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조국은 안 된다'는 윤석열…검찰권력의 귀환
입력: 2019.09.02 05:00 / 수정: 2019.09.02 09:25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 지난 7월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 취임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 지난 7월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 취임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확실한 혐의 포착" "정권에 메시지"…검찰개혁 저항 해석도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윤석열 리스크.' 윤석열 검찰총장 인선 당시 여권 일부에서 흘러나왔던 '슬픈 예감'은 현실이 됐다. 윤석열의 칼은 여야를 가리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부도 이 시점에서 보면 아이로니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25일 청와대에서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윤 총장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엄정하게 권력형 비리를 처리해 국민에게 희망을 줬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고 했다. 한 달도 안 돼 윤 총장은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빼들었다.

'윤석열호 검찰'의 제1호 수사가 문재인 정부의 핵심인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가족 의혹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 했다. '공정경제'를 강조한 윤석열 총장의 취임사를 근거로 첫 칼날은 대기업을 향할 거라는 추측을 대부분 내놓았을 뿐이다.

검찰이 인사청문회 전 고위공직자 후보 수사에 들어간 것은 청문회 도입 20년 만에 처음있는 일이다. 다시 미궁에 빠졌지만 여야가 인사청문회 날짜를 잡은 바로 다음날 새벽 압수수색을 감행했다. 정치일정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것도 문 대통령의 개혁 페르소나이자 여야가 명운을 건 정치투쟁의 정점에 서있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다. 도대체 윤석열 총장은 무슨 생각으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 한 초강수를 던진 것일까.

◆심상치 않은 특수2부의 전격 등판

우선 "검사는 진실을 밝힐 뿐이다", "나오면 간다"라는 윤석열 총장의 평소 스타일, 수사 원칙대로 결단했을 가능성이다. '냄새가 나니까' 칼을 뽑았다는 것이다. 27일 압수수색의 규모를 보면 철저히 내사를 한 흔적이 보인다. 특수 1~4부 전 수사관들이 서울·천안·공주·부산·창원 등 전국 20여곳에 '작전' 수행하듯 투입됐다. 특히 압수수색 대상에 그동안 주목받지 않던 조 후보자 처남 자택이 포함된 게 눈에 띈다. 처남 정모 씨는 조 후보자 배우자가 투자한 코링크PE의 주주이자 문제의 사모펀드에도 투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사람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사모펀드 의혹이 이번 수사의 본류가 될 것으로 본다.

수사 부서가 형사1부에서 특수2부로 재배당된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조 후보자 가족이 얽힌 11건의 고소·고발 중 10건을 몰아줬다. 재배당 사실도 압수수색 이후에서야 공개됐다. 심각성을 알아채지 못 하도록 철저히 '위장'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특수2부는 권력형 부패범죄 전문 인지수사 부서다. 고소·고발이 들어와야 처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선제적으로 판단해 수사를 벌인다. 특수부에서도 최정예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을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시킨 것도 특수2부였다.

이런 특수2부가 작심하고 달려들었다는 것은 내사 과정에서 상당한 혐의를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구나 조국 후보자급의 인물을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건드리기란 혐의에 확신이 없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게 서초동 안팎의 평가다. 일부 친야 성향 법조인 사이에서는 '조 후보자 가족을 넘어서는 뭔가를 캐치했을 수 있다'는 주장도 돈다. 다만 특별한 증거가 나왔다기보다는 검찰에 일반적 지휘권을 갖는 법무부 장관 취임 전에 증거를 차질없이 확보해놓자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조국(왼쪽)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윤석열 검찰총장./뉴시스
조국(왼쪽)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윤석열 검찰총장./뉴시스

이 때문에 '조국 면죄부 주기 수사'라는 주장은 여러 시나리오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찰이 나서 조 후보자의 무혐의를 입증해준다는 이른바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윤 총장의 직할부대인 특수부를 투입하는 등 수사 규모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빈손으로 돌아섰다가는 윤 총장과 검찰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 대어를 낚지 못 한 채 끝날 경우 특검 주장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검찰의 제1호 수사가 특검으로 넘어간다면 치욕이 아닐 수 없다. 면죄부를 주고 싶어도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이 수사는 몇 주 안에 끝날 게 아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검찰이 조 후보자 의혹을 조기 해소해줄 것이란 이야기는 말도 안 된다"고 밝혔다.

