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카'탈브라'①] 누구나 입을 수도, 벗을 수도 있다
입력: 2019.07.28 00:01 / 수정: 2019.07.29 09:34
불화자(세상과 불화하는 자매들) 콜렉티브 리더 강철 작가가 27일 서울 회기동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불화자(세상과 불화하는 자매들) 콜렉티브' 리더 강철 작가가 27일 서울 회기동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때 아닌 '브라자 논쟁'은 몇몇 여성 연예인의 사소한 에피소드에서 불붙었다. "민망하다." "예의없다." 수많은 비난이 뒤따랐다. 그러나 우리들은 왜 여성에게만 신체 일부를 가리도록 사회적 의무를 지우는지는 묻지 않는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도 한 중학교 여성 교사가 상반신 노출 사진이 유출됐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이 교사는 연방정부에 성차별로 소송을 제기했다. 만약 남성이었어도 해고됐을지 의문이다. 앞으로 여성은 사회적 물의를 피하고 미풍양속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가슴을 조이고 살아가야 할까. 이에 <더팩트>는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며 '탈브라'를 실천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획 '아브라카탈브라'를 2회에 걸쳐 선보인다. '아브라카탈브라'는 마법 주문인 '아브라카다브라'를 '(脫)브라'로 변형한 조어다. <편집자주>

여성 아티스트 그룹 ‘불화자 콜렉티브' 리더 강철 씨 인터뷰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5월 28일 서울 신촌, ‘브라자’(브래지어) 커팅식이 열렸다. 가슴과 등을 꽉 감싸 안아 고정시키는 용도로 쓰였던 후크는, 주인이 다른 브래지어 5개를 잇는데 연결고리가 됐다. 금속 후크로 단단히 고정된 브래지어들은 세상에 화난 4자매의 가위질에 싹둑 잘렸다. 같은 달 24일 여성 비주얼아티스트 그룹 ‘불화자 콜렉티브’(不和姉, 세상과 불화하는 자매들)의 세 번째 전시, ‘아무生(생)대잔치’ 클로징 파티 때의 일이다.

불화자 콜렉티브의 리더 강철(30·본명 강부영) 작가는 여고를 거쳐 여대를 다녔다. 여학교만 10년 가까이 다닌 강 작가는 특별히 브래지어 착용을 강요받지 않은 ‘행운아’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여 직장인으로 살 때, 이 속옷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의 숨통을 조였는지 알 수 있었다. 회사를 나와 작품 활동을 하는 지금 강 작가는 비교적 자유롭다. 그러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 대다수가 브래지어를 벗지 못하는 현실에 속상하다. 아이돌 화사(24·본명 안혜진)가 ‘노브라’(No bra)로 공항에 나타나 도마 위에 올랐을 때, 강 작가는 "안 그래도 좋아하는 가수였는데 너무 신났다"고 말했다.

강 작가에게 브래지어는 "누구나 입을 수 있고, 벗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여성의 몸을 끊임없이 성적으로 소비하는 한편, ‘여자답게’ 오므리고 감출 줄 알아야 하는 세상이 강 작가의 분노 대상이다. 다음 달 열릴 네 번째 전시에서는 남성의 역사 속 감춰진 여성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남성의 시각으로 규정된 우리 사회에서 ‘비남성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 강 작가와 불화자 콜렉티브 자매들의 꿈이다.

지난 5월 여성 비주얼아티스트 그룹 ‘불화자 콜렉티브’(不和姉, 세상과 불화하는 자매들) 멤버들이 세 번째 전시, ‘아무生(생)대잔치’에서 클로징파티를 열고있다./불화자 콜렉티브 제공
지난 5월 여성 비주얼아티스트 그룹 ‘불화자 콜렉티브’(不和姉, 세상과 불화하는 자매들) 멤버들이 세 번째 전시, ‘아무生(생)대잔치’에서 클로징파티를 열고있다./불화자 콜렉티브 제공

-지난 5월 '아무生대잔치' 클로징 파티에서 브래지어 커팅식을 가졌다.

