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하얀거탑②] "무늬만 주 80시간, 업무량은 그대로"…청년의사 죽어간다
입력: 2019.09.14 00:00 / 수정: 2019.09.14 08:15
이승우 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가운데)이 지난 7월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 10층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총파업이 포함된 의료개혁쟁취투쟁위원회의 투쟁 선언에 지지의 뜻을 밝히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제공
이승우 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가운데)이 지난 7월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 10층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총파업이 포함된 의료개혁쟁취투쟁위원회의 투쟁 선언에 지지의 뜻을 밝히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제공

한 유명 대학병원 산부인과 전공의들이 교수를 비판하는 집단 탄원서를 낸 일이 있다. 이 교수는 평소 휴대폰으로 전공의를 내리치는가 하면, 수술실에서는 수술도구로 구타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설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싶지만 불과 몇달 전에 발생한 사건이다. 아직도 이같은 야만적 행태가 국내 최상위권 성적 학생들이 모인다는 의대에서 버젓이 벌어진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전공의들의 일상은 참담함 그 자체다. <더팩트>는 현장 전공의들의 이야기를 듣고, 왜 그들은 총파업까지 참여하게 됐는지 2회에 걸쳐 알아본다. 과연 지금 이 시간 응급실에선, 수술실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편집자주>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 전 회장 인터뷰…"의사노조 활성화돼야"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이승우(29) 제22기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단국대병원 전공의)은 지난 7일 공식 이임식을 치렀다. 1년의 임기였지만 지난 2월 신형록 가천대길병원 전공의 사망이라는 역대급 사건을 겪었다.

고 신형록 전공의는 사망 전 한달간 1주당 평균 115시간 32분 일했다. 2018년 10월부터는 4명이 처리해야 할 업무를 2명이 맡았다. 올해부터 소아중환자실을 담당하게 돼 부담감도 컸다. 31세의 청년이 비명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 전 회장은 내년 2월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전공의 생활 4년을 마무리할 시점이지만 고 신씨는 반년이 넘은 지금도 가슴 한켠을 아리게 한다. 유가족과 동료들의 '투쟁' 끝에 지난 8월 고 신씨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순간을 생각하면 보람도 느낀다.

이 전 회장이 인턴 1년, 정신건강의학과 레지던트 4년을 지내며 느낀 문제점은 다양하다. 업무과중에 따른 수련시간 초과, 주변 전공의에게 듣는 인권침해 사례, 부족한 전문의 양성 시스템 등 한국 의료환경의 고질적 병폐를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한 일이 전공의노조의 재정비다. 창립 13년된 노조가 있기는 했지만 이름 뿐이었다. 전국을 오가며 설득한 결과 지난 3월 전공의노조를 제 궤도에 올려놓았다.

이 전 회장은 "의사도 노동을 한다면 노동권을 지켜야하 한다"며 "병원에 입사하며 자연스럽게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임기를 마친 소감은.

회장은 1년간 했지만 대전협 활동 자체는 복지이사와 부회장을 거쳐 3년간 했다. 본업과 더불어 한국 전공의 수련환경과 의료계 전반의 문제를 공부라면 공부, 몸소 체험이라면 체험한 시기였다. 레지던트 과정이 4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4분의 3에 달하는 시간이었는데, "누군가 이 자리에 올 텐데 비겁하게 눈감고 있지 말자, 내가 좀 길을 닦아놓고 후배들이 수월하게 걸을 수 있도록 하자"는 마음으로 즐겁게 일했다.

-전공의이자 대전협 회장으로서 가장 절실히 느낀 문제점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근무시간이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하 '전공의법')이 개정되기 전 전공의들은 주 120시간 이상 일했다. 전공의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피해가 급증하자 주 80시간 근무를 법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지속된 전공의를 굴리는 병원 구조 특성상 지켜지긴 어렵다. 환자 수와 업무량이 조정돼야 하는데 업무량은 그대로면서 법정 근무시간 내 끝내라고 하니 오버타임은 불가피하다.

-오버타임이 불가피한 업무강도라면 전공의 교육도 문제가 많을 듯하다.

정말 부족하다. 전공의는 피교육생인데 환자가 너무 많고 피곤해서 뭘 배울 수 없는 구조다. 대부분 수련기관에 '굴리다 보면 배우겠지'하는 구시대적 방식이 만연하다. 상급종합병원이라는 어려운 단어는 알면서 수련기관이라는 단어는 잘 모르지 않나. 선진국처럼 전공의 수련에 최적화된 수련기관을 따로 지정하고 과목별로 체계적인 전공의 수련 커리큘럼을 짜야 한다. 당연히 예산이 필요한데 한국은 정부 기준으로 전공의 수련환경이 잘 갖춰진 병원에 보상의 의미로 간접비용을 지원할 뿐이다. OECD 가입 국가 대부분이 수련비용을 국가에서 전적으로 부담한다. 의료는 공공재다. 당장 전면 지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과, 외과, 소아과, 흉부외과 등 필수과목부터 수련비용 지원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과중한 업무부담을 먼저 해결해야 할텐데.

