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화성부터 '그놈 목소리'까지…한국 3대 미제사건
입력: 2019.09.20 05:00 / 수정: 2019.09.20 05:00
3월 26일 대구 달서구 와룡산 자락 유골 발견 현장에서 열린 ‘개구리소년 28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 대표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3월 26일 대구 달서구 와룡산 자락 유골 발견 현장에서 열린 ‘개구리소년 28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 대표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화성연쇄살인' 용의자 특정에 재수사 필요성 급물살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미치도록 잡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한국 미제사건의 상징이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가 33년만에 특정돼 다른 미제사건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 사건을 포함해 도롱뇽을 잡으러 인근 야산에 올라간 초등학생 5명이 실종된 '개구리소년 사건', 놀이터에서 놀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1개월 만에 한강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이형호 군 실종 사건' 등은 한국 강력범죄 역사상 최악의 3대 미제사건으로 불렸다. 이 사건들은 여성과 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일어난 범죄였다. 사건이 일어난 1980~1990년대보다 수사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재수사가 촉구된다.

◆실책 집합체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

1991년 대구 성서초등학생 5명이 집 근처에 있던 와룡산에 놀러갔다가 실종됐다. 아이들은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지만 개구리를 잡으러 갔다가 실종됐다는 당시 언론보도를 시작으로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으로 불리게 됐다. 당시 경찰은 단순 가출로 보고 초동수사에 실패했다. 아이들의 사진이 담긴 전단지가 전국에 배포됐지만 지금보다 강력범죄에 대한 시민의식이 부족하던 때라 허위제보와 장난전화가 들끓었다. 실종된 아들 김종식(당시 8세) 군을 찾으려 전국을 돌았던 고 김철규 씨는 아들의 유골이 발견되기 꼭 1년 전 간암으로 사망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실종 11년만인 2002년 9월 아이들은 놀러갔던 와룡산 중턱에서 유골로 발견됐다. 출동한 경찰은 곡괭이와 삽으로 땅을 파헤치고 유골 부검도 없이 조난당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하는 등 여전히 허점을 보였다. 현장감식과 부검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은 사고사가 아닌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김영규(당시 10세) 군의 유골은 옷 소매로 양손이 단단히 묶인 상태였다. 아이들 중 연장자였던 우철원(당시 12세) 군은 두개골에 찍힌 좌상흔만 25군데에 달해 아직 생존했을 때 범인에게 맹렬히 저항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유골 역시 두개골에 흉기 자국이 다수 발견됐다.

당시 와룡산에는 육군 50사단 사격장이 있었다. 부대원의 소행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50사단 공식 발표에 따르면 사건 발생일은 임시공휴일이라 사격은 없었다. 이후에도 사건 당일 와룡산에서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던 성서초등학생이 대학생이 돼서도 "비명소리를 분명히 들었고 절대 잊지 못한다"고 거듭 진술하는 등 제보가 잇달았지만 진척없이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공소시효 만료로 영원한 미제사건으로 남을 것 같았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재수사로 용의자가 특정되며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이 사건 역시 재수사를 벌일지 주목된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20일 사단법인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의 요청으로 20일 사건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지난 3월 개구리소년 제28주기 추모식 당시 민 청장은 "조만간 사건 현장을 방문하겠다. 재수사 역시 검토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형호 군 유괴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 그놈목소리(2007). 메가폰을 잡은 박진표 감독은 사건 당시 SBS 그것이 고싶다 조연출로 일하며 해당 사건을 취재한 경험이 있다. /네이버 영화 제공
이형호 군 유괴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 '그놈목소리'(2007). 메가폰을 잡은 박진표 감독은 사건 당시 SBS '그것이 고싶다' 조연출로 일하며 해당 사건을 취재한 경험이 있다. /네이버 영화 제공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이형호 군 실종 사건

