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의 이주민들①] 일본 친구가 말했다 "'NO재팬' 아닌 'NO아베'라 좋아"
입력: 2019.08.11 00:01 / 수정: 2019.08.12 05:59
일제강점기 말인 1943년 조선인노동자 마을로 시작해 70년 넘게 이어져온 일본 교토 인근의 우토로 마을 주민들이 모여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김수환 대표 제공
일제강점기 말인 1943년 조선인노동자 마을로 시작해 70년 넘게 이어져온 일본 교토 인근의 우토로 마을 주민들이 모여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김수환 대표 제공

비극적인 근현대사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 한 한일관계가 다시 급격히 얼어붙었다. 이 구도 속에서 재일한국인과 재한일본인은 가장 불안한 집단일 수 있다. 1945년 해방 당시 각각 200만명, 80만명에 달했던 양 인구는 이후 급격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일본에는 외국인 인구 중 국적별 2위에 이를 정도로 많은 한국·조선인이 산다. 동시에 이들은 미래 한일관계의 가늠자이자 가장 합리적인 해법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 첫번째 순서로 일본에 사는 우리 동포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어본다. 두번째 순서에는 재한일본인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편집자주>

멀어지는 한일관계…'우토로마을부터 도쿄까지' 재일한인의 목소리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일제강점기 타향에서 잡곡 세 홉과 차별을 끼니 삼아 군 비행장을 건설하는 살인적 노동에 시달렸던 조선인 노동자들. 전쟁이 끝나자 고향으로 돌아갈 배삯도 쥘 수 없었던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며 다져온 터전이 바로 '우토로 마을'이다.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있는 우토로 마을은 지금 한 시대가 저무는 중이다. 마을의 2/3는 부동산회사에 넘어가 철거됐다. 나머지 땅에 160명 남짓한 우토로 주민들이 살 공영주택이 들어섰고 추가로 자리잡을 예정이다. 이나마 주민들의 투쟁과 한일 시민의 연대로 양국 정부의 관심을 이끌어내 지킬 수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비극적 역사, 그리고 한일연대의 씨앗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 우토로의 주민들은 파국으로 치닫는 한일관계 속에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강제동원은 정치 아닌 인권문제 "품위있고 당당하게"

"네, 네. 통화 가능합니다."

누가 먼저 꺼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우리말이 전화기 너머 들려왔다. 우토로 마을 주민의 커뮤니티인 미나미야마시로동포생활센터의 김수환(43) 대표.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한인 3세지만 숨소리, 웃음소리 하나까지 영락없는 한핏줄이었다.

"요즘요? 특별히 불안한 건 없어요. 이곳에서 차별이 있을 때마다 불안 속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이번에 따로 심하게 느끼지는 않아요."

우토로 마을은 일본 속의 작은 한국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과 일본이 공존하는 곳이다. 우토로가 철거의 위협에서 벗어나기까지 한국의 동포는 물론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우토로를 지키는 사람들'의 힘도 컸다. 지금도 일본 시민들이 자주 찾아와 정을 나눈다. '혐한'은 그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주민들의 손을 잡고 "일본 속에 이런 역사가 있는 줄 몰랐다"고 미안해 하고 한일관계가 나빠질 수록 "더욱 교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토로와 친한 일본 사람들은 아베 총리를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는 불안을 덜 느끼죠. 하하."

하지만 우토로 밖의 세상은 여전히 강퍅하다. 일본 보수언론이 주도하는 여론은 살벌하기까지 하다. 신문은 아사히, 마이니치 같은 중립적 논조도 있지만 TV는 켜기가 꺼려질 정도라고 한다. 김수환 대표는 "일본 언론을 많이 보면 교포 분들까지 영향을 받기도 한다. 모든 게 한국 탓이라는 것"이라며 "우토로 외 지역에 사는 교포들은 불안감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우토로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미나미야마시로동포생활센터./김수환 대표 제공
우토로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미나미야마시로동포생활센터./김수환 대표 제공

한국에서 일본 전체를 적대시하는 일부 모습도 이들을 더 불편하게 한다. 화형식, 일본제품 부수기 퍼포먼스 등을 일본 언론이 침소봉대해 보도할 때마다 보통 일본인들까지 오해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유니클로 등 불매운동은 공감은 해요. 하지만 일본에는 과격한 장면만 전해져요. 한국 시민이 일본 시민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NO 아베'를 외치는 건 잘 알려지지 않아요. 이러니까 일본인은 물론 동포 분들까지도 한국이 너무한다고 잘못 알게 되죠. 그래도 아베에 집중하는 건 좋은 방향이에요. 인터넷에서는 잘 볼 수 있거든요."