차라리 '검찰도 살고 정권도 사는 길'을 택했다는 해석이 더 일리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 검찰로서는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대로 수사해야 국민 신뢰를 얻고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원 댓글 수사 외압 폭로로 '귀양살이'를 하던 윤석열 총장을 파격적으로 중용해줬다. 윤 총장도 정권이 흔들리는 것까지는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전격적인 고강도 강제수사 돌입으로 "조 후보자는 큰 결격사유가 있으니 정권에 부담만 줄 뿐이다. 사퇴시켜야 한다"는 사인을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다. 유시민 작가가 "충정은 이해하나 심한 오버였다. 윤석열 총장은 조국 후보자가 사퇴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압수수색 대상에서 조 후보자의 자택과 서울대 연구실이 빠진 것도 퇴진을 충고하는 예우라는 시각도 있다.

◆'조국 장관'을 향한 검사들의 비토

윤석열 총장은 2013년 국정감사에서 "검찰조직을 사랑하는가"라는 정갑윤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물음에 "네, 대단히 사랑합니다"라고 답해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여권과 시민사회 쪽에서는 이런 '검찰주의자' 윤석열 총장의 '검찰개혁 저항론'을 제기한다. 조 후보자가 교수 시절부터 가장 신랄하게 비판해 온 게 검찰이다. 검찰권 대폭 축소는 오랜 소신이기도 하다. 최근 검찰 인사도 특수통은 윤 총장이 챙겼지만 검사 40여명이 옷을 벗게 한 '피바람' 인사는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깊이 개입했다는 게 정설이다. 검찰조직에서 '조국 비토' 분위기가 강할 수 밖에 없다. 검사들 사이에서 '조국은 절대 안 된다' '누가 누구를 개혁하느냐'는 이야기가 돈다는 전언이 빈말이 아니다. 2013년 국정원 댓글수사 외압을 폭로한 항명 파동의 주인공인 윤 총장은 "상부의 지시라도 위법하면 따를 필요가 없다"는 소신을 여러번 피력해왔다. "후배 검사들이 하겠다는 수사를 막지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른바 '조국에 대한 검찰의 복수'라는 주장은 이런 정황을 토대로 한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이 보란듯이 동시다발 압수수색을 벌인 것 자체가 검찰개혁을 주도해온 '조국 장관'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며 "'검찰주의자'인 윤석열 총장이 검찰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 나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검찰 개혁법안은 이미 국회에 넘어갔는데 검찰이 장관을 경계할 이유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서 교수는 "검찰개혁은 공수처 설립, 수사권 조정만이 다가 아니다"라며 "법무부의 탈검찰화, 직접수사권 축소, 수사조직의 슬림화 등 다양한 개혁과제를 추진할 장관 후보자에게 타격을 주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초동 대검찰청사에 나부끼는 검찰 깃발. /더팩트 DB
서초동 대검찰청사에 나부끼는 검찰 깃발. /더팩트 DB

검찰개혁을 향한 저항인지를 떠나서 성급한 정치 개입이라는 비판도 많다. 차장검사 출신인 이건태 변호사는 "장관 임명 후 수사를 하면 수사 공정성에 의심을 받을까봐 서둘렀을 수도 있지만 법이 정한 청문회가 정상적으로 열리도록 끝까지 협조했어야 했다"며 "일종의 검찰 수사 지상주의"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총장의 '빅픽처'에 다양한 추측이 나오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앞으로 정국의 주도권은 여도 야도 아닌 검찰이 쥐게 됐다는 사실이다. 2020년 4월 총선 전까지 조국 후보자 가족 의혹 수사, 환경부 리스트 사건 공소유지 등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의 명줄을 쥔 모양새다.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에 황교안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 포함 59명이 고발된 자유한국당도 자유로울 수 없다. 총선 뒤에는 선거사범에 대한 수사가 남았고 곧 대선이 다가온다. 검찰이 칼자루를 쥐고 안희정·서청원 등 여야 실세들을 줄줄이 구속시킨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가 연상된다.

정철승 변호사(법무법인 더펌)는 자신의 SNS에 "곧 한국당 의원들에 대해서도 검찰의 강도높은 수사가 진행되리라 본다"며 "앞으로 정치인들은 정치문제를 형사사건으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일인지 확실히 배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개혁의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검찰권력이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다시 기지개를 켜고있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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