전공의 업무과중과 현재 시범사업 단계인 입원 전담 전문의제를 떼놓을 수 없다. 입원환자 치료 업무만 덜어도 전공의 업무부담이 많이 줄어든다. 고령사회에 접어들며 고령 환자들이 병상 대부분을 차지한다. 고령 환자 특성상 동반 질환이 많고 입원 처방이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다. 전문의의 결정과 책임이 필요해졌다. 전공의 수련환경은 물론 한국 의료환경 전반에 꼭 필요한 제도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이미 10년도 더 된 제도인데, 한국만 멀었다. 그러다보니 일선에 투입된 입원 전담 전문의도 "레지던트 5년차냐"는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마저 입원환자 진료에 얼마나 많은 전문성이 필요한지 실감하지 못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입원 전담 전문의제 모범 시행 병원에 전공의 정원을 늘려주겠다"며 전공의를 사은품처럼 증정하는 '포상'을 내놨다. '입원의학'을 독립된 전문과목으로 받아들이면 입원 환자도 전문의에게 체계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전공의 업무부담도 줄어든다.

-회장으로서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갑질과 폭력, 성희롱 등을 당했다는 전공의들의 민원을 받으면서 노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대전협은 법정단체가 아니라 활동에 한계가 있다. 2006년 7월 설립된 전공의노조가 있긴 하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병원도 엄연한 사업장이고 전공의들이 힘들어하는 문제 중 하나가 급여와 시설 등 사업장 문제인데, 4년이면 끝나는 전공의 신분상 결집력을 모으기 쉽지 않았다. 전공의 조직력을 모으기 위해 지방병원을 돌았다. 회장이 된 후에만 20번 정도 내려간 것 같다. 아무래도 대전협 역대 회장과 이사진 대부분 수도권 출신이라 지방 전공의와 많이 '스킨십'을 하는게 첫 걸음이라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래봤자 수도권 일이지"하던 지방 전공의들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다. 그 결과 올 3월 전공의노조를 새로이 꾸릴 수 있었다.

-'의사노조'란 말은 아직 생소한데.

사실 넘어야할 산 중 하나가 노조와 파업에 가진 반감을 없애는 것이었다. 전공의를 포함해 의사 스스로도 "전문직인데 무슨 노조"라는 인식이 있다. 이걸 깨는게 우선이었다. 사업장인 병원을 상대로 월급을 받기 때문에 "우리가 의사여도 병원에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내용을 홍보하고 설명할 과정이 필요했다. 이미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중앙보훈병원 등 전문의들이 결성한 노조도 여럿이다. 저는 선배들의 노조활동이 잘 이뤄지길 응원한다. 의사노조에 대한 인식이 열려야 전공의 역시 "노조는 당연히 있어야하는 것 아니냐"라고 외칠 수 있다. 노동을 한다면 노동권을 지켜야하지 않겠나. 의대생이 의사고시를 치르고 병원에 입사하며 노조 가입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이승우 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이 지난 2월 서울 강남구에서 개최된 2019 전공의 수련환경 심포지엄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제공
이승우 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이 지난 2월 서울 강남구에서 개최된 '2019 전공의 수련환경 심포지엄'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제공

-전공의들도 의료개혁을 위해 추진하는 의협 총파업(10월 예정)에 동참하기로 했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총파업 의지를 밝히는데) 크게 작용했다. 전공의 수련환경을 포함해 한국 의료체계는 정말 왜곡됐다. 그런데 정부는 의사 목소리는 듣지 않고 정치적으로 의료 정책을 편다. 일례로 정부는 초음파와 MRI, 입원비용 등을 지원한다. 물론 의사 입장에서 환자들이 하나라도 지원을 받으면 좋다. 문제는 해당 비용이 저렴해지자 경증 환자가 대학병원에 몰려 정작 신속히 검사받고 치료받아야 할 우선순위 환자가 밀려난다. 정부는 이런 현장 고충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또 올해 초 고 신씨의 죽음이 결정적이었다. 젊은 의사는 그 자체로 한국 의료계 미래를 짊어진 존재다. 환자를 사랑하던 30세 청년 의사가 공부하고 일만 하다 당직근무 중 죽었는데 '한 젊은 의사의 죽음'이라는 슬픈 타이틀로만 소비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환자를 돌볼 의사가 파업을 한다는 따가운 눈초리도 있다.

해외에는 이미 의사 파업 사례가 많다. 다행스럽게도 파업하면 오히려 환자 사망률이 줄어드는 추세다. 파업은 하되 생명과 직결된 응급 환자 수술, 신생아 치료 등은 유지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만약 총파업을 실시한다면 정말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돌보되 보건의료정책 최전방에 있는 전문가로서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많은 전공의들이 "지금 오는 환자는 다 받아야 해"라는 마음으로 상처를 틀어막는다. 상처도 곪으면 썩고 괴사한다. 앞으로 파업 소식이 들리면 우리가 절실하다는 것, 그리고 국민 건강은 지킨다는 것 이 두 가지만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후임 회장이 최초로 여성·외과의 출신이다.