김수환 대표는 역사를 부정하는 아베 정부에 대한 비판의식을 굳게 가지되 과학적 논리와 가치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인권' 중심의 시각을 갖는 것이다. 그는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정치외교 문제로만 보면 안 된다. 한일 정부 모두 인권 개념이 부재한 상태"라며 "일본 우익은 아주 교활한 집단이라 우리가 감정적으로 나오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한다. 일본 시민과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고 가치를 공유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혐한이나 반한 감정은 한국이 하는 '반일' 때문이라고 해요. 그러나 우리 반일은 '반일본'이 아니라 '반일본군국주의'이고 그를 계승하는 아베 정권입니다. 평화와 인권에 역행하는 극우와 보수를 반대하는 거죠. 뜻을 같이 하는 한일 시민과 연대해서 당당하고 품위있는 저항을 하고 싶습니다."

지난 2월 19일 도쿄 신주쿠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열린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작가와의 토크쇼에 참석한 일본 팬들이 책 표지로 장식한 게시판에 붙여있는 작가에 대한 메시지를 읽고 있다. /뉴시스
지난 2월 19일 도쿄 신주쿠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열린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작가와의 토크쇼에 참석한 일본 팬들이 책 표지로 장식한 게시판에 붙여있는 작가에 대한 메시지를 읽고 있다. /뉴시스

◆양국간 비즈니스 종사 교민 타격…"문화교류 계속돼야"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일본에 사는 한국·조선인 수는 외국인 중 중국인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49만8000명에 이른다. 이들 중 절반 가까이가 오사카와 도쿄에 산다.

일본의 수도 도쿄에는 다양한 한국인 단체가 있다. 이중 '도쿄한국인모임'을 이끄는 박종효(38) 씨는 일본에 온 지 7년째다. 한국어 학습 앱을 개발해 서비스하는 일을 한다.

도쿄에는 IT계열 회사에 취업한 젊은 교민을 비롯해 생업에 종사하기 위해 동해를 건너온 인구들이 많다. 이들과 자주 소통하는 박씨는 "한일관계에 가장 예민한 사람이 현지 교민"이라며 "이번 한일관계 악화로 특히 양국 사이에서 비즈니스하시는 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이 방한하려면 먼저 사죄해야 한다"는 발언을 계기로 반한감정과 혐한시위가 고조된 2012년 당시가 재현되지 않을까 불안한 상황이다. 아직 본격적인 반한운동·불매운동은 없지만, 앞으로 문제가 장기화되지 않을지 걱정이 크다고 전했다.

"한국과 일본의 인식이 정반대로 가서 안타깝습니다. 한국 시민들은 우리가 항상 일본에 져왔고 이번에도 일본이 일방적으로 도발했다고 생각하죠. 일본시민들은 항상 한국에 휘둘려서 하자는 대로 들어주다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말을 바꾼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고국의 취업난 속에 일본에서 일자리를 잡은 청년들은 난처한 상황이 잦아졌다. 박씨는 "일본 회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회사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특히 점심시간에 일본인 동료들과 불매운동, 반일시위 영상을 보게될 때 어색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한다"고 했다.

박씨는 "여러 정치적 견해가 있겠지만, 생업이 달린 교민으로서는 현 상황이 우려스럽다"며 "해방된 지 수십년이 흐르도록 왜 양국간 문제가 엉켜 국민끼리 등을 돌려야 되는지 안타깝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씨는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양국 젊은이들에게서 미래를 본다. 함께 한국 내 반일시위 뉴스를 보던 한 일본인 친구가 말을 건넸단다. "NO재팬이 아니고 NO아베여서 다행이다."

"여전히 한국드라마와 음악, 한국의 문화를 사랑하고 한국을 응원해주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관계를 단절할 듯한 자세보다는 민간의 문화교류는 이어가면서 일본을 '뗄래야 뗄 수 없는 애증의 이웃'이라는 인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2월 18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 경기에 출전한 한국 이상화가 일본 고다이라 나오와 메달을 획득한 뒤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지난해 2월 18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 경기에 출전한 한국 이상화가 일본 고다이라 나오와 메달을 획득한 뒤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한일 갈등에 가슴 아픈 아들 "엄마도 아프다"

일본에 온 지 24년째인 A(47) 씨에게는 외동아들이 있다. 명문 와세다대학교를 다닌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라 모두 일본인 학교를 다녔다. 한국인이 자기 한 명인데도 줄곧 학생회장을 맡았다. 하지만 뿌리가 한국이라는 건 잊은 적이 없다. 그런 아들은 요즘 마음 아파한다. 일본이 한국을 공격할 때도, 한국이 일본을 공격할 때도 아프다.

