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삼바 법정에 '독일 헌법'이 등장한 이유는
  • 송주원 기자
  • 입력: 2019.10.02 18:21 / 수정: 2019.10.02 18:21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선 지난해 12월 인천시 연수구 송도바이오대로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직원들이 로비를 지나가고 있다. /이선화 기자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선 지난해 12월 인천시 연수구 송도바이오대로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직원들이 로비를 지나가고 있다. /이선화 기자

"증거인멸 성립안돼…독일 사례 고려해달라"[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분식회계 의혹이 제기되자 관련 자료를 삭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삼성바이오 측 변호인이 재판부에 "독일 헌법 이념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에서는 '증거인멸'로 부르는 죄명을 '처벌방해'로 일컫는 등 타인의 형사사건 유무죄 여부를 절대적으로 고려하는 독일의 법리적 관점을 참고해달라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 제24형사부(소병석 부장판사)는 삼성 임직원의 증거인멸·증거인멸교사 등 혐의에 대한 2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삼성그룹 계열사 보안업무를 총괄한 서모 씨와 사업지원TF 소속 김모 씨, 박모 씨, 이모 씨 등 4명의 피고인 측 변호인의 모두진술이 있었다. 변호인은 검찰 측 모두진술이 있었던 지난 25일 첫 공판 때와 마찬가지로 공소장에 드러난 객관적 사실관계는 모두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지만, 증거인멸·증거인멸교사 혐의를 적용하는 건 법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자료를 삭제했다고 증거인멸죄가 성립되는 건 아니다. 삭제된 자료가 타인의 형사사건 증거가 될 때 성립된다"며 "인멸된 증거와 형사사건 사이의 관련성이 있어야 (증거인멸 혐의의) 구성요건이 충족되는데 공소장에는 엄격한 증명과 설명없이 모두 증거인멸죄 대상인 것처럼 쓰였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증거인멸의 범위가 무한대로 넓어져 명확성의 원칙, 법정주의에도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독일은 증거인멸 혐의를 '처벌방해죄'로 처벌하는데 타인의 형사사건이 유죄라는 전제 하에 처벌한다. 독일 사례를 한국에 직접 인용할 수 없지만 독일 헌법의 이념을 재판부에서 한 번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이 사건은 형사사건 여부도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는데 증거인멸죄가 성립한다고 (검찰이) 주장할 뿐만 아니라 죄의 범위도 지나치게 확대했다"고 말했다. 분식회계와 관련된 사건이 재판에 넘겨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증거인멸 혐의를 적용하는 것은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죄"라고 명시된 현행 형법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4조5천억원대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된 증거 인멸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 양 모 상무가 지난 4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삼성바이오로직스의 4조5천억원대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된 증거 인멸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 양 모 상무가 지난 4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분식회계 의혹이 사실이라도 피고인들의 자료 인멸 행위가 증거인멸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변호인은 "검찰이 분식회계 수사를 피하기 위해 인멸했다고 주장하는 20여건의 자료는 피고인들이 업무상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삭제한 수백만건의 자료 중 일부"라고 했다. 변호인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받는 '다스'(DAS) 논란이 터진 후 검찰은 2016년 11월~2018년 4월 15회에 걸쳐 삼성을 압수수색했다. 사실상 월1회 강제수사를 겪던 삼성 임직원들은 검찰 수사 및 업무에 관련없는 선에서 사내자료를 대량 폐기해왔으며, 이번 사건 역시 같은 취지로 자료를 없애던 중 회계 관련 자료가 일부 포함됐을 뿐이라는 취지다.

모두진술 당시 삼성바이오 측에 "유례없는 증거인멸을 저지르고 분식회계가 형사사건이 되지 않으니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은 무책임하다"고 몰아세웠던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애초 변호인 모두진술은 증거인멸죄에 대한 법리적 진술 1시간, 분식회계 논란에 대한 해명 1시간으로 예정됐다. 1시간을 넘기지 않은 법리적 진술과 달리 분식회계 논란 해명은 1시간을 훌쩍 넘겼다. 검찰은 이를 두고 "변호인 모두진술을 보니 증거인멸은 30분, 분식회계 정당성을 증명하는데 1시간을 썼다. 증거인멸죄 재판에서 분식회계 논란을 길게 설명하는 저의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혹시 (방청석에) 언론인이 많이 와있어서…"라고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 기일과 마찬가지로 "누차 말한대로 타인의형사사건, 즉 분식회계 유무죄 여부는 범죄 선고와 상관없는 판례와 학설이 있다. 증거 확인이 어려운 증거인멸 범죄의 특수성 때문에 일일이 증거를 특정할 필요도 없다"며 "어떤 기회가 와서 자료를 지우기만 해도 죄를 물을 수 있다. 그래서 포괄일죄로 기소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검찰은 첫 재판에서 피고인 8명의 행위를 1개의 죄로 구성하는 포괄일죄 취지로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고 이날 재판부의 허가로 변경된 바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재경팀장 이모 씨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 경영지원실장으로 재직 중인 양모 씨 등 8명은 지난해 5월 금융감독원에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 고발을 예고하자 관련 자료를 삭제하거나 은닉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이들은 관련 자료를 한 신입사원의 컴퓨터에 일괄 옮겨두거나 삼성바이오공장 바닥에 묻었다. 3차 공판기일은 10월 8일 오전 10시로, 인부 절차를 마친 증거에 대한 서증조사가 있을 예정이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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