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혼네'로 강제징용 판결 뒤집으려 한 양승태 대법원
입력: 2019.08.08 05:00 / 수정: 2019.08.08 06:19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와 관련 21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뉴시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와 관련 21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뉴시스

김앤장 변호사 메모 공개…양 전 원장과 4번 만나 소송 보고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장우성 기자] '2015 11/10. 유명환. 조태열 차관 미팅. 외교부-대법원 커뮤니케이션 문제없나? 혼네('본심'이란 뜻의 일본어)로? 문제없다.'

일본 전범기업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 대리인을 맡았던 김앤장 송무팀 한상호 변호사가 당시 이 법률사무소의 고문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에게 듣고 적은 메모에 나오는 글귀다.

4년 전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2015년 5월 임종헌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한상호 변호사에게 전화를 건다. 김앤장에 외교부 의견서 제출 촉구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대법원에 재상고된 강제징용 피해자 승소 판결을 뒤집으려면 '강제징용자의 개인청구권은 소멸됐다'는 내용의 외교부 의견서가 필요했다. 그래야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겨 '뒤집기'를 시도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일본과 위안부 문제 합의 등의 현안을 앞두고 강제징용 문제까지 나서기 부담스러웠다. 눈치를 살피는 외교부를 재촉하기 위해 '빨리 대법원에 의견서를 내라'는 촉구서를 김앤장이 제출하라고 한 것이다.

이후 김앤장 고문으로 외교부와 창구 역할을 한 유명환 전 외교부장관이 조태열 당시 외교부 제2차관을 만나 대법원과 외교부의 '혼네' 소통을 확인하고 한상호 변호사에 전했다.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20회 공판에서는 이 재판의 '키맨' 중 하나인 한상호 김앤장 변호사의 포스트잇 메모가 법정에 대거 제시됐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한 변호사는 강제징용 소송 대법원 재상고심 진행상황을 수시로 메모로 정리해 남겨놓았다. 이를 검찰이 김앤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찾아냈다.

이 메모 중에는 전범기업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 관계자의 발언도 담겼지만 한 변호사는 증언거부권을 행사했고 재판부가 받아들였다. 신일철주금 관계자가 참석한 대책회의 문건에 적힌 발언이 자신이 한 것인지 확인하는 검사의 신문에도 역시 증언을 거부했다. 업무상 비밀 누설죄와 변호사 윤리규정에 위반된다는 해석이다.

김앤장은 강제징용 피해자 손배소송에서 전범기업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의 소송대리인을 맡았다. 사진은 김앤장 본사 중앙 로비./뉴시스
김앤장은 강제징용 피해자 손배소송에서 전범기업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의 소송대리인을 맡았다. 사진은 김앤장 본사 중앙 로비./뉴시스

한 변호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사법연수원 4년 선후배로 법원행정처에서 함께 근무했으며 부부 동반 모임을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특히 두 사람은 4차례 만남에서 강제징용 재상고심 관련 의견을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2013년 초 만남에서는 1년 전 전범기업이 승소한 원심을 파기환송한 김능환 대법관을 화제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한 변호사는 양 전 원장에게 "(파기환송) 판결을 미리 아셨냐"고 묻자 "김능환 대법관이 귀띔도 안 해줬다"고 답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이 자리에서 당시 대법원 판결이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고 1965년 한일협정을 뒤집는 판결이라는 점도 이야기가 오갔다고 했다.

이후 한 변호사와 강제징용 재상고심 진행 상황을 공유하던 임종헌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이 2015년 5월 전화를 걸어 "대법관들을 설득하려면 외교부 의견서가 필요하니 의견서 촉구서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한 변호사는 당시 통화 뒤 "양승태 대법원장이 결심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직후 양승태 전 원장을 만나 임 실장에게 요청받은 사실을 보고한 것도 인정했다. 2015년 11월 만난 자리에서는 양 전 원장이 "외교부 요청으로 시작한 일인데 절차에 협조를 안 하고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증언했다. 외교부 의견서 제출 촉구서를 낸 2016년 10월 이후 만나서도 상황을 보고했다고 했다.

이밖에 이날 법정에 제시된 한 변호사의 메모에는 김앤장 고문이던 고 현홍주 전 미국 대사, 유명환 전 장관을 비롯해 곽병훈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과 강제징용 소송을 놓고 정보와 의견을 나눈 내용이 담겼다. 취합한 정보 중에는 주한 일본대사관 파견 검사의 이름도 등장한다.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양 전 대법원장과 만남은 사사로운 자리였으며 여러 대화 주제 중 상황을 알려드린다는 취지로 소송 문제를 얘기했을 뿐"이라며 "법에 저촉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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