대구에서 개구리소년이 실종되기 2개월 전인 1991년 1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살던 이형호(당시 10세) 군이 행방불명됐다. 형호 군은 저녁 무렵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형호 군이 사라진 날 밤부터 아이를 유괴한 것으로 보이는 서울·경기 말씨의 30대 남성의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협박 전화는 43일간 60여 차례에 걸쳐 왔으며 경찰에 신고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서초경찰서 형사다. 거기 있는(전화를 받은 형호 군의 의붓어머니와 함께 있는) 형사들 좀 바꿔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범인은 형호 군의 몸값으로 특정 장소에 돈을 준비하라고 요구했는데, 만나기로 했던 장소에 아예 나타나지 않거나 도중에 장소를 바꾸는 등 가족과 경찰의 애를 태웠다. 끝내 범인은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돈을 넣으라 요구했다. 2월 19일 서울 상계동 한 은행에서 범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개설한 계좌에 입금된 돈을 인출했으나 단말기에서 '사고신고 계좌' 문구를 보고 달아났다. 해당 은행에 CCTV마저 없어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1개월 후 1991년 3월 13일 형호 군의 시신이 한강공원에서 발견됐는데 부검 결과 유괴 직후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범인은 이미 죽은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돈을 요구한 것이다. 경찰은 범인이 개설한 통장 명의가 형호 군의 생모 쪽 친척인 이모 씨의 지인으로 밝혀지면서 이씨를 조사했다. 이씨가 대학에서 전기통신을 전공한 점, 통화속 범인이 생모와 살고 있는 형호 군의 형까지 알고 있는 점도 의심을 더했다. 그러나 범인이 서울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걸어온 날 경북 경주에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증명되며 무혐의로 결론지었다. 2011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의뢰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화내용이 치밀하고 가족의 동선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는 점을 들어 범인이 최소 3명 이상일 거라는 분석이 나왔으나 2006년 시효가 만료된 후 13년이 흐른 지금도 진범은 잡히지 않고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일부 피해자와 성서초등학생 5명과 마찬가지로 형호 군 유괴 사건은 범죄에 취약한 미성년자가 무참히 살해됐다는 점에서 죄질이 무겁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재구성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추억(2003). /네이버 영화 제공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재구성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추억'(2003). /네이버 영화 제공

◆'사상 최다 수사인력'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범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1991년 경기도 화성에서 여성 10명이 잇달아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에서 수사에 동원한 인력은 200만명으로 한국 강력범죄 역사상 최다 수준이다. 용의자와 참고인 신분으로 특정된 인물만 2만 1280명, 지문대조 4만 116명, 모발감정 180명을 조사했지만 범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범행 현장에서 범인이 피운 담배꽁초와 6가닥의 머리카락, 정액 등을 확보했지만 인력과 장비 부족으로 실체를 밝히기 역부족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나오는 것처럼 유족과 국민은 물론 형사들에게도 "미치도록 잡고 싶은" 범인이었다. 담당 형사였던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은 19일 SNS를 통해 용의자 특정 소식을 듣자마자 함께 수사했던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을 울었다고 전했다.

범인의 실체가 모호한 상황에서 진범에 대한 추측도 끊이지 않았다. 봉 감독은 2013년 '살인의 추억' 10주년 행사에서 범인을 1971년 이전에 태어난 과시적인 성품의 남성으로 특정하며 "이 행사를 한 이유는 농담이 아니고 범인 역시 꼭 참석하리라 생각해서다"라고 말했다. 여성과 부유층 노인 등 21명을 살해해 사형수로 복역 중인 유영철은 "살인 행각은 멈출 수 없기 때문에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죽었거나 교도소에 수감됐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영철의 말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18일 경찰은 처제를 성폭행한 후 살해해 무기수로 복역 중인 이모(56) 씨를 사건의 용의자로 특정했다.

경찰은 사건을 재수사하던 중 증거물에서 검출된 범인의 유전자를 국립과학수사원에 의뢰해 일치한 대상자를 확인했다. 사건 당시 현장에서 발견한 정액 샘플을 일본까지 보내고도 범인을 찾지 못한 것을 볼 때 이번 용의자 특정은 수사기술의 발전을 반증한다. 이씨는 수감된 부산교도소에서 1급 모범수로 분류된 상태로, 19일 이뤄진 1차 수사에서는 혐의를 부인했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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