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판사도 피고인도 웃어버린 원세훈 재판
입력: 2019.10.01 00:00 / 수정: 2019.10.01 01:11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4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횡령과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김세정 기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4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횡령과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김세정 기자

김백준 증인 출석 놓고 너털웃음…"오후에 또 와야하나"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주원 기자] 지난 8월 본인의 항소심 공판에 100일 만에 나타나 무죄를 선고받고 떠난 김백준(79) 전 청와대 정무기획관의 이름이 또 다시 법원에서 울렸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고를 손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세훈(68) 전 국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불출석했기 때문이다. 본인 재판을 포함해 관련 사건에 10회 이상 불출석한 전력이 있는만큼 재판부는 물론 피고인도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이순형 부장판사)는 30일 오전 10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국고등손실) 13차 공판을 열었으나 이날 증인신문이 예정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 전 기획관이 출석하지 않아 공전됐다.

원 전 원장의 재판은 통상 주3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열린다. 이날 오전 재판에는 이 전 대통령의 증인신문이 예정됐으나 불출석했다. 재판부는 "오늘 오전 이 전 대통령의 비공개 증인신문을 하기로 했으나 증인이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했다"며 "경호 문제와 이 전 대통령 본인의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에게 허가받을 부분이 있다고 (사유서에) 기재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불출석사유서에 다음 기일에는 출석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를 담은 걸로 보인다.

문제는 오후 2시에 증인신문이 예정된 김 전 기획관이었다. 김 전 기획관은 건강상의 이유를 들며 본인의 항소심 공판에도 자주 불출석해 2심 선고가 2차례 미뤄졌다. '40년 지기'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공판 증인신문에도 9회 불출석했다. 이날 재판 역시 김 전 기획관에 대한 소환장이 송달되지 않아 불출석이 예상됐다. 김 전 기획관의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3부는 피고인의 불출석을 확인하고 익숙한 듯 일언반구없이 추후 기일을 지정한 바 있다.

원 전 원장의 재판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이 "다른 사건으로 비춰볼 때 이 정도 했으면 (김 전 기획관은) 안나올 것 같다. 검찰로서도 출석시킬 방법을 이미 다 강구하지 않았냐"며 증인채택 취소를 요청하자 재판부는 "허허, (오후 2시에) 혹시 나오면 어떡하지"라고 웃었다.

변호인은 재판일정이 만만치 않으니 사실상 공전이 뻔한 오후 재판을 쉬고 다음 기일을 준비하자는 뜻을 내비쳤다. 재판부는 "재판 절차상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는데 (오후 재판을) 해야한다"며 "정말 '전격적으로' 나올 지도 모르지 않나. 허허, 소환은 안됐지만 저희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또 웃었다. 김 전 기획관의 '연타석' 불출석에 재판부 차원에서 감치하겠다고 경고한 이 전 대통령의 2심 재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원 전 원장 역시 법정을 나서며 "아니, (김 전 기획관이) 오후에는 나오겠냐고. 오후에 또 와야하네"라고 실소를 터트렸다.

결국 김 전 기획관은 오후 2시 속행된 공판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공판기일은 10월 28일로, 이날 불출석한 이 전 대통령과 김 전 기획관에 대한 증인신문을 다시 진행할 예정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받은 의혹을 받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김세정기자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받은 의혹을 받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김세정기자

원 전 원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1월~2012년 12월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 등과 함께 국정원 심리전단과 연계된 사이버 외곽팀의 온·오프라인 불법 정치 활동을 지원하려고 국정원 예산 65억원을 지급한 혐의로 기소됐다.

원 전 원장 측은 국정원장은 회계 업무를 관할한 직원이 아니라 검찰이 기소한 국고손실죄를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원 전 원장이 국정원장으로서 회계관리를 총괄했더라도 국정원내 공무원에게 위임하지 않았는지 등을 세부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예산회계법 등 국가의 예산 및 회계와 관련된 법령에 따라 국가의 회계사무를 집행하는 자 또는 보조자가 횡령죄와 배임죄를 저질렀을 때 국고손실죄가 적용된다.

검찰은 8월 국고손실을 횡령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와 우파단체 지원 관련 사항을 추가로 기재한 공소장 변경 신청을 제출했지만 국정원장을 회계사무 집행자로 볼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형인 것으로 보인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에 "원 전 원장이 회계관계 직원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판단해야할지 불분명하다"며 "피고인이 회계 업무를 하는 직원과 공모한 공범이라는 취지로 공소를 제기한 것인지 검사에 성명을 구한다. 다음 기일까지 검토해 추가로 공소사실을 변경하라"고 했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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