사실 옷 위에 브래지어를 입은 채 자르려 했는데, 입기 귀찮아서 그냥 들고 잘랐다. 우리 그룹 ‘젊은 피’ 솔비, 민경 작가가 예전부터 하고 싶어 했는데 대관해준 공간의 문제나 부모님이 오시는 점 등 때문에 미뤄오던 거였다. 5월 전시는 비교적 캐주얼하게 진행돼 벼르던 일을 할 수 있었다. 다들 완전히 탈(脫)브라로 살거나 가끔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사람들이라 브래지어를 구하는데 애먹었다. 저도 집에 하나밖에 없어서 고민이 많았다. (웃음)

-팀원 모두 탈브라 또는 간헐적 탈브라를 실천 중이다. 언제부터 브래지어를 입지 않았나.

여고와 여대를 다녀서 그런지 브래지어를 안 입어도 큰 문제가 없었다. 어쩌면 행운아였다. 졸업하고 1년 반쯤 패션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44반~55 사이즈 여성의 피팅이 급히 필요했다. 마침 그 사이즈 여성이 나밖에 없어서 옷을 입었는데 상체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옷이었다. 그때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여자가 어떤 시선을 받는지 알게 됐다. 그러고 보니 회사에서 근무하며 본 옷이 모두 "여성은 브래지어를 하고 옷을 입는다"는 전제를 깐 디자인이었다. 최근 유행한 시스루 블라우스도 여성의 브래지어가 은은히 비치는 것을 매력으로 꼽지 않나.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고 작품 활동에 매진하는데, 이때 경험이 불화자를 결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줬다.

-"불화자 콜렉티브, 세상과 불화하는 자매들"이라는 이름이 특이하다. 어떻게 결성하게 됐나.

사실 가슴을 가리는 여성 속옷의 명칭이 여러 가지가 있다. 브래지어, 브라, 브라자부터 젖뚜껑, 젖가리개까지…. 그 중에 브라자란 말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뭔가 동글동글하고 귀엽지 않나. 브라자에 착안해 이름을 짓던 중 한자 뜻을 차용해 왔다. 우리가 20~30대 여성 작가 4명으로 이뤄졌는데, 하나같이 세상에 화가 나 있다. 우리 사회는 남성의 시각에 익숙한 남성 디폴트(default, 기본 설정값) 사회다. 남성중심적 사고 속 외면된 여성, 성소수자, 채식주의, 난민, 동물권 등을 다루고 있다. 브라자 착용도 결국 여성의 젖가슴을 여성 본인의 몸이 아닌 남성의 눈에 비친 가슴을 위한 것이지 않은가. 이렇게 지난 7월, ‘불화자’가 세상에 나왔다.

강철 작가는 남성 중심 역사에 감춰진 여성의 역사를 작품세계에 담아낸다. 사진은 27일 <더팩트>와 인터뷰 중인 불화자(세상과 불화하는 자매들) 콜렉티브 리더 강철 작가. /이새롬 기자
강철 작가는 남성 중심 역사에 감춰진 여성의 역사를 작품세계에 담아낸다. 사진은 27일 <더팩트>와 인터뷰 중인 '불화자(세상과 불화하는 자매들) 콜렉티브' 리더 강철 작가. /이새롬 기자

-사실상 브래지어 착용을 의무화하는 사회는 남성중심적 사회라는 말로 들리는데.

우리 사회의 주류는 남성이다. 비주류인 여성과 비인간 동물 등이 주류와 다른 점은 바로 주체성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의 몸을 철저히 남성이 규정한다. 여성은 자신의 신체부위마저도 남성에게 그 주도권을 빼앗겼다. 여자아이의 가슴은 2차 성징이 시작되면서 남성이 보기에 거북하지 않고 아름다워야 하기 때문에 브라자로 가려진다. 아무도 여자아이에게 "브라자를 입는 게 어떻니?"라고 묻지 않는다. 비단 가슴뿐 아니라 ‘누가 보니까’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앉으라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기가 입을 옷을 사면서 남성의 시각에 의존해 "나는 가슴이 크니까 이런 옷이 잘 어울려", "나는 몸매가 안 예뻐서 이런 건 입지 말아야 해" 등 끊임없이 자기 몸을 검열하고 객체화시킨다. 주도권을 잃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어쩔 수 없는 남녀의 신체차이 때문에 브래지어를 입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여성의 몸은 남성과 다르기 때문에 유두를 가리는 것이 TPO(의복을 경우에 알맞게 착용하는 것)라는데.

