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판사 해외 보내려고 강제징용 재판 거래했나
입력: 2019.08.10 00:01 / 수정: 2019.08.10 08:02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 관련 2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 관련 2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양승태 공판 '외교부 입장 반영' 대법원 문건 공개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사법농단'은 양승태 대법원·박근혜 정부가 상고법원 입법, 법관 재외공관 파견 재개와 강제징용 피해자가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재상고심을 부당하게 거래했다는 게 혐의의 핵심이다.

당시 양승태 대법원이 2010년 중단된 법관 재외공관 파견을 재개하도록 외교부를 설득하기 위해 '신일철주금 사건(강제징용 피해자 전범기업 손해배상 소송)에 외교부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한다'는 방안을 수립한 사실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외교부 입장은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은 소멸됐으며 피해자가 최종 승소하면 한일관계 파탄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 21회 공판에는 이같은 이메일과 검토보고서를 작성한 김창모 전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수원지법 부장판사)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전 심의관이 2015년 7월 2일 작성한 '주 오스트리아 대사관 법관 파견 관련 검토보고서'에는 '외교부 추가 설득 방안' 1번으로 '신일철주금 사건 : 외교부측 입장을 절차적으로 최대한 반영'이라고 적혔다.

이 보고서를 쓰기 11일 전인 2015년 6월22일 임종헌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이 송영완 오스트리아 대사에게 보낸 이메일의 요점은 이렇다.

'6월11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사건에 대한 외교부 의견서 제출방식을 협의하기 위해 조태열 외교부 2차관, 이기철 전 오스트리아 대사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이기철 대사님이 법관의 재외공관 파견을 추진함에 있어 오스트리아 대사가 외교부 본부에 정식 파견 건의 공문을 송부하도록 하라는 조언이 있었다. 조 차관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메일 내용대로라면 대법원과 외교부 고위 관계자가 만나 외교부가 원하는 강제징용 판결을 뒤집기 위한 절차와 대법원의 민원인 오스트리아 대사관에 법관 파견을 성사시키기 위한 방안을 주고받은 셈이다. 이메일을 보낸 3일 뒤인 6월 25일 주 오스트리아 한국대사관은 실제 외교부 본부에 법관 파견 요청 공문을 보냈다.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가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선고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가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선고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물을 보면 '7월2일 검토보고서' 이후 실제 후속조치가 실행된 정황이 나타난다.

김창모 전 심의관은 8월 이후 김모 외교부 인사제도팀장을 면담해 검토보고서를 설명했다. 이민걸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은 김형진 외교부 기조실장, 김인철 국제법률국장(10월)을 잇달아 만났다. 10월 19일 법원행정처는 외교부가 대법원에 낼 의견서 초안을 전달받았다. 이달 조인영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은 광주지법에 강제징용 소송 재판 사건번호를 문의해 김 전 심의관과 공유했다.

이 과정의 첫 단추는 2014년 10월 양승태 대법원장의 유럽 순방이었다. 김 전 심의관은 이 순방에 동행했고 '말씀자료'를 작성했다. 양 대법원장은 일정 중 송영완 오스트리아 대사를 만나 '사법협력관' 파견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만 해도 외교부는 법관 파견에 부정적이었으나 2015년 여름쯤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이 '법관 해외 파견을 재추진하자'고 김 전 심의관에게 지시한 이후 기류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창모 전 심의관은 이날 검찰의 신문에 "그런 시간 순서로 일이 진행된 것은 맞지만 (강제징용 소송과 법관 해외 파견 거래를)실행하겠다는 인식은 없었다"고 의식적 개입을 부인했다. 7월2일 보고서의 '신일철주금 사건 외교부 입장 반영' 대목도 "내 아이디어였으며 외교부가 의견서를 내고 싶으면 내라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이민걸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외교부 고위 관계자의 만남에도 동석했지만 대화 내용은 기억이 없다고 답변했다.

검찰은 "중견 법관으로서 대법원에 계류 중인 특정사건 재판 절차를 보고서에 담았다. 법관 사회가 금기시하는 재판독립 관련 내용을 보고서에 추가하면서 우려는 없었나"고 신문했다. 김 전 심의관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짧게 답했다.

법관 해외 파견과 강제징용 대법원 재상고심이 실제 거래됐는지 사실을 떠나 재판이 지연되는 동안 피해자 4명 중 여운택·신천수·김규수 씨 3명은 세상을 떠났다. 이춘식(94) 씨 홀로 2018년 대법원의 승소 확정을 지켜봤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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