신임 회장으로 박지현 삼성서울병원 외과 전공의가 취임했는데 대전협은 물론 의료계 집단에서 최초 여성 회장이다. 제가 무슨 조언을 할 위치는 아니지만 기대와 믿음이 크다. 저 역시 전문의가 된 후에도 후배들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지지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선배가 되겠다.

2016년 영국 NHS(국민보건서비스) 의료기관 전공의들이 추가근무 수당과 관련한 정부 정책에 반발하며 런던에서 24시간 파업을 벌였다. 지나가던 런던 시민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이들을 응원했다. /영국 가디언뉴스 공식 유투브
2016년 영국 NHS(국민보건서비스) 의료기관 전공의들이 추가근무 수당과 관련한 정부 정책에 반발하며 런던에서 24시간 파업을 벌였다. 지나가던 런던 시민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이들을 응원했다. /영국 가디언뉴스 공식 유투브

의사가 파업하면 환자 사망률 오를까 내릴까

대한의사협회 의료개혁쟁취투쟁위원회(이하 '의쟁투')는 지난 7월 청와대 앞에서 '투쟁 로드맵'을 공개했다. 의쟁투는 8~9월 지역·직역별 토론회를 통해 현 의료제도 문제점을 알리고 10월 중 제1차 전국의사총파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대전협 역시 8월 만장일치로 총파업 참여를 의결했다. 이들은 ▲생명과 직결된 필수과목의 턱없이 낮은 수가 조정 ▲의료진 인권 증진 ▲업무환경 개선 ▲급진적 보건의료정책 전면 변경 등을 요구한다. 이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병원과 정부, 그리고 "환자 버리고 제 잇속 챙기려는 의사들"이라는 대중의 시선이다.

의사로서 자질까지 거론되는 한국과 달리 해외에서 의사 파업은 드문 일이 아니다. 영국은 1975년, 2012년, 2015년, 2016년 파업을 단행했다. 이중 1975년 파업은 전문의, 전공의가 함께였고 2015년과 2016년은 '젊은의사회' 소속의 전공의가 주축이었다. 이스라엘 역시 1970~2010년대에 걸쳐 5차례 파업에 돌입했고 인력 증원과 의료제도 개선위원회가 신설되는 등 유의미한 효과를 거뒀다. 캐나다에서는 1986년 온타리오주 지역 의사 7000여명이 주정부의 정책에 반발하며 파업한 바 있다. 캐나다의 경우 별다른 성과없이 끝나 앞선 사례와 결이 다르지만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의사의 파업이 '해서는 안될' 행동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의 파업 이유 역시 인력부족과 업무과중, 부족한 수가 등 한국 비슷하다. 특히 이스라엘은 파업으로 개선효과를 불러와 한국 의료환경보다 우수한 면도 많다.

이승우 전 회장은 임기 중 총파업 의지를 표명한 이유에 대해 "지금처럼 왜곡된 의료체계로 가다가는 국가재난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낮은 수가와 열악한 업무환경으로 필수과목을 기피하는 의사가 급증해서다. 대중이 피부미용 분야 개원의를 두고 "돈 잘 벌려고 쉬운 것만 한다"고 욕할 때 일선의 의사들은 "진짜 이러다 큰일나겠다" 싶다. 이 전 회장은 "10~20년이 지나면 산모의 아이를 받거나 수술할 의사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필수과 전문의를 많이 양성해야 하는데 현 의료체계로는 역부족"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의사 파업의 궁극적 목적은 환자 안전과 맞닿아 있다. 걸어다니는 의료서비스 그 자체인 의사의 권리를 보장하고 업무환경을 개선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도움된다. 1976~2003년 단행된 5개의 의사 파업을 분석한 논문 '의사 파업과 사망률'(2008)에 따르면 의료진이 파업한 동안 오히려 환자 사망률이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197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의사들이 의료사고 보험료 상승에 항의하기 위해 5주간 일선을 떠났는데 파업기간에 하락세를 보이던 환자 사망률은 파업 종료 2주 후까지 감소 추세를 이어갔다. 경증 환자 진료를 미룬 대신 생명의 경각을 다투는 응급수술에 전념한 덕분이다. 이외에도 파업 기간 중 환자 사망률이 증가한 사례는 없었다고 해당 논문 초록에서부터 명시한다.

파업과 더불어 의사가 현 의료체계에 대해 지적할 때마다 날선 반응이 대다수다. 그러나 조금만 뜯어보면 그들이 주장하는 의료환경 개선은 결국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데 직결된다. 이 전 회장은 인터뷰에 앞서 "저는 의학드라마는 절대 보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 현장과 달리 화려하게만 그려지는 의사의 모습이 영 보기 불편해서다. 대중 미디어에 비춰진 것만 보고 생명 최전선에 있는 의사의 목소리를 예단하면 안된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 중 하나로서 그들의 권리 증진을 돕기 위해, 또 언젠가는 환자가 될 우리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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