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화의 낭중지추] 윤석열, '국민의 검찰' 약속 잊었나
입력: 2019.09.29 00:00 / 수정: 2019.09.29 09:57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을 받은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이 9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종합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장관 취임식에 참석해 취임사를 하고 있다. /과천=이덕인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을 받은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이 9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종합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장관 취임식에 참석해 취임사를 하고 있다. /과천=이덕인 기자

서초동으로 모이는 '검찰개혁' 촛불에 답해야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9년 전쯤이었을까. 인터뷰를 위해 조국 법무부 장관을 가까이에서 만난 적이 있다. 물론 당시 조 장관은 서울대 교수 신분이었다. 큰 키에 훈훈한 외모뿐 아니라 차분한 분위기, 젠틀한 행동들이 어우러져 '멋있다'는 한 문장으로 압축해 그를 기억했다. 여름 계절학기라는 짧은 기간 동안이었으나 잠시 머물렀던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라는 공통의 분모가 있었고 같은 부산 출신이라는 이유로도 조 교수를 응원했다.

과거 조 장관은 "정치 할 생각이 없다"고 한결같이 말했고 나는 그의 발언을 신뢰했다. 그런데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더니 2017년부터 2년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했다. 또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제66대 법무부 장관이 됐다.

어디까지나 내 욕심이겠지만 '학자'로 남아주길 바랐다. 활용할 수 없는 학문에 부정적인 편이지만 조 장관은 개혁적인 법학자로 역할을 지속해주길 희망했다. 하지만 내 기대는 보란 듯이 깨졌고 그는 현재 법무 장관이다. 조 장관은 "법무·검찰 개혁은 학자·지식인으로서 평생을 소망해왔던 일"이라며 법무 장관 자리를 맡게 된 이유를 밝혔다.

평생 소망해 온 일이어서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조 장관을 지명한 8월 9일로부터 51일(28일 기준)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를 향한 전방위적 공격은 거세다. 50곳 이상의 압수수색, 어머니, 남동생, 전 제수씨, 딸, 아들 등 부인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검찰 조사를 받았고,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 소환도 조만간에 이뤄질 듯하다. 논문 제1저자 등재 등 조 장관 자녀의 입시와 관련해서는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2030 청년들에게 분노를 주기엔 충분했다. 그렇지만 이 문제로 전국 50여 곳을 동시 압수수색하고, 사상 최초로 현 장관 자택을 압수수색할 때 조 장관 딸이 중.고등학교 시절 사용하던 폴더폰을 '추가 영장'을 발부 받아 가져간 것과 중 2때 쓰던 일기장도 가져가려 했다는 사실로 볼 때 검찰은 '과잉·짜맞추기 수사'라는 오명을 씻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중2가 쓴 개인적인 일기장을 압수해 분석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 충분할 것 같다.

과거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 다스 의혹 수사 당시 김윤옥 여사는 조사하지 않았다. 검찰은 김 여사가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소환 조사를 시도했으나 김 여사가 불응해 결국 불러 조사하진 못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여러 차례 검찰 조사에 나와줄 것을 요청했으나 김 여사가 거부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본인이 완강히 거부하면 조사하지 않았다. 또 최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아들 역시 고등학교 시절 논문에서 제1저자로 등재돼 논란이 됐지만 검찰은 조 장관 가족 수사와 달리 전방위적 압수수색을 아직 벌이지 않고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조 장관 및 가족 관련 의혹에 대한 압수수색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면서 "증거 확보 차원"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나 대표 자녀 의혹과 관련해서도 증거 확보를 위해선 당장 압수수색을 진행해야 하지 않나? 이 문제를 단순 비교할 순 없겠으나 검찰이 유독 조 장관에 대해서만 '열정'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점은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 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 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치욕적.' 검찰 수사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다. 검찰이 초반부터 범죄자 취급하듯 몰아세워 그 굴욕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과거에는 많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4년 발간한 '검찰 수사 중 피조사자의 자살 발생 원인 및 대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총 46명의 검찰 피조사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해마다 10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물론 검찰은 조 장관 딸과 아들 조사에 대해 "통상의 절차에 따라 수사 검사와 변호인, 조사받는 분이 협의해 적정한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안다. 조사 중간 중간 휴식, 식사, 조서열람, 수정이 다 포함된 상황"이라며 "조사 상황에 대해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에 대해선 말할 것 없고, 수사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사팀은 최대한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20대의 학생이 감당하기엔 참 버거웠을 것 같다.

검찰의 과잉 수사가 논란이 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검찰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전 검찰력을 기울이다시피 엄정하게 수사하고 있는데도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은 "헌법 정신에 입각해 인권을 존중하는 바탕에서 법 절차에 따라 엄정히 수사하고 국민이 원하는 개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맞섰다. '법대로 하겠다'는 건데, 헌법 제2장 제11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실제 다수의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 등을 봤을 때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구절에 동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전관변호사와 대형로펌 변호사들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들이 자신을 변호할 때 승소할 확률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처음 지명됐을 때는 이런 상태에 놓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개혁이고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뒤로 되돌릴 수 없는 개혁은 결국 제도화"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밝혔다. 특히 조 장관은 "죽을 힘을 다해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내딛겠다"며 검찰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사법적폐청산 범국민 시민연대가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검찰개혁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여고 있다. /이효균 기자
'사법적폐청산 범국민 시민연대'가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검찰개혁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여고 있다. /이효균 기자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촛불들이 또다시 서초동 검찰청 앞으로 다시 모이고 있다. 분위기가 심상찮다. '사법적폐청산 범국민 시민연대'는 지난 21일에 이어 28일에도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100만명의 시민이 모여 '제7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를 개최했다. 시민연대는 "계속해서 중앙지검 앞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지난 7월 취임식에서 헌법 제1조를 읊으며 "검찰의 형사법 집행 권한은 국민이 부여한 가장 강력한 공권력으로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한다"며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이 되겠다"고 밝혔다. 헌법 제1조 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돼 있다. 그렇다면 검찰은 '헌법 제1조 2항'에 따라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3년 만에 '또 다시 촛불'을 들고 중앙지검 앞 거리로 나선 우리 국민들이 원하는 검찰개혁이 무엇인지 국민의 눈높이에서 고민해 주기를 바란다.

happ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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