 권리에는 무감각하기 쉽다. <더팩트>는 연 5만명가량으로 추산되는 수용자 자녀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3회에 걸쳐 살펴봤다. 마지막 순서로 이경림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대표의 인터뷰를 싣는다.<편집자주>
이경림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대표 인터뷰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아직 겨울의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지난 3월의 어느 날, 수용자 자녀를 통합 지원하는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의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는 아쉬운 목소리가 가득 묻어 나왔다. 세움 식구들이 지켜보던 KBS 2TV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의 결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사무실 식구끼리 지난 주말에 챙겨본 드라마로 수다를 떠는 건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러나 세움의 수다는 남달랐다. 모처럼 범죄자 아버지를 둔 딸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사실 아버지는 누명을 쓴 것이었고, 아버지의 누명이 벗겨진 딸은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수용자 자녀도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길 바랐던 '세움' 식구들은 맥이 풀렸다.
5월 세움이 연구를 지원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수용자 자녀 인권 증진을 위한 권고가 나왔다. 그런데도 '세움'은 여전히 대대적인 후원 홍보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동이기 전에 '범죄자 자녀'라는 잣대를 들이미는 사회 분위기에 밀려서다. 이경림 세움 대표는 더 이상 수용자 자녀 인권도 생각해달라고 호소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동으로서 권리를 마땅히 보호받아야할 아이들 중 수용자 자녀도 있다는 사실만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이 대표는 "어떤 사람이 우리 활동을 보고 수용자 자녀 역시 보호받아야할 아동이라고 인식하는 것, 딱 거기까지가 제 할일"이라며 "다만 우리 아이들을 위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수용자 자녀 역시 대한민국의 어린이로서 잘 살아가도록 지지하는 '비밀친구'가 되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 일문일답.
-수용자 자녀가 호소하는 가장 큰 고통은.
부모의 수용에 대한 죄책감과 부끄러움이다.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 아이들에게까지 전이되는 경우도 있다. 수감된 부모가 사기범처럼 경제사범일 때 아이들은 "우리 아빠, 또는 엄마가 나를 먹여 살리려고 죄를 지었구나"하는 죄의식을 가진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만나면 무엇보다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많이 해주려고 노력한다. 또 우리 사회가 워낙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말이 속담처럼 내려오고, 죄를 지으면 3대를 멸해야 한다는 헌법상 금지하는 연좌제가 깊숙이 적용되는 사회다. 아동은 이러한 시선을 감내해야 함은 물론 죄를 짓고 수용된 부모를 보며 "나도 성장해서 저렇게 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안고 산다.
-신상공개 명령에 대한 갑론을박이 많다. 수용자 신원이 밝혀지면 자녀가 평범한 삶을 사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
언론에 보도된 유명한 사건에 연루된 아동만 신상노출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작은 동네에서 발생한 비교적 사소한 사건도 온라인 커뮤니티의 발달로 신상 노출 위험이 많다. 제가 만난 한 아동은 맘카페에서 "어느 학교에 다니는 A의 부모가 죄지었다"는 말이 퍼졌고 이를 본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에게 A와 놀지 말라고 종용한다. 엄마가 사기죄로 입건된 아동이었는데 학교 앞에서 그 아동을 전학 보내라는 학부모들의 시위가 있기도 했다. 일부 흉악 범죄자처럼 신상공개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 범죄자 본인은 물론 가족과 자녀의 신상이 특정된다. 수용자 자녀는 물론 시위에 나선 학부모를 둔 아이들도 부모로 사람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수용자 가족에 부정적인 언론보도가 많고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는 프레임도 강하다.
미디어에서 수용자 자녀를 미화하길 바라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수용자 자녀는 항상 고통받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최근 배우 최수종이 주연한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의 여자 주인공이 범죄자의 자녀로 나왔다. 우리도 관심 있게 지켜봤는데 결국 결말은 사실 아버지가 누명을 쓴 것이고, 아버지의 누명이 벗겨지며 주인공인 딸도 행복해지는 내용이었다. 공영방송 주말드라마라 내용에 제약이 많았겠지만, 내심 ‘수감자 자녀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기대했던 터라 맥이 풀렸다. 비록 부모가 수용자인 아이지만, 우리가 보호해야할 아동이라는 더 큰 범주에 속한 존재라는데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다. 모든 아이들은 부모의 죄에 상관없이 당당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런데 참 쉽지 않다. 그래서 수용자 자녀를 제2의 피해자, 잊혀진 피해자라고 말한다.
