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뇌물 없는 뇌물죄?…김성태 법적 쟁점은 '직무관련성'
입력: 2019.08.02 05:00 / 수정: 2019.08.02 05:00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달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딸의 KT 부정채용 의혹을 해명하고 있다. /국회=남윤호 기자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달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딸의 KT 부정채용 의혹을 해명하고 있다. /국회=남윤호 기자

KT 정규직 자리도 '뇌물'인가…법조계 "가능한 이야기"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김성태(61) 자유한국당 의원이 KT에 자녀를 부정 채용시킨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2012년 국정감사에 출석하라는 압박을 받던 이석채(74) 전 회장에게 딸 김모 씨를 채용하도록 인사 청탁을 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채용비리로 뇌물죄를 적용한 것은 이례적이다. 같은 사건에 연루된 이 전 회장을 비롯한 KT 임원진은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됐다. 직무를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취한 것이 핵심인 뇌물죄에서 딸의 부정채용을 뇌물로 볼 수 있을지 의견이 분분하다.

김 의원이 받는 뇌물죄는 형법 제129조에 따라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때' 적용되는 혐의다. 뇌물로 간주된 KT 정규직 자리는 딸 김씨가 받았기 때문에 제130조 제3자뇌물제공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아버지와 딸을 공동 이익체로 보고 단순뇌물죄를 적용했다.

언뜻 보면 객체만 다를 뿐 똑같은 조항으로 보이지만, 제3자뇌물제공죄 조항에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라는 내용이 있는 반면에 김 의원의 혐의인 단순뇌물죄에는 "직무에 관해 뇌물을 수수한 때"로 부정 청탁이 빠져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딸의 부정 채용이 금전에 상응하는 뇌물인 동시에 김 의원이 직무와 밀접한 대가를 제공했다는 것까지 증명해야 한다. 채용비리와 관련해 뇌물죄로 처벌한 판례도 없는 상황에서 검찰의 무리한 기소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가능성있는 추론이라고 분석한다.

◆딸 채용은 '뇌물'인가? "채용도 경제적 이익"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김영일 부장검사)가 지난 22일 밝힌 공소사실은 다음과 같다. 2012년 김 의원은 이 전 회장이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되는 걸 막는 조건으로 KT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딸 김씨를 정규직으로 뽑게 했다. 여기서 돈, 금품 등 눈에 보이는 금전이 아닌 딸의 부정 채용을 뇌물로 볼 수 있냐는 의문이 발생한다. 앞서 강원랜드 채용비리에 연루된 권성동(59) 한국당 의원이 업무방해와 제3자뇌물수수 등 2개 혐의 모두 무죄로 풀려난 것을 의식한 결정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정규직 채용으로 규칙적인 소득이 반드시 발생하는 인과관계에 주목했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변호사)은 "김 의원은 직무의 대가를 제공하고 딸을 기업에 채용토록 했는데, 기업 채용도 하나의 금전적 이익이라는 법리적 이해가 가능해 뇌물로 성립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 역시 "꼭 돈, 금품만을 뇌물로 볼 수 없다. 판례는 없어도 정규직 자리를 둔 채용비리 역시 뇌물로 성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채용 자체를 금전적 이익으로 볼 수 없지만, 채용을 통해 매달 급여를 받는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뇌물로 인정된 금품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 6월 제3자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권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이순형 부장판사) 역시 채용비리의 뇌물 여부를 문제 삼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채용비리를 둘러싼 증인의 진술 신빙성 부족과 직무관련성, 증거의 위법수집 등을 토대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석채 전 KT 회장은 지난 2012년 KT그룹 채용 당시 자유한국당 김성태 국회의원 등 유력 인사의 자녀를 채용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구속됐다. 사진은 이 전 회장이 지난 5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는 모습. /임세준 기자
이석채 전 KT 회장은 지난 2012년 KT그룹 채용 당시 자유한국당 김성태 국회의원 등 유력 인사의 자녀를 채용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구속됐다. 사진은 이 전 회장이 지난 5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는 모습. /임세준 기자

◆단순뇌물죄의 또 다른 쟁점…직무에 관한 대가 인정될까

딸의 부정 채용을 뇌물로 인정해도 쟁점은 남는다. 김준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검찰은 단순뇌물죄를 적용했기 때문에 김 의원이 제공한 대가에 얽힌 직무관련성만 밝혀내면 된다"며 "단순뇌물죄에서 굳이 입증할 필요 없는 부정 청탁마저 KT 인사 담당자들의 여러 증언들이 나왔다. 직무와 관련한 대가성만 입증하면 유죄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제3자뇌물수수와 달리 부정 청탁이 빠진 단순뇌물죄 특성상 김 의원이 직무 범위 안에서 위법한 대가를 제공했다는 직무관련성을 두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앞서 검찰은 지난 1월 경기도 성남시 KT 본사와 광화문 지사 등을 압수수색하며 김 의원과 이 전 회장 간의 인사 청탁이 의심되는 전산기록을 입수했다. 또 당시 KT 인사팀 전무 등 직원들의 증언도 상당수 확보했다. 검찰로서는 곧 열린 재판에서의 직무관련성 입증이 핵심 과제인 셈이다.

검찰은 김 의원이 딸 채용의 대가로 이 전 회장을 2012년 환노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도록 하는 대가를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하승수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김 의원과 같이 국회의원들은 직무관련성이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경향이 있다"며 "이에 따라 김 의원이 환노위 국정감사를 담당한 상임위원회 소속이 아니었어도 직무관련성을 입증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다. 김 의원은 지난달 22일 서울지방경찰청에 서울남부지검 검사들을 피의사실공표죄로 고소했다. 당시 제출한 고소장에는 "검찰은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뇌물수수로 판단하며 국회에 대한 심대한 도전을 했다"며 "뿐만 아니라 피의사실을 공표해 정치적 수사를 강행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튿날에는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서울남부지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특혜를 받고 KT 정규직으로 채용된 의혹을 받는 김 의원의 딸은 지난해 2월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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