사실 유두는 남녀 모두 옷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만약 여성의 유두가 더 도드라지고 유방에 지방이 많아 브래지어를 차야 한다면 남성들도 그런 체형이 있다. 그런 남성에게 꼴불견이라는 시선은 던져도 절대 브래지어를 안했다고 배척하는 경우는 없다. 말씀하신대로 남녀의 신체 차이는 분명하다. 그러나 차이가 차별까지 번지면 안된다. 사람마다 다른 가슴 모양을 가지고 "여성과 남성은 다르다"고 규정하는 것도 잘못된 발상인데, 더 나아가 한 성별의 가슴을 가리라고 강요하는 것은 차별이다. 이미 남녀 간의 ‘다름’을 ‘누군가는 틀리다’라고 까지 간 발상이다.

-최근 논란이 많았던 방송인 설리와 화사의 일도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화사 씨를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신났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와 같은 소신을 밝혀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 연예인을 보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보고 어이없었다. 여성의 실수로 유두가 노출됐을 때 안감힘을 써서 유두를 보고 희열을 느낀다. 그런 사진을 고소까지 당하면서 유포하고 공유하지 않나. 그런데 옷 위로 유두가 보인다고 예의를 운운하는 모습이 웃겼다. 결국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몸을 지휘하고 드러내는 게 못마땅한 남성중심적 시각의 반증이다.

-여성의 유두는 물론 전라를 노출하는 미술작품이 많지 않나. 얼마 전 페이스북이 불꽃페미액션의 ‘찌찌해방축제’ 사진을 비공개 조치해 말이 많았는데 여성의 가슴이 드러난 누드 작품을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예술에서 벌거벗은 몸을 드러내는 건 두 종류가 있다. 작가가 본 인간의 몸을 아름답게 재구성해 그리는 것이 누드고, 상처 입은 몸이라든가 근육의 움직임 등 본연의 몸을 드러낸 게 네이키드(naked)다. 네이키드는 남성의 영역에 가깝고, 누드화는 75%가 여성 모델이다. 대부분 남성 작가가 여성 누드화를 그려 돈과 권력을 가진 남성 고객에게 판매했다. 누드화에 나타난 여성은 수줍은 표정에 수동적인 자세, 남성 시각으로 봤을 때 아름다운 몸매로 재구성됐다. 힘 있는 남성 고객이 봤을 때 그림 속 여인을 성적으로 소유하고 싶게끔 그려진 게 누드다. 이에 반해 불꽃페미액션 등 여성의 탈브라 움직임은 남성의 시각에서 자유롭고, 내 몸을 드러내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 그러니 "음란하다, 더럽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여성이 브래지어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브래지어 착용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신체 구조상 필요한 가슴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평소에 안 하더라도 오늘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입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세상이 오려면 여성의 몸을 성욕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없어져야 한다. 탈브라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웃긴 게, 할머니들은 브래지어를 안 입는 날도 많다. 그런데 아무도 할머니가 브래지어를 입었는지는 관심이 없다. 결국 자신의 성욕 분출 대상으로 보는 젊은 여성에게 들이대는 잣대다. 여성의 몸을 인간의 몸으로 보고, 여성의 몸이 온전한 권리를 보장받을 때 진정한 탈브라의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나.

탈브라는 계속 할 거고, (웃음) 남성중심 역사에 감춰진 여성의 역사를 작품에 담아낼 계획이다.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사안인데,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이 주인공이었던 역사적 사건에 관심이 많다. 예를 들어 6‧25 전쟁은 지금껏 몇 년도에 전쟁이 발발했고, 동맹국과의 관계는 어떠했고 휴전협정은 어떻게 맺어졌는지 등이 주목받았지 않나. 그러나 당장 함께 사는 할머니께 여쭤 봐도 6‧25 전쟁의 역사에 여성도 있었다. 역사 속 동맹군으로 기억된 미군은 여자밖에 안 남은 마을에 침입해 젊은 여자를 강간하려 했다. 저희 할머니도 미군의 공격을 피해 집안에 가장 노쇠한 여자만 두고 마을 어귀로 피신한 적 있었다. 마을 어귀에는 미군의 강간을 피해 숨은 수많은 마을 처녀들이 있었다. 이런 여성의 역사도 거대한 역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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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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