-수용자 자녀와 가장 가까이 지내는 양육자가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점이 있다면.
제가 만난 아동은 대부분 한부모 가족이 많아서 부모가 수용되면 조부모·친척이 키우거나 보육시설에 간다. 양육자가 있다면 아이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부모가 장기 복역수인 경우 아이가 성장했을 때 출소한 부모를 어떻게 맞이할지도 가르쳐야 한다. 아동이 수용된 부모 역시 자신의 엄마, 아빠라 인식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쌓았을 때 출소 후에도 가정이 해체되지 않을 수 있다. 또 안에 있던 부모도 자신의 뇌를 깊이 뉘우치고 아이를 위해 부모 역할을 해야겠다는 책임감에 앞서 말했듯 재범율도 낮아진다. 양육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수용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양육자 역시 애환이 있을 텐데.
사실 양육자도 정말 힘들다. 소위 '옥바라지'도 해야 하고 가족의 수용에 따른 심적인 어려움, 수용 후에도 끝나지 않는 법적인 문제까지 양육자의 몫이다. 이런 상황에 아동까지 보살피기란 쉽지 않다. 제가 만난 수용자 자녀를 돌보는 한 조부모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우선 당신들이 자식을 잘못 키워 감옥에 갔다는 죄책감과 손주에 대한 미안함, 세대차이가 나다보니 이른바 '요즘 아이들'을 키우기 힘든 버거움까지 안고 계셨다. 어느 날 할머니가 "내가 애를 잘 못 키우나봐.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시설로 보낼걸 그랬어"라고 말씀하시더라. 마음이 많이 아픈 한편 수감자 자녀 복지와 함께 양육자 교육의 중요성도 실감했다.
이경림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대표가 지난달 19일 <더팩트>와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선화 기자 |
-부모의 수용 사실을 알리는 것과 지속적인 접견을 강조한다. 양육자로서는 참 어려울 것 같은데.
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수용을 아는 아동이 10명 중 3~4명에 불과하다. 아동 성향마다 달리 접근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 부모의 수용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 양육자로서는 숨기고 싶은 마음에 "외국 갔다", "지방에 내려갔다", "돈 벌러 갔다"고 둘러댄다. 요즘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상통화도 가능한 시대다. 어느 날 부모가 연락조차 닿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아이들은 자기가 버려졌다고 오해한다. 아동의 자존감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에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생각, 거부당했다는 생각을 하고 "나는 사랑받지 못하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기게 된다. 물론 부모의 범행과 수용을 섣불리 알려주면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아동에게 해가되지 않는 선에서, 아동의 눈높이에 맞춰 알려야 한다. 다만 아동을 건강하게 사랑하지 못한 부모거나 아동학대로 수용된 부모는 아이들과 분리시켜야 한다.
-우리 사회가 수용자 자녀를 잘 보살필 수 있도록 노력할 점이 있다면.
수용으로 가족해체가 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가족관계 회복과 유지에 많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수용자와 자녀의 면회가 보장돼야 한다. 대부분 교도소가 지방에 있다 보니 시간과 비용이 문제다. 다음으로는 면회환경 개선인데, 저희 세움과 법무부가 협력해 가족접견실을 만들긴 했지만 아직 부족한 현실이다. 교도소는 1000명 단위의 수감자들이 있는데 가족접견실에서 면회할 수 있는 수용자는 가정으로 따지면 하루에 1~2 가족이 2시간 접견할 수 있는 규모에 불과하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은 수용자 자녀를 위한 정책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아동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참고해야할 좋은 선례 중 하나다. 세움에서도 아동에게 면회 비용 및 용돈을 지원하는데 어디까지나 민간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불과하다. 정부 차원에서 수감자 자녀를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관련기사
[쇠창살 안 '엄빠'①] "아빠 다녀올게" 그리고 2년이 걸렸다
[쇠창살 안 '엄빠'②] 길거리 내몰리고 우울증도…위기의 아이들
ilraoh_@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