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검사도 변호인도 그를 당할 수 없었다
입력: 2019.09.11 00:01 / 수정: 2019.09.11 00:01
사법농단 의혹 정점으로 지목돼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석을 허가받은 7월22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의왕=남용희 기자
'사법농단 의혹' 정점으로 지목돼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석을 허가받은 7월22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의왕=남용희 기자

'사법농단' 재판 증인 박성준 판사…검찰 신문에 "전혀 동의 못 해"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그가 법정에서 가장 많이 쓴 말은 '전혀'와 '당연히' 였다. 주로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부사로 쓰였다.

박성준 서울고법 판사(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심의관)는 지금까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재판에 등장한 증인 중 가장 공격적이었다. 검사와 변호인의 말을 자르고 짜증내듯 반박하기도 했다. 어떤 증인보다도 목소리도 우렁차 증언을 기록해야 하는 취재진에게는 반가웠다.

박성준 판사는 2015년 2월 임종헌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의 지시를 받아 '국정원 선거 개입 (원세훈) 사건 항소심 선고 보고' 문건을 작성했다.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으로 1심 무죄에서 2심 징역 3년으로 뒤집혀 법정구속된 상태였다. 박근혜 정부는 이 재판이 신경쓰일 수 밖에 없었다. 2심 재판부가 공직선거법 위반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정권 정통성 위기로 이어질 수 있었다.

상고심에서 예상되는 쟁점 분석을 담은 박성준 판사의 문건에는 '심각성’이라는 제목 밑에 "국정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확정되면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하였다는 비난뿐만 아니라, 선거 자체가 불공정한 사유가 개입하였다는 폭발력을 가질 수 있음"이라고 적혔다. 또 이 문건은 당시 이 사건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던 신현일 수원지법 평택지원 부장판사에게 전달됐다.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어가 2015년 7월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됐다.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공판은 박성준 판사의 열띤 항변의 장이었다. 그는 검찰이 "이 문건이 대법원 재판연구관에게 전달됐다면 예단을 갖게하는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신문하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문건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상고심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끼칠 파장을 강조한 대목은 "(재판연구관이)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변호인 반대신문에서는 검찰 공소사실을 "아전인수"라고 비판했고 "표현을 달리했어야 했다는 후회는 없느냐"는 신문에는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쏘아붙였다.

박성준 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는 민감한 진술을 한 적이 있다. 검찰 조사에서 윤성원 당시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이 자신이 쓴 문건을 양 대법원장에게 보고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이 "실제 보고를 했느냐"고 묻자 황당하다는 듯 "제가 어떻게 압니까"라고 대꾸했다. 다만 대법원장 비서실장에게 보고서를 이메일로 보낸 적이 있는데, 보통 실장은 이메일을 받아 출력해 원장실에 들어가 보고하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전경/ 사진=대법원 제공
대법원 전경/ 사진=대법원 제공

문건의 '심각성' 대목을 지시를 받고 작성한 것 아니냐는 검사의 재 주신문에 실물화상기로 제시된 자신의 자필진술서를 가리키며 "죽 내려보십시오. 곡해하지 마시고"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판결문이 아닙니다. 3~4명에게만 보고되고 영원히 공개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사숙고해서 쓴 것이 아닙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2심 유죄) 판결의 문제가 아니라 판결이 끼칠 정치적 파장을 쓴 겁니다."

박 판사는 2015년 2월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1심 무죄를 뒤집고 징역 3년형을 선고한 김상환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보고서도 썼다. 이 보고서는 임종헌 기조실장, 윤성원 사법지원실장에게 이메일로 전달됐다. 원세훈 전 원장 판결 20여일 전 박지만 EG회장의 5촌 조카 살인사건 의혹을 보도한 '나는 꼼수다' 김어준 씨, 주진우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김상환 판사의 판결 이력을 정리한 내용이었다. 그는 역시 "당연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메일이 있으면 맞을 것"이라며 "누가 지시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메일을 보낸) 두 분 중 한 분일 것"이라고 했다. 그가 이력을 보고했던 김상환 판사는 현재 대법관으로 재직 중이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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