"제가 일본에 온 이래 지금이 가장 한일관계가 좋지않은 것 같아요. 한국 사람과 달리 일본 사람은 평소 정치에 워낙 무관심한데 이번 일은 심각하게 생각하더라고요."

도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A씨는 한국으로 이주를 앞둔 일본인도 교육한다. A씨의 제자인 한 일본인 가족은 때마침 한일관계가 경색되자 "한국에 가서 일본말 쓰면 봉변 당하지 않느냐"며 마음을 졸였다. 그런 일 절대 없다고 안심시켰지만 쓴 웃음이 나왔다. 자신도 한국에서 그런 걱정을 듣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종종 전화하세요. 일본에서 한국 사람들 무슨 일 당하지 않느냐고요. 그런데 양국 관계가 악화된 때에도 그런 일은 겪어본 적이 없어요. 한국과 일본 서로 오해하는 거죠. 매스컴에서 의도를 갖고 보도해서 그래요. 일본에서도 집에서 TV만 보면 한국 가면 큰 일 날 것처럼 생각되죠."

A씨는 지난해 우리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 손배 사건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날 공교롭게도 패소한 전범기업 직원 대상 한국어 강의를 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도 내색하거나 평소와 다르게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에서는 물론 일본에서도 해코지 당할 걱정은 기우라는 말이다.

어떻게 하면 한일 관계가 좋아질 수 있을지 진지하게 묻는 일본 이웃들도 있다. 일본인들은 "일본이 사과를 했는데 왜 또 사과하라고 하느냐"거나 "혹시 돈을 바라는 것이냐"고 묻는다. A씨는 "한국은 이제 잘 사는 나라가 돼서 돈이 필요한 게 아니다. 만약 사람이 심하게 다쳤는데 '미안해' 한 마디로 상처가 아물겠느냐. 아베 신조 총리가 진심으로 확실하게 사과하면 해결될 수 있다"고 설득한다. 아직 알아나갈 게 많지만 어떻게든 두나라 사이가 좋아지기를 바라서 던지는 질문이라고 여긴다.

아베 총리를 비판하는 일본인도 적지않다. 주로 지식인층이다. 하지만 말 해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대부분 침묵한다. 정치적 냉소가 극심한게 일본의 문제 중 하나다. 그는 "한국 사람은 달걀에 바위치기라도 해왔지만 일본 사람은 스스로 나서지 않는다"고 아쉬워 했다.

다만 물밑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정말 좋아졌다고 한다. A씨가 처음 일본 땅을 밟았던 때와 견주면 더 그렇다. 당시는 한국 사람은 방 구하기도 난감한 때가 많았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불법체류자나 유흥업 종사자로 여기는 편견도 적지않았다. 그런 분위기가 바뀐 건 '욘사마' 덕분인 것 같다고 했다. 배용준 씨가 출연한 드라마가 일본에서 대성공한 때부터 한국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일본 사람이 늘어나면서 한국어 강의 요청도 늘어났다. 그런데 요즘 한류열풍은 그때보다도 훨씬 폭발적이다.

"제자 중에도 한국을 굉장히 좋아하는 젊은 친구가 많아요. 한국 사극으로 세종대왕을 알고 한국 역사를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한국을 일본이 지배했던 뒤떨어진 나라인 줄 알았다가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기도 하죠. 결혼하면 꼭 한국 사람과 하겠다고 하기도 해요. 아이들을 보면 '로미오와 줄리엣'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과격하거나 자극적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을 보면 이런 일본인들마저 돌아서지 않을까 안타깝다. "'NO 재팬'보다 'NO 아베'가 훨씬 좋아요. 일본 사람들에게 주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그럼 정치에 무관심하긴 하지만 아베가 무슨 문제가 있나보다 생각해보게 될 거에요."

A씨의 아들은 파일럿이 되는 게 장래 희망이다. 민항기 조종사가 돼서 세계 각국을 누비고 싶어한다. 그가 사랑하는 두 나라의 갈등에 가슴 아파하지 않고 한국과 일본의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는 날. 그날이 어서 오는 게 엄마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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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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